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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아 Mar 05. 2019

나는 파리에 왔습니다

Dear Eiffel, 당신을 보러 마침내 이곳에 왔는지도요.

어쩐지 감기에 걸릴 것만 같았다. 비단 추운 날씨 때문은 아니었다. 날씨에 걸맞지 않은 코트 차림이어서가 아니었다. 온몸의 긴장이 풀어진 상태. 기분이 싸했다. 늦은 밤 낯선 땅에 떨어져 긴장이 한껏 풀어지면서 온몸의 열이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마치 몸살이 오려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아무런 생각이 없이 잠을 자기에는 밤이 외로웠다. 이미 시계는 자정을 향하고 있었지만 한국은 겨우 오후 4시쯤이었다. 메신저에 접속을 했다. 다른 시간에 살고 있는 한국의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모든 것에 모든 사람에 신물이 나 떠난 새해 첫날밤, 나는 그렇게 사람의 품을 그리워하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이 들었다.

우중충, 한 것이 파리다 싶은 생각이 들다.

시차 적응이랄 것도 없이 눈을 떴고 런던이 그랬던 것처럼 어딘지 축축한 파리의 아침이었다. 한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마침 보슬보슬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내가 우산을 챙겼던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룻밤만 신세 지기로 한 숙소를 얼른 떠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앞으로 열흘간 지낼 숙소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숙소에서 주는 간단한 음식으로 첫 끼니를 때운 후 서둘러 앞으로 묵을 숙소를 향해 걸었다. 샤워를 하고 아침 식사를 다 마칠 때까지도 그치지 않던 비가 여전히 축축하게 도시를 적시고 있었다. 첫날밤 그리고 첫날 아침은 그랬다.

파리는 비올 때가 가장 아름답다면서.

어느 영화 속 등장인물의 입에서 매력적으로 흘러나온 그 대사가, 결코 믿음직스럽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무작정 걸었다. 비 따위 개의치 않는 진짜 파리지앵처럼 말이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사실, 실망했다. 떠나기 전 아빠가 했던 말이 계속 귀에 맴돌 뿐이었다. 우산을 쓰기도 애매한 이런 날씨에 그냥 비를 맞고 30분을 걸었으니 온몸이 축축해졌고 더럽고 울퉁불퉁한 파리 거리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더러운 도시.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가장 실망하는 도시. 그 순간 나도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 아직 개똥을 밟지 않은 것만으로 위안을 삼아야 하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거대한 철조물이 파리 전역을 밝히며 그 자리를 우두커니 지키고 있다는 것을 떠올려야 하는데, 나는 일단 실망을 했다. 아쉬웠다. 새로운 사람이 되겠다고 새해 첫날 '다른' 시간의 '다른' 나라 '다른' 도시로 떠나온 결과가 고작 이것인가. 에펠탑은 머릿속에 그려지지도 않았다. 정말이지 에펠탑을 실제로 마주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낮이든 밤이든 시간은 상관 없다. 그저 에펠탑이니까. 그저 파리니까.


혹자는 미관을 해치는 거대한 철골 구조물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저 흉물이라고 폄하하기도 했다. 모파상은 그것이 꼴 보기 싫다며 에펠탑 2층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고 한다. 아주 조금 그의 마음이 이해되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마침내 힘겹게 도착한 첫날밤의 외로움이 나를 잡아먹을 듯 몰려올 때, 에펠탑은 내게 아무런 감흥을 주지 않는 그저 그런 구조물이었다. 그러나 외로운 내게 다가온 많은 여행객들과 함께 바라본 에펠탑은 내가 비로소 파리라는 것을 실감 나게 해주는 꽤나 멋진 랜드마크가 되었다. 우리를 반기기라도 하듯 매 정시 반짝이는 그것. 이유도 모른 채 눈물 나도록 아름다운 것.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 역시 파리하면 단연 에펠탑을 떠올린다. 가장 멋진 순간을 묻는다면, 투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길가에서 모든 이를 위해 발광하는 에펠탑을 아주 잠시 마주한 순간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떨리는 그 순간에도, 에펠탑에 초점이 맞추어졌다는 사실. 어쩌면 나는 이것을 위해 이곳에 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비로소, 파리라고. 결국엔, 파리라고. 어쩌면 나는 이것을 위해 이곳에 온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며 신호 대기 중인 그 짧은 순간 처음 마주한 에펠탑이었다.


Dear Eiffel, ravi de vous rencontr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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