*
중학교 진학하고 나서 그는 생각했다. 어쩌면 행복에도 정량定量이 있는 것이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자신의 행복은 유년시절에 이미 다 써버린 것이 아닐까. 이제 남은 생은 오로지 불행밖에 남지 않은 건 아닐까.
그는 더 이상 개와 동네를 산책하거나 들풀로 풀피리를 만들어 불지 않았다. 대신 피시방에서 컴퓨터게임을 하거나 포르노를 보면서 자위를 했다. 인터넷은 산골 마을까지 들어왔고, 단지 조금 느리고 불편할 뿐, 이제 시골소년의 삶은 도시소년과의 삶과 다르지 않았다.
*
언제부턴가 그는 자신의 죽음을 전시하고 싶다는 욕망에 시달렸다. 물론 정말로 죽고 싶은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죽음을 상상하는 일은 좋아했다. 여러 죽음의 방법을 생각해봤지만 그 중 총기자살이 제일이었다. 그는 자신이 죽을 때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그걸 지켜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교수와 학우들을 한 쪽 구석에 모아두고 총을 겨눈다. 실제로 죽일 생각은 없다. 단지 총을 겨눴을 때 그들의 겁먹은 표정을 지켜보고 싶을 뿐이다. 경찰이 들이닥치면 총구를 입에 물고 방아쇠를 당긴다. 강의실 천장과 벽에 남은 그의 얼룩은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
나이를 먹으니까 자꾸만 우울해지는 구나.
죽기 전 마지막으로 한 통화에서 아버지는 말했다. 그는 짜증이 났었다. 어차피 인간은 누구나 외롭고 힘들다. 혼자 괴로운 양 자신의 불행을 남에게 토로하는 것은 지극히 이기적인 태도였다. 그런 사적인 불행은 서로 감추고 지내는 것이 피차 편한 것이다.
*
아름답고 착한 것을 보면 구역질이 난다.
*
그 날 광화문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청년들은 흥분한 상태로 피자와 치킨을 나눠주었다. 스피커에선 전직 대통령을 조롱하는 노래가 흐르고, 청바지를 입은 청년들이 노래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청년들의 눈빛이 서로를 핥았다. 서로가 어떤 존재인지 너무나도 궁금한 눈동자였다. 그는 닭다리를 하나 받아 한 입 베어 먹었다.
뜨거운 육즙이 그의 턱을 타고 흘렀다. 닭다리에선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흡사 종이를 씹는 것 같았다. 아니, 사람의 살을 씹는 것 같다. 닭다리는 그의 살인 것 같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살인 것 같기도 했다. 그는 드디어 자신이 식인종이 되었다고 느꼈다.
인육을 먹으면서 그는 기자들이 터트리는 플래시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혀 차는 모습을, 유가족들의 증오 섞인 눈동자를 보았다.
그는 난생처음 자신이 살아있다고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