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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온 Aug 27. 2020

코로나 이후의 삶

프리랜서 여행기자 2년차의 넋두리

벌써 9월이다. 

한 것도 없이 나이만 먹었다고 생각해도 뒤돌아 보면 소소하게 무언가를 이루어냈던 것 같은데 올해는 정말 샅샅히 뒤져보아도 무언가를 이룬게 없다. 칭찬해줄만한 것이라곤 여기까지 버텨온 것?


5월 종합 소득세를 신고했을 때 지난 한 해 동안 여행 기자와 블로거로 벌어들인 돈이 천만원에서 조금 모자랐다. 원래 받던 연봉의 반의 반의 반은 되려나 싶은 금액이지만 그럼에도 여행업의 프리랜서 1년차치고 이정도라니 대단하다 싶었다. 지난 해 연말 2020년 목표로 같은 분야의 일로 월에 미화 3000불을 버는 것을 정했는데 월에 3000불은 무엇, 지금까지 번 돈이 그 정도도 안되는 것 같은데?



여행기자라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나의 일은 두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단순 기고 형식, 다른 하나는 직접 기획 기사를 작성하여 취재를 하는 방식이다. 기고 형식의 경우 코로나와는 크게 상관이 없고 여행 에세이를 적는 칼럼의 형식이라 큰 부담은 없지만 그만큼 고료도 적다. 반면 직접 기획하고 발로 뛰어 다녀오는 경우에는 고료가 높은 편. 코로나로 인해 반년 가까이 취재를 못하다가 6월이 되서야 거의 처음으로 취재를 했는데 그것도 두달도 안되어 장마와 코로나 재확산으로 인해서 멈춰졌다. (나는 안전민감증이라 하지 말라는 건 곧 죽어도 안하는 스타일. 코로나가 무서워서 정말 집에만 있었다. 물론 지금도)


대학을 졸업하고 약 8년간의 시간동안 근로소득자로 일한 기간이 2년이 겨우 될락말락하니 안정적인 소득에 연연해하는 편은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오히려 불안정한 삶에서 더욱 에너지를 얻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라고 여긴 순간부터 나는 돈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요인들이 나의 삶을 방해하자 나는 목적이라는 닻이 사라진 배가 되어 망망대해를 표류하고 있었다. 



코로나가 휩쓸고 간 뒤(사실 지금도 휩쓸고 있지만) 그나마 얻은 거라곤 나를 더 잘알게 되었다는 것.

나는 변화에 적응하는데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리는 사람이라는 걸 이제서야 알게되었다.

겉으로는 주어진 상황에 무척 잘 적응하고 어느 모임에나 쉽게 잘 어울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그 순간에 나에게 새로운 역할을 줄 뿐이었다. 마치 연기자들이 그 작품을 할 때 그 역할에 진심인 것처럼 말이다. 그 시간이 끝나면 나는 다시 원래의 나로 돌아와 늘 살아왔던 삶을 살아왔다. 그런데 지금은 모든 것이 익숙하지 않은데 그 익숙하지 않은 것에 익숙해져야했다. 새로운 일상이 펼쳐졌고 언택트니 뉴노멀이니 비대면이니 하는 새로운 상황들이 나타났다. 


그동안 당연하게 해온 것들을 '못'하게 되면서 새로운 무언가를 해야하는데 생각과 행동이 모두 멈춰진 상태. 

여기에는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반년간 살면서 심화된 우울감이 사고회로를 둔화시키는데 한 몫 했다.  루틴한 삶이라도 살았다면 잠시나마 깊은 우울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텐데 낯선 환경에 둘러쌓여 나에게 부정적 자극을 주는 것들에 계속해서 노출되다보니 내가 나를 끌어낼 기운이 없었다. 그리고 결국 다시 익숙한 동네로 이사를 오게 되면서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가려고 하지만 이제는 생활 환경이 아니라 생활 방식이 바뀐터라 또 여기서 적응할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다. 



내 주변의 여행업계 프리랜서들은 어려운 시기일수록 더욱더 노력해서 자신만의 새로운 길을 개척하거나 혹은 위험을 감수하며 이 시대에 맞는 여행지를 발굴하곤 했다. 멋진 사람들 주변에 둘러 쌓여있어 참 행운인데 나는 그 속에서 나는 자격지심을 느꼈다. 인스타 팔로워가 적어서도 돈을 적게 벌어서도 아니었다. 오로지 '나는 왜 정체되어 있는가' 이 생각 때문이었다. 내가 나를 멋지게 보지않는게 가장 큰 스트레스였다. 


특히 '과거의 나와의 비교'는 엄청난 독이 되었다. 과거의 나는 이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이렇게 추진력이 좋고 멋있었는데! 이런 생각들이 지금의 나를 작아지게했다. 그중에서도 외형적인 변화는 어마어마한 자존감 추락을 불러왔다. 평생 체지방 18kg를 유지하다가 처음으로 10kg로 진입해놓고서는 마치 처음부터 그렇게 탄탄한 몸을 가진 사람처럼 살았다. 그러다 갑자기 18kg로 돌아왔다. 어쩌면 늘 살아왔던 몸으로 돌아온 것 뿐인데 나는 내가 패배자 뚱보가 된 것처럼 칩거했다. 그 좋아하는 연애도 흥미가 사라졌다.



과거의 나 자신이 지금의 나 자신보다 훨씬 멋질 수 있다. 발전하는 만큼 퇴보할수도 있으니까. 그치만 내가 고려해야하는 건 '지금의 나를 둘러싼 환경의 변화'도 있다는 것이다. 지금의 내가 멋지지 않게 보이는 이유가 오로지 나 자신이 못났기 때문은 아니라는 것. 그러니 자책하고 그 부정적인 감정 속에 빠져있지 말고 지금의 모습을 되돌아 볼 여유가 생길 수 있도록 나 자신의 북돋아줄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우쭈쭈도 영 좋은 방법은 아니더라. 역시 과유불급)


코로나 블루를 아주 세게 단단히 맞아버렸나보다. 스스로 나는 정체되었다고 느끼지 이 상황은 끝나지 않지, 이러한 불안감이 글을 쓰게 할 여유조차 만들지 않았었다. 그래서 오늘은 억지로 브런치를 열었다. 그동안은 쓰고 싶은 글감이 있을 때 쓰는데 오늘은 쓸 말이 없지만 이렇게 글을 쓴다. 쓰다보면 그 속에서 에너지가 생기겠지 싶어서 말이다. 


탓 하고 탓 하다보면 이 모든게 인간, 인간의 욕심 탓이겠지만 그래도 스스로를 탓하기보다는 코로나 탓을 하자. 하루하루 버티다 보면 언젠가 올해를 추억으로 돌아볼 그런 순간이 오겠지. 역사적인 존버의 한 해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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