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내향인의 제주혼자 여행기
여행 계획을 세우면서 혼자 밥 먹는 것이 가장 신경 쓰였다.
혼자 식당에 가는 건 내 생애 두 번째였다.
혼자 먹느니 굶는 걸 택했던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나는 쪽팔리지 말자 다짐하는 순간 전에 없이 계획형 인간이 됐다.
경험이 없으니 어떤 식당을 골라야 할지 감이 오질 않았다.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검색해 보니 몇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했다.
하나, 주인이 친절해야 한다.
둘, 사람이 붐비는 열두 시에서 한시는 피하자.
셋, 혼자 앉을 수 있는 바 테이블이 있을 것.
내가 처음으로 도전한 곳은 제주 애월 김만복 김밥이다.
친절도, 위치, 바 테이블 등 모든 조건이 맞아떨어지는 곳이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포장해서 나올 수 있으니 그만한 곳이 없다.
들어가자마자 바 테이블을 확인했다.
아무도 없었지만 목욕탕 자리 맡는 스피드로 가방부터 던져 놨다.
주문은 키오스크로 해야 한다. 만복이네 김밥과 오징어무침을 눌렀다.
핸드폰을 갖다 대 결제하려는데 나의 작은 마음이 속삭였다.
‘그거 결제 제대로 안 되면 망신이야. 너 잘할 줄 모르잖아. 그냥 카드 꽂아서 해.’
그 친구의 말에 걱정이 짙어져 카드를 꽂았다. 앙금이 가라앉듯 작은 마음이 가라앉았다.
에메랄드빛 바다를 보며 혼자 밥을 먹다니, 아이가 처음 엄마라고 불렀을 때보다 더 벅찼다.
울컥하는 걸 겨우 참고 김밥을 먹고 있는데 누가 말을 걸었다.
“이 카드 주인 있으신가요?” 놀라 고개를 돌려보니 사장님이 검은색 신용카드를 들고 있었다.
내 카드였다.
결제를 마치고 그대로 꽂아두고 온 것이다.
일순간 옆에 있던 아저씨와 뒤에 있던 4명의 가족이 나를 쳐다봤다.
“아! 제건데요” 열두 개의 눈동자를 피하려 시선은 사장님 손에 둔 채 서둘러 지갑에 넣었다.
작은 소동은 그렇게 잘 마무리되었다 생각했다.
그런데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그게 아니란 걸 알게 됐다.
갑자기 여행 경비가 궁금해 카드 사용 내역을 살펴보다 김밥집에서 네 건이나 결제가 돼 있는 걸 발견했다.
2024. 4. 10 제주 김만복 애월점 8,500원
2024. 4. 10 제주 김만복 애월점 8,500원
2024. 4. 10 제주 김만복 애월점 36,000원
2024. 4. 10 제주 김만복 애월점 15,000원
뭔가 크게 잘못된 것 같아 머릿속에 뇌우가 쳤다.
사장님이 내게 돌려줄 때까지 카드는 시키지도 않은 일을 묵묵히 하고 있었다.
그때 가게에 있던 사람은 아저씨와 4인 가족뿐이었다.
아저씨는 김밥을 시켜 먹더니 부족했던지 라면을 추가로 주문했다.
아들, 며느리, 부모님이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던 가족은 이것저것 다 먹어보자며 잔뜩 주문했다.
그걸 다 합치면 자그마치 53,000원이나 되었다.
혹시 그분들이 양심선언이라도 하지 않았을까 싶어 김밥집에 전화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친구에게 얘기하니 카드 결제 문자 알림 서비스도 안 해놨냐며 답답해했다. 하지 않았다.
설사했더라도 건건이 확인하는 성격도 아니다. 나야 그렇다 치자.
어째 그 사람들도 똑같이 확인을 안 했을까.
가게 사장님이 카드사에 알아봤지만 방법이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그래도 친절한 사장님을 고른 덕은 봤다.
내 일처럼 안타까워해 주셨고 본인이 반을 부담하겠다고 하셨다.
계속 거절하기도 뭣해서 수화기 너머로 폴더인사를 하고 계좌번호를 보낸 뒤 이 일을 마무리했다.
참으로 파란만장한 첫 혼밥 전을 치렀다.
그동안은 실수하는 게 두려워서 하고 싶은 일을 상상으로만 했다.
하지만 막상 겪어 보니 결코 나를 K.O 시킬 수 없는 잽 한방에 불과했다.
그러니 자꾸만 링 위에 올라가고 싶어진다. 소심함은 죄가 아니다. 불편할 뿐이다.
나는 이 불편함을 하나씩 고쳐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