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요즘 가장 인기 있는 것은 오름이 아닐까 싶다. 기생화산이나 측화산이라고도 불리는 오름은 제주도 한라산 기슭에 분포하는 소형 화산체로, 신성시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제주도 오름 지도가 있을 만큼 제주 각지에 분포한 오름이 많으며 그 개수가 무려 400개에 육박할 정도라고 한다. 분화구가 사방에 퍼져 있으니 제주는 정말이지 하나의 거대한 화산이다. 어쩌면 제주에 갔을 때 내가 보다 뜨거운 사람이 되는 것도 분화구로 가득한 이 지형의 영향일지도 모르겠다. 같은 바다를 보아도 왠지 모르게 더 울컥하게 되고 일출과 일몰은 매일 봐도 새롭게 느껴지니까.
높은 곳에 올라야만 볼 수 있는 건 어쩌면 우리 마음이 아닐까. / ⓒ 2019, Lia, All rights reserved.
살면서 한 열 번쯤 제주를 여행했지만 오름에 대해서 깊이 있게 생각하기 시작한 때는 사실 얼마 되지 않는다. 원체 걷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등산이라면 말만 들어도 벌써부터 다리가 풀리기 마련이니 그저 동산과도 같은 오름이라고 할지라도 오르고 싶지 않았다.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친구들과 함께 나의 첫 오름인 아부오름에 오르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부오름은 아래와 같은 유래를 가지고 있는, 제주의 대표적인 오름으로 가장 보통의 형태인 원형 분화구의 모습을 갖는다. 원형 분화구의 모습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항공사진을 봐야하지만, 정상에 올라 분화구를 끼고 빙 둘러 걷다보면 비로소 원형 분화구를 이해하게 된다.
산 모양이 믿음직한 것이 마치 가정에서 어른이 좌정해 있는 모습 같다 하여 한자로는 亞父岳(아부악), 阿父岳(아부악)으로 표기하고 있고, 송당마을과 당오름의 앞(남쪽)에 있는 오름이라 하여 前岳(전악)이라고도 표기한다. 亞父(아부)란 아버지 다음으로 존경하는 사람, 阿父(아부)는 아버지의 뜻이라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아부오름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같이 가라는 말이 있듯이. / ⓒ 2019, Lia, All rights reserved.
오르는 길은 생각보다 완만해서 나처럼 저질 체력인 사람도 무리 없이 오를 수 있을 정도였고, 무엇보다 나는 함께 걷는 사람들이 있어 가능했다. 옆사람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면서 걸으면 어느새 정상에 다다르니까. 조금 오래 걸리긴 해도 낙오자가 있거나 정상에 도착하지 못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모두 아부오름을 정복했다.
길을 걷거나 산에 오르며 이야기를 나누면 사람이 온화해지는 것 같다. 숨이 차서 속사포처럼 말을 내뱉지도 못할 뿐더러 적당한 속도의 대화에도 숨을 고르는 찰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가 오름의 끝을 향해 오르는 동안, 간혹 찾아오던 소란했던 순간을 잠재우는 그 짧은 시간이 좋았다. 동반자의 솔직한 숨결이 고스란히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마침내 정상에 도착해서 원형 분화구 주변을 따라 걷는 내내, 심장에 작은 분화구가 하나 생긴 것처럼 무언가 울컥하고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오름은 저마다 한 계절을 오롯이 품는 특징이 있는 것 같다. / ⓒ 2020, Lia, All rights reserved.
나는 여전히 등산을 썩 좋아하지 않지만 종종 등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나의 첫 오름이었던 아부오름에 함께 오르며 손을 맞잡던 사람들은 나에게 생각보다 매우 강렬한 시간을 선사했기 때문이다. 물론 오름 정도를 오르는 것은 등산이라고 하기 여전히 민망하지만, 높은 산을 등반하기 어렵다면 가끔 오름이라도 오르는 것이 좋겠다. 어차피 다시 내려올 걸 뭐하러 올라 가느냐고 묻던 나는 이제 높은 곳에 올라야만 볼 수 있는 것들에 대해 고민한다.
대표 오름만 해도 이렇게나 많은 오름이 있다. 언젠가 오름만을 위한 제주여행을 떠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