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연애에 제 3자가 필요한 순간
'사랑을 글로 묘사해보세요.'
늘 너무 떠들어 시끄럽기까지 했던 수업 시간이 누구도 오지 않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글을 쓰기 위한 시간이 주어지자마자 빠르게 글을 써내려간 사람 역시 없었다.
아무도 손을 들고 발표하지 못했던 그 날. 수업 말미에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저도 사랑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사랑은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어 계속해서 궁금해하는 감정인 것 같아요."
상대의 마음을 알 수 없어 궁금해하는 과정이 찬란하고 밝게 빛나기만 한다면 좋을텐데 쉽게 마음을 지배하는 것은 부정적인 감정이다.
아주 작은 먼지 하나에도 눈물이 흐르고 겨우 당신에게 내보인 내 마음은 어찌나 연약한지 붙들어주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다. 향기도 형태도 알 수 없는 사랑이라는 바람속에서 언제나 길을 잃는다.
결국은 다 지나가는 과정이라고 인정하는 일을 매번 반복하지만 역시나 그 당시에는 알 길이 없다.
- 이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 걸까?
- 갑자기 연락을 잘 안해. 이제 나에 대한 감정이 식은 걸까?
- 사귀자는 말은 안했는데 손을 잡았어. 뭘까?
도대체 왜 그러는 건지 당사자에게 물어보기엔 얄팍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내가 당신을 좋아해서 이렇게 마음 고생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결코 알리고 싶지 않다.
그렇게 당신의 마음을 확신할 수 없어 고통스러울 때 우리는 제 3자에게 의지한다.
나의 연애와 다르게 타인의 연애는 어렵지 않게 느껴진다.
갈등을 분석하는데 불필요한 감정이 들어가지 않아 이성적으로 상황을 판단하는데 큰 힘이 들지 않는다.
당사자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높은 사이라면 해결책을 제안해주기도 쉽다.
'너는 보통 이럴 때 엄청 방어적이더라. 조금 덜 예민하게 굴어봐.'
타인에게 나의 고민을 이야기 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마음이 누그러진다.
누구의 잘못도 없기에 더 막막한 남녀간의 갈등에서 누군가 선을 그어 교통정리를 해주면 답답함이 해소된다.
[나도 그랬어]라는 마성의 한 마디는 그들이 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무한한 신뢰가 생긴다.
지나친 솔직함은 정중함을 잃어 상대의 마음을 멀리 밀어버릴 지도 모른다. 갑작스럽게 밀려드는 사랑의 불확실함에 불안한 마음이 든다면 당사자가 아니라 타인에게 조금씩 털어놓는 것이 때때로 도움이 된다.
물론 헷갈리지 않을 정도로 무조건적인 사랑을 퍼부어주는 상대를 만난다면 이런 고민에 공감이 되지 않을수 있다. 하지만 사람의 사랑이 늘 일정한 온도로 유지될 수 있을까? 어느 날은 내가, 어느 날은 네가 조금 더 뜨겁거나 차가운 그 온도의 차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이 두 사람의 사랑을 더욱 견고하고 성숙하게 만들어주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