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는 여행의 시작
대체 여행을 다니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굳이 하던 일을 그만두면서까지 어렵고 긴 여행을 시작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대답을 쉽게 할 수 없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내가 일을 쉽게 그만둔 것처럼 보였을 것이고 단지 여행이 좋아서 이런 선택을 한 것이라고 생각할 것만 같아서였다. 또한 대답이 쉽지 않았다는 것은 타인의 시선에서 꽤 그럴싸한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의 수준을 제멋대로 규정해버린 것이기도 했다. 혹은 '나는 나를 이만큼 사랑하고 있어!'와 같은 조금은 우스운 자존감을 타인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탓이기도 했다.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그랬다. 나는 나를 너무나도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어느 누군가에게는 허세로 보이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배부른 소리로 들릴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사실이었다. 나 자신을 너무 아끼고 사랑한 나머지 익숙한 곳에서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 대신 여행을 택했다.
두 번의 취직이 있었고 또 그 두 회사를 모두 박차고 나오며 두 번의 퇴직을 선언했다. 사실 주변을 잘 살펴보면 이런 젊은이들이 많이 있다. 그 어렵다는 청년 실업의 시대에 무려 제 발로 회사를 걸어 나온 겁 없는 20대. 곧 서른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지만 흔히 말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은 갓 20대가 된 친구들에 비해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자신하기도 했다. 어쩌면 주변에서 나를 대신하여 걱정해주고 있기에 나만은 걱정 없이 자신감 넘치게 살아보자는 우스운 심보가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가까운 예로 내게는 언제나 나보다 더 나를 걱정해주는 엄마가 있었다. 남들 다 묵묵히 견디며 다니는 회사가 힘들어봐야 얼마나 힘들다고 그만두고 나오냐며 타박을 주더라도, 분명 엄마는 남몰래 울고 술 먹으며 울고 자기 전에 우는 나를 걱정했을 것이었다. 애늙은이 같았던 열일곱 이후 결코 성장하지 못했던 나는 어쩔 수없이 벌어지는 일련의 상황들을 견뎌낼 수 없었다. 사실 정확하게 말하면 견디고 싶지 않았다. 강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강해진다는 것은 거칠어진다는 것이기도 했고 또한 그것은 얼마든지 혼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생각을 바꿨다. 버티는 것이 능사가 아니었다. 쉽게 깨지지 않도록 마음을 다지는 것이 해결 방안은 아니었다.
내가 현실과 부딪치며 찾은 이유는 '나를 보다 사랑하자'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떠났다. 비록 첫 번째 일탈은 삼 개월 만에 끝이 났지만, 그래서 곧장 1년 만에 다시 탈선을 시도했지만, 어쨌든 가장 큰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만들었다. 엄마와 아빠는 쌓이려야 쌓일 수 없는 나의 퇴직금을 걱정했지만, 살아가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껏 걸어온 길은 순탄했고 날씨는 온화했으며 장애물이라고는 길가에 핀 가시 돋친 들꽃뿐이었다. 부모님이 닦아준 길을 걸었고 당신들 덕분에 우산 아래서 눈과 비를 맞지 않고 때론 그늘막에 따뜻하게 지냈다. 가끔 몸 어딘가에 박힌 가시들은 대부분 내가 잘못 만져서 그렇게 된 것들이었다. 혹자는 배부른 소리라고 호강에 겨워 정신이 나간 것이라고 말을 할지도 모른다. 주어진 환경과 내가 쌓아온 자원을 손에서 놓을 생각은 없다. 이 또한 내가 다르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면 기꺼이, 그리고 당연히 꼭 쥐고 나아갈 것이다.
살아가는 방법, 그리고 걸어나가는 방향은 그 어떤 것도 옳고 그르다 말할 수 없다. 그것이 반인류적이고 도덕적이지 못한 행위가 아니라면 말이다.
궁금했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꿈을 꾸며 사는 사람들의 삶은 어떠할까. 나처럼 현실과 적당히 타협을 하며 짧은 동아줄이라도 잡고 사는 사람들? 아니면 어려운 환경에서 꿈만 꾸는 사람들? 혹은 꿈을 꾸되 결코 실현하기 위한 발은 내딛지 않는 사람들? 어떤 유형의 인생을 꾸려나가든 그것이 모두 '자신을 사랑하자'라는 줄기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응원하고 싶다. 내 인생의 일부를 헛되게 보냈던 그 어느 날의 나. 언제 어느 때 무슨 이유로 그랬던 내가 다시 툭, 튀어나올지도 모르는 인생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나를 사랑하고 있다면 좋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더 나다운 인생을 나답게 살아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