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의 계절이 왔다.

by 리아

의 계절이 왔다.

가을이 왔나 싶었는데 눈이 조금 가려워서 눈물 두어 방울 정도가 필요한 시기. 아침저녁으로 쌀쌀해서 겉옷을 입지 않고는 도저히 밖을 나다닐 수 없지만 그렇다고 두꺼운 옷을 껴입기에는 아직 다 골라 입지 못한 간절기 옷들에게 왠지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 때쯤이랄까. 나는 이 계절을 그렇게 부른다. 귤의 계절이라고. 좋은 사람을 만나면 꼭 반 나누어 건네주고 싶어서 주머니에 작은 귤 하나쯤 넣어 다니고 싶은 그런 계절이라고.

귤 하나에 사랑이. / ⓒ 2018, Lia, All rights reserved.


회사 다닐 때면 꼭 이맘때 박스에 만원도 채 하지 않는 귤 한 박스를 사서 사무실에 놓고 먹곤 했는데, 그게 또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온종일 컴퓨터만 보느라 인위적인 색깔과 작위적인 문자들 때문에 신물이 나서 내 안의 무언가를 환기시킬 만한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한숨만 내뱉던 입에게 꿉꿉한 사무실 냄새에 지쳐있던 코에게 그리고 내내 타격감 가득한 키보드만 두드리던 손가락에게도, 귤의 맛과 향과 감촉은 매우 신선하고 고마운 것이었다.

손톱이 노랗게 물들 때까지 귤을 까서 먹다 보면 일하는 시간마저 즐거워지기도 했다. 옆에 있는 동료나 선후배에게 마음이라며 작게 두어 개씩 건네서 함께 먹고 있으면 어느새 작은 사무실은 새콤달콤한 귤의 냄새로 가득 찼다. 그날만큼은 텁텁한 사무실을 환기시키기 위해 구태여 찬바람 쌩쌩 부는 날씨에 창문을 열지 않아도 되었다.

귤껍질을 버리는 건 쉽지 않다. 그냥 두면 향이 오래가니까. / ⓒ 2018, Lia, All rights reserved.


시기로 봐서는 귤의 계절이라고 할 수 없지만 귤의 계절을 느낀 적도 있었다. 성인이 되고 처음으로 친구와 여행을 떠났을 때였다. 나는 태풍의 시기인지도 모른 채 한여름이 오기 전에 후딱 다녀와야 한다며 친구를 설득해 그녀와 제주로 향했다.

귤 먹고 싶어.

비바람을 뚫고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뼛속까지 우울해지게 만드는 날씨 탓에 뜨끈한 바닥과 달큼한 귤이 간절했던 내가 중얼거렸고 우리는 그 길로 귤을 찾아 나섰다. 한참을 돌아다닌 끝에 바다가 훤히 보이는 어느 절벽 근처에서 궂은 날씨를 피해 막 정리하고 들어가려는 할머니를 발견했고 겨우 하우스 귤 두 망을 샀다. 그리고는 재빨리 숙소로 돌아와 따뜻하게 데워진 방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손끝이 귤락처럼 변할 때까지 귤을 까먹었다.

주머니에 귤 하나쯤 넣어 다니는 사람이고 싶다. / ⓒ 2020, Lia, All rights reserved.
지금 이 순간, 맑고 화창하지 않아서 다행이야. 태풍이 온 걸 감사하게 되는군.

친구는 귤에 취해 혼잣말하는 나를 의아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여행 분위기가 전혀 나지 않아 실망이다." 라며 남은 귤을 내 앞으로 밀어주고 침대로 폴짝 뛰어 올라갔다. 친구가 준 귤은 고작 두 개뿐이었기에 홀라당 먹어버리고 싶었지만, 나는 두 개 모두 작은 가방에 넣었다.

우리의 제주는 이제 시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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