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언제나 잘 있습니다.

제주바다/세화해변

by 리아

십년 전쯤이었다.

비를 맞고 온종일 돌아다닌 탓에 숙소에 들러 개운하게 샤워를 하고 일몰을 보러 다시 섭지코지로 향했다. 마치 일몰을 보여주고 싶다는 듯, 때마침 구름이 걷히며 해가 나기 시작했지만 그 황혼을 느끼기에 제주의 바닷바람은 너무 강했다. 한시간도 채 되지 않아 떡진 머리가 되어 결국 머리를 정돈하느라 일몰은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숙소로 돌아가자마자 다시 머리를 벅벅 감았다. 그때부터 소금기 많은 바닷바람을 싫어했는데, 제주는 바다와 바람을 빼고는 감히 이야기할 수 없는 곳이었다.

바다, 바다, 바다. 모든 걸 받아주고 품어주니까 바다인 걸까. / ⓒ 2012, Lia, All rights reserved.

나이가 들면서 끈적거리는 바닷바람이 그리워졌다.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내 마음을 온전히 감당할 수 없는 순간을 맞닥뜨릴 때마다 바다가 떠올랐다. 그앞에 서면 바람이 불지 않아도 소금기가 가득한 공기가 느껴져 마음껏 울어도 괜찮을 것만 같았다. 눈물도 바다도 짠 건 매한가지니까. 울고 싶은 날이 많아질수록 바다가 그리웠다. 어디서도 울지 못하는 사람은 그렇게 바다 앞으로 가는가보다.


2018-01-21-17-17-39.jpg 변화무쌍한 우리네 삶은 어쩌면 바다와 같을지도 모르겠다. / ⓒ 2018, Lia, All rights reserved.

세화해변에서 본 바다의 색은 진짜 에메랄드 빛이었다. 사실 에메랄드 외에는 말로 무어라 표현하기 어려운 색이었다. 자연의 색은 언제나 아름답기 마련이지만 이토록 신비로운 색은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멍하니 보고 있으니 울고 싶었던 마음마저도 서서히 휘발되었다. 바다의 힘은 대단했다. 이제 어떤 이유로든 바다가 싫지 않았다. 제멋대로 헝클어지는 머리칼쯤은 고개를 흔들어 대충 정돈하면 되니까. 머리카락에 배어드는 바다 냄새를 구태여 씻겨내고 싶지도 않았다.

세화해변을 다시 찾았을 때, 내 마음은 그날의 날씨처럼 평온하고 잔잔했다. 다시 본 바다는 그 색이 마치 누군가 심혈을 기울여 쌓아놓은 것처럼 색의 변화가 점층적이었다. 보이지 않았던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저 에메랄드 색이라고 밖에 표현하지 못했던 바다는 분명 그대로일텐데 지금은 층층이 다른 색을 띄고 있는 바다가 경이로울뿐만 아니라 나를 숙연하게까지 만들었다. 내 마음이 달라지니 보이는 것 또한 달라진 것이다.

1516524541535.jpg 바다는 잘 있습니다. 나도, 잘 있습니다. / ⓒ 2018, Lia, All rights reserved.

바다는 항상 그 자리에서, 슬퍼하는 사람에게 적당한 파도로 위로를 건네고 행복한 사람에게는 더없이 아름다운 배경을 선사한다. 그렇게 바다는 언제나 그대로 잘 있으니, 이제 우리가 잘 지낼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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