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온 Jul 05. 2020

Mayday Mayday

내가 힘들다고 말하지 않았던 이유

"언니는 왜 우리에게 힘들다고 말하지 않아?"


사실 난 고통스러웠다. 익숙하지 않은 직사각형의 방에서 쏟아지는 햇빛을 맞으며 극세사 이불 속에 마치 잠겨있는 것처럼 누워있었다. 벗어나고 싶은데 벗어날 수가 없었고 인정해야 하는데 인정할 수가 없었다.


힘들다고 말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봤다.

첫 번째. 남한테 아무리 힘들다고 말해도 남은 남이다. 모든 고통을 대신해 줄 수도 없고 사라지게 만들어줄 수도 없다. 그러니 말하는 자체가 나에게는 리소스 낭비일 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감정을 전달하는 것으로 느껴져 피하게 된다.


두 번째. 가벼운 위로가 싫었다. 힘내. 다 잘 될 거야. 다 지나갈 거야. 괜찮아지실거야. 네가 그렇게 힘든 줄 몰랐어. 이런 위로가 와닿지 않는다. 왜냐면 힘이 안 나거든. 잘 될지 안될지 모르거든. 지나가겠지만 나는 아직 그 지나는 순간에 있거든. 마음의 여유가 없는 나에게 타인의 위로들이 닿았을 때 나의 마음의 가시들이 그것들을 튕겨내어 혹여나 타인을 상처 입힐까 두려웠다.


서랍 속 진통제를 한 알 먹고 숨을 크게 내쉬었는데도 마음의 답답함이 해소되지 않았다. 글을 쓰다가 한 문단 멈춰 눈물을 쏟아내고 다시 눈물을 쏟아내고 이제야 조금 살 것도 같다. 그러니 혹여나 이 글을 보는 나를 사랑하는 이들이 나를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저 '너는 그렇게 살고 있구나' 정도의 온도라면 고마울 것 같다.



또다시 5월. 마치 조종사들의 구조 신호처럼 메이데이. 메이데이를 외치듯 새로운 고통이 시작되었다.

인생이 참 드라마틱 하다. 이왕이면 무미건조한 드라마가 되고 싶은데 얼마나 내가 재능이 많은 사람이길래 이런 드라마를 나에게 주는 걸까.


엄마가 주무실 때 내는 소리들. 그런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괜히 방문 옆에 조용히 서서 그런 소리가 나기를 기다린다. 혹시나 엄마가 죽었을까봐. 숨을 안 쉬고 있을까봐 불안해서. 그런데 얼마 전부터는 집안에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아... 이건 눈을 감아도 귀를 막아도 내가 어떻게 하려고 암만 노력해도 역시나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엄마가 나를 나지막이 불렀다. 기저귀. 기저귀를 혼자서 찰 수 없다고 조금 도와달라고 하셨다. 아무 일 아닌 척 엄마의 기저귀를 채우고 뒤돌아 나가려는데 "고-마-워" 느릿한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엄마의 마음이 등에 와닿았다. 이 망할 놈의 눈물은 마르지가 않아서 고작 스무 걸음도 안되는 엄마 방에서 내 방까지 그 새를 못 참고 후두둑 바닥에 흔적을 남겼다.



인생을 통틀어 연인에게 들었던 가장 상처가 되었던 말이 있다. '변하지 않는 사실인데 왜 이렇게 부정적으로만 생각해' 지금 생각해도 이 말이 가슴 속 큰 상처로 남아서 트라우마처럼 나를 한참을 괴롭혔다. 말이 뿌리내린 마음속에서는 우울하고 힘들어하는 모습 자체를 문제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래서 힘들었다. 고통스러워하는 내 모습이 고통스러웠다. 내 삶에 왜 이런 고통이, 고난이 찾아왔는가. 나는 왜 그 고통을 담담하게 이겨내지 못하고 나약하게 울고 있는가 그렇게만 생각했다.


더 이상 더 힘들 일도 없을 것 같은데 올림픽 신기록 경신하듯이 자꾸만 고통의 강도가 올라가던 차에 생각했다. 어쩌면 삶에 고통이 찾아오는 게 아니라 고통 자체가 삶이구나. 희로애락. 삶에는 분노도 슬픔도 다 있는 것인데 내가 그동안 너무 행복하고 기쁜 일들만 가득했구나. 그냥 지금 이게 내 삶이구나. 더 나빠진 것도 아니고 더 비극적인 것도 아니고 지금 이게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구나. 이렇게 고통이 주어졌을 땐 그저 온 힘을 다해서 슬퍼하고 괴로워하고 그러면 되는구나. 자 그럼 괴로워하자. 그저 마음껏 괴로워하자.



사람들에게 엄마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늘 이렇게 말했다. '어쩌면 누구나 겪을수도 있는 일이잖아요. 사랑하는 가족이 아프고 부모님이 늙어가시고 이런것들. 다 자연스러운건데 제가 조금 더 먼저 겪는것 뿐이겠죠. 괜찮아요.'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이 인상적이었다. '대다수가 이정도의 강도로 겪지는 않죠.' 맞다. 나는 조금 더 세게 얻어 터지고 있다. 도대체 내가 얼마나 강한 사람이길래 이렇게 엄청난 강도의 펀치를 날리는지 모르겠지만 오늘도 이렇게 마음을 두드려 맞고 방안에서 엉엉 울면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키보드 워리어가 되어 스스로를 위로한다.


글을 다 쓰고 보니 소제목으로 '힘들다고 말하지 않는 이유'를 쓰는게 부끄러워진다. 이렇게 길게 힘들다고 말해놓고 말이다. 왓에버라고 입으로 말하지만 손가락은 조심스럽게 제목을 고친다. 힘들다고 말하지 '않았던' 이유로.


매거진의 이전글 태풍에서 벗어나는 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