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워할 필요 없단다

드라마 스포 당하면 재미없잖아, 인생도 그런 거지 뭐.

by 리아

나에게 오래된 단점이 있다면 그것은 낯선 것을 두려워하고 낯선 사람을 만나는 것을 꺼려한다는 것이었다. 어렸을 적 어느 누구도 내게 겁을 주지 않았으며 그저 온실 속 화초처럼 잘 자라기만을 바랐는데, 어쩌면 그것이 내가 새로움을 두려워하게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별 탈 없이 어린 시절을 지나 학창 시절을 보내고 성인이 되었다고 자신 있게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친구들과 다투기도 했고 그리하여 혼자가 되기도 했다. 엉뚱한 짓을 하여 공부하던 책을 모두 찢어버린 적도 있었다. 그때 나는 책이 북북 찢기는 소리를 들으며 '그래서 책이 book인 걸까' 하는 터무니없는 생각에 빠지기도 했다. 명상을 하며 심신을 다스리고 공부를 해야 할 때에 나는 상상을 했다. 헛된 꿈만 꾼다며 공상이라는 말도 들었다.

꽤, 다사다난하게 이십몇 년을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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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선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알게 되면, 우리는 더이상 바다를 찾지 않을지도 모른다. 여행도 인생도 그렇다. 알면 재미 없잖아.


단점을 극복하게 된 때는 사람을 만나고 나서부터였다. 득과 실 만을 따지는 사람들은 오히려 대하기 편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회는 그랬다. 모든 인간관계가 유지되려면 이득이 필요했고, 사회는 더욱 그러했다. 정확하게 누구를 만나서 언제부터 변했는지는 모르겠다. 단지 그 한 사람만이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사람과 그 시절 만난 모든 이들로 인해 차차 변하기 시작했다. 두려움이 조금씩 사라지고 마침내 그것이 자신감으로 변하기까지 수개월이 걸렸다. 몇 개월 사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은 실로 기적에 가깝다는 생각을 했다. 변화는 생각보다 나를 괜찮게 만들어주기도 했다. 그러나 수개월 동안 쌓아온 대변신의 시간은 우습게도 단 한순간에 무너져버렸다. 오래가지 못했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변한 것이 아니라 변한 척하면서 살아왔다는 것을. 다시 새로운 사람과 낯선 환경을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평탄하게 이어온 삶에 균열이 조금씩 생겼다. 빈틈을 노리고 스며드는 나쁜 물은 금방이라도 나를 산산조각 낼 것 같았다. 있는 힘을 다해 도망치거나 혹은 마주 보고 덤벼야만 했다. 쉽지 않았다. 새로운 것들이 두려워져 겨우 찾아낸 방도는 오래된 사람들과의 시간이었다. 술을 아주 많이 마셨다. 괜찮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꽤나 멍청한 생각이었다. 폭음에 내가 떠밀리도록 나를 내버려 둬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차라리 떠나. 이딴 식으로 살 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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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보지 못한 길은 무섭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지, 그렇다고 가지 않으면 영영 모른 채 살아갈테니까.


밤늦게 들어와 씻지도 않은 채 쓰러져 잠들려는데 머릿속에서 울렸다. 내가 나에게 하는 소리였다. 어쩌면 비행기 티켓을 끊을 때마다 그전부터 내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낯선 것과 새로운 것, 어쨌든 처음 마주하는 모든 것들에게 두려움을 가장 먼저 느끼는 내가 가보지 못한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역설적인 상황이었다. 의문이 들었다. 내가 진정 변했던 걸까. 아니면, 여전히 변화하고 있는 중인 것인가. 이 상황을 벗어나서 아무도 너를 모르는 곳으로 가라는 말은 곧, 더 이상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었다.


여행이 자꾸만 가고 싶어 진다는 것은,
낯선 두려움마저 끌어안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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