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온 May 16. 2019

백수의 번아웃

오늘따라 가방 끈이 얇긴했다. 잠자리 눈처럼 툭하고 튀어나오는 커다란 헤드폰 하나, 렌즈 하나 기가막히게 무겁게 만들기로 유명한 S사의 단렌즈와 풀프레임 카메라, 아이패드, 아이패드 용 매직키보드, 작은 파우치 이렇게 가방에 넣고 겨우 세시간 밖에 있었을 뿐인데 완전히 지쳐버렸다.


오후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집에 돌아와 요리를 했다. 양파를 드르륵, 토마토를 드르륵, 고기를 지글지글 볶아 거기에 모두 붓고 25분을 끓인다. 마지막 5분엔 고체 카레까지 넣어주면 드라이카레 끝. 오늘따라 물이 많다. 드라이카레는 물기 없이 꾸덕한 맛으로 먹어야 하는데 이건 액체 카레다.


왓챠플레이를 켜서 아무거나 틀었다. 오늘은 사진 때문에 힘들었으니까 사진 관련 영화를 보자.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중간 중간 딴짓을 하긴 했지만 영화는 재밌었다. 나중에 한 번 더 진지하게 보고 싶었던 영화. 결국 개미같이 무던하고 꾸준하게 일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영화인가.




몇일전까지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 해야하는 일들을 자꾸만 미루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나는 원고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취재해온 것들이 내 기준에 충분치 않았다. 재취재를 하기엔 우리 집에서 400km 정도 떨어져 있으니 다시 갈 수도 없는 노릇. 기억력, 브로슈어, 백과사전을 이 잡듯 뒤져 원고를 완성했다. 


겨우 원고를 제출하고 나니 클라이언트 실수로 원고 내용이 일부 누락되었다. 자신 없던 원고여서 내 탓이라 생각하고 납작 엎드려 누락 사유를 물었더니 담당자 실수란다. 짜증보단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나간 원고는 지나간 원고로 털었다. 다음부터 취재 준비를 더 열심히 해야지. 더 확실하게 준비하고 더 완벽하게 만들어내야지. 그래서 다시는 스스로 자책하지말아야지 다짐했다. 


원고 작성 - 강의 준비 - 취재 - 원고 작성 이 사이클 사이에서 끼어있던 나는 마치 디스크가 밀려서 터지듯이 톡 하고 터지기 직전이었다. 지난 원고를 말아먹었다고 생각만 안했어도 '뭐 어떻게든 되겠지'하고 넘어갔을지도 모를 부담스러운 스케쥴도 '잘해야해', '완벽해야해'라는 생각속의 감옥에 갇혀버렸다. 걱정과 자책, 스스로가 주는 부담 사이에 짓눌려 결국 잔뜩 지친 얼굴로 집에 들어왔다. 


평소엔 무거운 가방을 들어도 아무렇지 않던 어깨가 오늘은 찌릿하더니 팔까지 저리기 시작했고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팔이 부러진것도 아니면서 자꾸만 뼈가 시렸다. 한참을 마사지볼로 어깨 마사지를 하는데 숨을 훅- 훅- 하고 끊어서 내쉬는 내 모습을 자각했다.


아. 나 번아웃인가?




과거에 받은 월급에 비하면 지금 내가 받고 있는 고정 수입은 겨우 3분의 1수준. 

비정기적으로 들어오는 수입들까지 합치면 월급의 반정도 되나 싶지만 겨우 입에 풀칠하는 정도다. 

내 자비로 해외여행은 아직 꿈도 꾸기 힘든 신참 프리랜서의 현실이다.


수입이 적게 들어오는 것보다 조금 더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은 '잘해야 한다'라는 생각과 '왜 나는 잘하지 못하는가', '나는 왜 일을 미루는가'하는 자책이다. 애인과의 갈등에는 그렇게 정면돌파를 기가막히게 하면서 내 문제에는 뱅뱅 돌아 회피하고 있다. 


인기 많은 상업 시설의 취재는 처음이라서 아마 그게 부담스러운 모양이다. "너가 뭔데 우리를 취재하러 와?" "너 어디 잘하나보자" 이런 괜한 걱정도 있을 것 같고 아직 '기자'라고 명함을 내미는게 어색해서도 있을 것이고 정말 아무도 모르지만 속으로 낯을 무지하게 가리는 내 성격도 한 몫 할 것이다. 낯선 공간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고 처음보는 피사체를 촬영하고 알아와야 하니까 무서운거다. 


스트레스를 가중하게 한 건 다른 이유도 있었다. 몇일 전 투병중인 어머니와 단둘이 이틀을 보냈다. 겨우 이틀. 하는 일은 어머니 식사와 간식 챙겨드리기가 전부인데도 밤만 되면 불안함과 두려움에 눈물이 마를 새가 없었다. 혹시나 어머니가 긴 밤 동안 잘 못 되시기라도 하면 어쩌나 혹은 긴 외출을 하신 아버지가 영영 돌아오지 않아서 내가 어머니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오면 어떡하나 두려움에 손끝을 뜯었다. 엄마를 간병하고 삼시 세끼 챙기는 일은 평생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아픈 가족을 바라보는 슬픔을 나 혼자서 겪어야 한다면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 




무사히 아버지는 외출을 마치고 돌아오셨고 어머니는 나와 단둘이 1박 2일을 보내셨지만 큰 문제 없으셨다. 취재를 여전히 미루고 있지만 어쨌든 마감 기한이 다가오므로 나는 어떻게든 해낼 것이고 교육은 당장 내일 진행해야한다. 


결국은 다 다가오는 일들과 흘러가는 일들이 교차하는 날들의 반복이다. 


가족의 아픔을 절망적으로 비관적으로 바라보지 않는 연습을 하는 것에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가 아니라 "이런 일이 있기 때문에 내가 더 가족을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구나"라고 생각한다. "이런 일이 아니었다면 내가 엄마께 직접 음식을 만들어 대접할 일이 몇번이나 있었을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다. 


여행을 다니며 사진을 찍고 글을 쓰는 일이 좋아 프리랜서를 택했다. 인터넷에 보면 대책없이 전업으로 돌아선 사람들이 첫 해에 100만원도 못 벌었다는 글들이 수두룩하다. 그렇게 보면 나는 내가 좋아하는 여행을 돈을 받으면서 할 수 있고 기자라는 명함을 가지고 새로운 공간을 탐험하는 기회를 누리는 건 행운이다. 


결국은 다 생각하기 나름,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고리타분한 말로 나의 번아웃을 달래야 할 것 같다.

슬픔은 슬픔으로 인정하고 자책은 던져버리고 고통은 흘려보내다보면 또 이러한 일들에 익숙해지는 날들이 오겠지. 




매거진의 이전글 생애 첫 정신건강의학과 방문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