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도 혼자가 되나요.

갈치조림

by 리아

언제부턴가 무언가 혼자서 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혼자 영화를 보고 혼자 카페에 가고 혼자 여행을 다니면서, 외로움을 잘 타는 내가 생각보다 독립적인 사람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리 하고 또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있었으니, 그건 다름 아닌 혼자 밥을 먹는 것.

혼자 식사를 할 때에는 아무래도 한 그릇 음식을 찾게 된다. / ⓒ 2018, Lia, All rights reserved.
몇 분이세요?

식당에 들어갔을 때 종업원이 가장 먼저 묻는 이 말에 말하기도 쑥스러운 나머지 수줍게 검지 손가락을 올려서 표현하곤 했다. 어느 한구석, 왠지 가장 안 좋아 보이는 자리를 안내받은 후 착석하고 나면 괜히 럿이 함께 온 손님들이 나를 쳐다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푹 숙였다. 한 친구는 "세상 사람들은 생각보다 너에게 관심이 없다." 라며 시선 따위 개의치 말라고 했지만, 밥을 먹는 내내 정수리가 따가운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밥을 먹는 건지 누군가의 관심을 먹는 건지 모를 만큼 신경이 쓰였다.

사실 해외에서는 아무렇지 않았다.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생각해보면 해외에서는 나의 존재가 보다 흐려지기 때문인 것 같다. 그들은 내가 일본인인지 중국인인지 한국인인지도 모를 테니까. 해외여행을 다니면서 조금씩 혼자 먹는 밥에 정을 붙이기 시작했다. 쉬운 것부터 시작하다 보면 언젠가 고난도의 단계도 척척 해낼 수 있다는 생각으로.

갈치를 토막 내는 건 생각보다 아주 정교한 일이다. / ⓒ 2020, Lia, All rights reserved.

그렇게 몇 년 동안 혼밥에 적응했다. 그리고 마침내 2인분부터 가능한 음식도 당당하게 혼자 2인분을 먹겠다고 주문할 수 있는 내공을 쌓았다. 이날만을 기다렸다. 언젠가 혼자 식당을 찾았다가 갈치조림은 무조건 2인부터라는 주인의 말에 실망감을 금치 못했다는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마치 내 일처럼 가슴 아파했던 그날 이후로. 생선 중에 무엇을 가장 좋아하느냐고 물었을 때 주저하지 않고 갈치를 외칠 수 있는 나로서는 꽤 중차대한 일이었다.


멧멩이우꽈?

제주스럽게 생긴 종업원 아주머니가 물었고 나는 전과는 달리 아주 다부지게 "혼자"라고 말했다. 나는 당당하다, 까짓 껏 2인분 시켜야 한다면 기꺼이 그렇게 시키리라, 생각하며 이글거리는 눈빛도 함께 보냈다. 잔뜩 힘을 준 내 모습과 다르게 돌아온 대답은 그저 "1인 좌석이 있으니 여기 앉으시라."는 말뿐이었다. 설마 1인분이 된다는 말인가.

뚝배기에 밥을 풍덩 말았다. 진짜다, 진짜가 나타났다. / ⓒ 2020, Lia, All rights reserved.

1인분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커 보이는 뚝배기에 담겨 나오는 갈치조림을 보자마자 군침이 돌았다. 살인적인 제주 물가에 비해 비교적 저렴하면서도 꽤 다양한 밑반찬들이 있었지만 내 시선은 오로지 갈치에 고정되어 있었다. 밑반찬은 몇 점 손대지도 않은 채 뚝배기 속 몇 토막의 갈치를 세밀하게 발라 먹었다. 젓가락으로 가운데를 갈라 큰 뼈를 발라내는 과정을 거친 후 양끝의 잔가시들을 제거하는 동안 제주도에서의 갈치조림을 맛볼 수 있다는 생각에 그만 콧노래까지 부르고 말았다. 적당히 달큼한 조림 국물에 살점을 푹 담근 뒤 입으로 직행했다. 제주 인심은 어떨지 대해 생각할 틈도 없이 공깃밥 한 그릇을 더 부탁했다.


계산을 하고 식당을 나오면서 오랜만에 진심을 담아 인사했다. 제주에는 무수히 많은 갈치조림 전문식당이 있겠지만, 이토록 착한 가격으로 혼행객의 뱃속을 위로해준 곳은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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