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브런치는 부캐다
초등학생 때 우리는 프리챌이라는 커뮤니티가 있었다. (줄여서 컴틔라고 불렀음)
프리챌 커뮤니티를 이어서 다음 카페가 중고등학교 때까지 유행을 했고 대학에 들어와서 싸이월드 클럽이 생긴 것 같다. 나는 이중에서 다음 카페를 굉장히 좋아했었는데 친구들과 릴레이 소설을 쓰고 다른 사람들이 쓴 소설을 읽고 그랬다. 그 나이에 뭘 안다고 연애 소설을 썼나 싶지만 아마도 귀여니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청소년기를 지나 성인이 되고나니 내가 지어낸 이야기보다는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욕구가 강해졌다.
블로그를 처음 시작한건 2009년 여름이었는데 이 때 시드니로 2달간 계절학기를 들으러 갔었다. 계절학기를 빙자한 어학연수라고나 할까. 이 때 부모님이 어린 딸 시드니에서 잘 사시는지 궁금하실까봐 싸이월드 블로그를 했다. (유튜브를 했어야 했는데. 후) 그렇게 나의 글쓰기의 본격적인 역사가 시작되었다.
시드니에서 돌아온 이후에는 한동안 글을 쓰는 것을 잊고 살았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종종 글을 썼다. 짧은 글.
광고학도였던 나는 발표를 하기 위한 스크립트도 직접 써야 했고 광고 카피도 써야했다. 때로는 보도자료도 써야했고 아르바이트도 보도자료를 쓰고 검수하는 그런 아르바이트를 했으니 생활에서 글을 쓰는 것이 무척이나 가깝게 맞닿아 있었다.
그러다 중국으로 교환학생을 가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네이버 블로그를 시작했고 이는 대만 어학연수-워킹홀리데이까지 이어서 블로거로서의 입지를 굳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시작한 취미 생활이 지금 나의 직업이 되었으니 소소하지만 글을 써서 밥을 먹고 사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런 내가 새로운 플랫폼인 브런치를 시작하게 된건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사람보다 글을 더 먼저 보여주고 싶었다.
블로그를 오래 하다보니 이제는 글만 보고 들어오시는 분들보다 내가 글을 올렸기에 들어오는 분들이 많아졌다. 굳이 자기가 관심있는 주제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내가 썼기 때문에 들어와서 봐주시는 분들이 많아졌다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잘써야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이렇게 쓰면 좋아할까, 저렇게 쓰면 좋아할까 하는 생각이 블로그 뿐만 아니라 인스타그램에서도 멈춰지지 않았고 보여주기 위한 글을 쓰는 경우가 많아졌다. (어떻게 하면 유입이 잘 되고 상위 노출이 잘되고 이런거 말이다)
브런치는 그런 의미에서 다르다. 완전히 제로 베이스에서 시작하는 것이고 관심있는 주제가 있어서 검색하시다가 들어오시는 경우가 더 많을 거다. 그래서 글 자체로 먼저 보여줄 수 있다는게 좋다. 글을 위한 글을 쓰는 느낌이랄까. 오로지 글쓰기를 사랑하는 내가 글쓰기에만 집중한 결과물을 보여줄 수 있는 곳.
둘째. 속 깊은 이야기들을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엔 부담스럽다.
브런치를 제외한 다른 SNS는 이미 나의 사생활이 많이 노출되어 있다. 출신학교, 거주지, 이름, 대략적인 나이, 그동안 해왔던일 같은 개인정보 말이다. 그래서인지 정말 마음 깊숙하게 있는 이야기들은 하기가 쉽지 않았다. 지내다보면 생활속에서 일어나는 갈등이나 감정적인 이벤트를 통해 글감이 생기는 경우가 있는데 (심지어 술자리에서 짧게 나누었던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쑥쑥 자라나 좋은 소재가 되어주기도 한다) 이런 깊은 생각을 하는 모습을 나에 대해 아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물론 실제로 내가 생각을 자주 나누는 지인들은 나의 브런치를 이미 알고 있다. 내가 나서서 보여준다. 이러한 사건에서 내가 이러한 것을 느꼈고, 이러한 이벤트를 통해 이러한 감정이 생겨났다는 것을 글로 공유한다. 다만 다른 SNS는 가족들도 많이 보다보니 가족들에게 보여주기 싫은 나의 힘들고 아픈 모습들은 자연스럽게 브런치게 쓰게 된다. 혹여나 나때문에 걱정할까봐 말이다. 더욱이 데이팅 앱을 해본 후기나 사내 연애를 한 이야기들은 실제로 만나는 연인들에게 숨기지 않지만 그렇다고 글에 쓴 것처럼 아주 자세하게 말하지도 않는다. 그저 '아 전에 사내연애 한적 있어', '아 나 데이팅앱으로 사람 만나본적 있어' 정도만 이야기 하는 정도. 하지만 글감 자체가 워낙 재미있으니 글은 쓰고 싶고, 그래서 브런치로 왔다.
어린시절부터 장래희망 중 하나는 작가였다. 어른이 되고 나서야 '작가'와 같은 언어 예술가에 대한 호칭은 어쩌면 너무나 생기기 쉽지만 또 그걸 스스로 말하기도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 의미에서 브런치는 우리 모두를 작가라고 불러주어 참 좋다. 글을 쓴다는 자체만으로도 누군가에게 작가로 인정받는 기분이 든다.
언젠가 어떠한 종류로 책을 쓰게 될지 모르지만 꼭 종이로 된 책을 한권 내고 싶다. 그럴때가 오면 이렇게 열심히 브런치에서 나의 이야기를 풀어낸 지금 시간들을 기특하게 여겼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