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존재만으로도 파리인 것을

도도한 파리 8

by 리아

프랑스 파리를 떠올리면 누구든 제일 먼저 머릿속에 에펠탑을 그릴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또한 높게 우뚝 솟은 에펠탑을 바라보며 잔디밭에서 먹는 맥주를 생각했다. 상상만으로도 지상낙원과도 같았다. 그러나 내가 에펠탑을 자세히 보며 아름답다 느낀 때는 무려 파리에 떨어진 지 나흘이나 지난 후였다. 프랑스파리의 모든 것이 그리고 모든 공간이 나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기에, 아무리 ‘프랑스는 에펠탑’이라는 생각이 들었어도 제일 먼저 찾아보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만큼 파리는 정말로 순간순간이 아름다운 시간이었고 내가 발을 딛는 모든 공간이 내게는 원더랜드였다.

처음 에펠탑은 마주한 때는 세느 강 위에서 바토무슈를 타면서였다. 유람선 탑승을 위해 사람들 사이에 껴 있는 동안 마침 정시마다 반짝인다는 에펠탑의 자체 발광 쇼를 볼 수 있었고, 마침내 유람선을 타면서 거대하게 빛나는 에펠탑을 만났다. 에펠탑 앞을 지나는 찰나에 그 거대한 철조물과 사진을 찍고 싶었던 나는 과감히 실루엣만을 남기며 누가 주인공인지 모를 사진을 건질 수 있었다. 에펠탑과의 첫 번 째 만남은 그렇게 차가운 이 강바람이 부는 세느 강 위에서 끝이 났다. 짧았던 만남에 감동을 느낄 새도 없었다. 파리에 12일을 머무르기로 했으니 분명 다시 조우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두 번째 만남은 바로 다음날 이었다. 미리 약속하고 만나는 것이 아닌 갑작스러운 만남, 흔히 번개라고 하는 그것이었다. 언제나 갑자기 만나는 것은 예상치 못한 즐거움과 또 보다 더 큰 반가움을 불러 일으켰고 이번도 예외는 아니었다. 물론 조금은 다른 개념이었다. 갑작스럽게 만난 것과 우연히 만난 것. 교집합을 지닌 이 두 가지 종류의 만남은 둘 다 ‘예상불가’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인생은 한치 앞도 알 수 없기에 흥미롭고 언제든 변수를 지니고 있기에 두렵기도 하다. 일상이라는 것은 그나마 내가 계획한 일정대로 주로 흘러가지만, 여행은 전혀 그럴 수가 없었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고 낯선 경험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는 것이 여행이었다. 여행은 매일같이 보내는 일상과 전혀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되고 또 어떤 면에서는 일상의 한 부분이 되기도 한다.

‘예측 불가 혹은 예상할 수 없음’이 여행의 가장 큰 묘미이지만 나는 그저 내 인생 자체를 여행처럼 단 하루도 내다 볼 수 없도록 흥미진진하게 만들어가고 싶었다. 그리고 여행 도중 만난 수많은 우연과 인연은 참으로 내 여행을 더욱 활력 넘치는 인생으로 만들고 있었다. 분명 다양한 우연이지만 그것은 또한 더 멋지게 살아가고 싶은 나를 위해 신이 만들어 준 인연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두 번째 에펠탑을 만난 것은 그랬다. 우연이었고 또 노곤한 하루의 끝에 마주하게 된 갑작스러운 만남이었다. 몽생미셸 투어를 마치고 경로 상 내가 제일 마지막에 숙소 앞에 내리게 되었고, 투어를 함께 한 사람들이 모두 내린 후 가이드님과 숙소로 가는 길에 신호 대기 중인 차 안에서 ‘우연히’ 에펠탑을 만났다. 잠시 넋을 놓았다. 파리에 온 지 나흘 만에 제대로 마주하는 에펠탑에 나는 정말이지 넋이 나갔다. 전날 세느 강 위에서 바라본 에펠탑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었다. 웅장했지만 그 아래 모여 감상하고 있는 사람들의 작은 무리를 보니 따뜻함마저 느껴졌다. 하루 종일 투어를 위해 발 아프게 돌아다녔던 투어가 끝나고 다시 파리 시내로 돌아와 마주하는 에펠탑은 그렇게나도 모르게 쿵, 심장에 박혀 지친 나를 지지해주었다.

세 번 째 에펠탑을 본 때는 본의 아니게 역시 두 번 째, 그 다음날 이었다. 모든 곳이 감동의 공간이었지만 한국에 있는 내 사람들에게 가장 주고 싶은 것은 작은 에펠탑이었다. 비단 가장 떠올리기 쉽고 유명한 것이어서가 아니었다. 형형색색의 작은 에펠탑 열쇠고리는 어디에도 둘 수 있고 또 언제든 지니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가장 예쁘고 또 매우 싼 값이기도 했다. 이 날은 바로 흑형들로부터 에펠탑 열쇠고리를 다량 구매 하기로 마음 먹은 날이었다.

마지막으로 에펠탑을 본 날은 유일하게 홀로, 그리고 낮에 본 날이었다. 에펠탑 조망을 위한 몇몇 환상의 장소가 있는데 샤이오 궁전은 바로 그 핫스팟 중에 한 곳이었다. 적당히 안개가 껴 에펠탑은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그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좋은 사진을 건질 수 있었던 것은 좋은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었다. 가족과 함께 여행을 온, 영국에서 공부하고 있다던 조나단은 가족 사진을 요청했고 그에 대한 보답으로 나도 안개에 살짝 가려진 에펠탑을 배경으로 좋은 사진을 얻을 수 있었다. 한국인과 한국을 사랑하는 외국인을 만나 우리나라에 대한 자부심을 한껏 느낄 수 있던 하루였다. 마지막일 줄 몰랐던 에펠탑을 뒤로 하고 근처 맛집을 찾아갔으나 문이 닫힌 상태였고 하는 수 없이 옆에 있던 식당을 들어갔다. 혼자 들어가기에 살짝 고급스러워 보여 부담이었지만 이곳은 파리니까, 혼자 당당하게 들어갔다.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원래 가려고 했던 식당이 문을 안 열어 가게 된 이 식당에서 나는 17유로로 너무나도 푸짐하고 맛있었던 전식, 본식, 그리고 후식까지 먹었다. 인상 좋고 잘생긴 웨이터의 배려심 가득한 미소 덕분에 식사 내내 외로움도 잊을 수 있었다. 혼자가 된 나는 꽤 잘, 적응하고 있었다.

SAM_6793.JPG 2017년 1월 5일, 세 번째 마주한 커다란 에펠탑.
SAM_6992.JPG 2017년 1월 8일, 샤이오 궁에서 바라본, 우중충한 그러나 신비로운 에펠탑.

혹자는 그저 철조물에 불과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실제로 유명한 작가인 모파상은 파리에 이런 요상한 철골 구조물이 들어서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라 했다. 그는 에펠탑 건설에 반대를 했고 또 매우 싫어했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아름다운 도시에 차갑고 거대한 구조물이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에펠탑은 그 존재만으로도 분명, 파리를더 도도한 도시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지금 이 순간 참으로 과일 같은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