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고플 땐,
책방에 가요.

동네책방

by 리아

언제부턴가 동네책방이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전국 각지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많아지기도 했으며 이제는 출판사에서 마케팅의 일환으로 동네책방 에디션을 내는 경우도 허다하다. 말 그대로 에디션이므로 한정판으로 찍어내는 만큼 그 인기는 말로 다 할 수 없다. 나도 동네책방 에디션이 나왔다고 하면 여러 군데 돌아다니며 몇 권씩 사서 쟁여두곤 했으니까.

공간이 주는 힘은 실로 대단하다. 때론 치유해주기도 하니까. / ⓒ 2020, Lia, All rights reserved.

다양한 책을 취급하고 있으나 동네책방은 대형서점과는 다르게 주인의 취향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경우가 많다. 책방에 들어설 때부터 책방 주인의 냄새가 물씬 느껴진다. 그럴 때마다 언젠가 나도 나만의 책방을 꾸미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바다내음이 가득하고 큰 창으로 햇살이 부서지는, 한적한 바닷가 마을이면 좋겠고 책방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작은 고양이 한 마리면 좋겠다. 나는 매니저 겸 집사라는 직책만 주어지면 충분하다. 여행객도 좋지만 동네 사람들이 자주 드나드는 일종의 사랑방 같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 문턱이 없는 책방이면 좋겠다.

적어내리다 보니 책방은 아무래도 제주가 되어야겠다.


원래 가려고 했던 작은 소품 가게의 오픈 시간이 늦춰지는 바람에 점심을 먹고도 시간이 남았다. 상점의 영업시간이 제멋대로인 것은 상당히 제주스럽게 느껴지지만 싫지는 않다. 주변에 책방이 있을까 싶어 곧 만나기로 한 제주 사람에게 선물도 할 겸, 책방을 검색했다. 제주 풀무질. 생소한 이름의 책방이 눈에 띄었다. 마침 걸어서 10분도 채 안 걸리는 곳에 있었다. 여기다. 여기를 가야겠다. 날씨가 거꾸로 가는 건지 초여름처럼 후끈해서 옷을 벗어 가방에 욱여넣고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쉬었다가 가도 좋을 것 같아서. / ⓒ 2020, Lia, All rights reserved.

책방 앞에 다다르자마자 나는 풀무질의 뜻도 모르면서 외관이 책방 이름과 참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따뜻하다. 시골길의 외딴 오두막 같은 분위기가 솔솔 풍겼다. 문을 열자 마치 내가 오길 기다렸다는 듯 선한 미소의 사장님이 나를 반겼다. 그리고 친절하게도 잘생긴 강아지가 한 마리 있다는 것도 알렸다. 너무 순해서 하마터면 안아줄 뻔했다.


책방도 책방이지만 나는 제일 안쪽에 있던 창가 자리가 눈에 먼저 띄었다. 적당한 크기의 창을 가린 보 때문에 은은하게 내리쬐는 햇살 때문이었다. 가장 아름다운 조명은 햇살이 분명하다. 덕분에 책방이 온통 따스함으로 가득했다.

어떤 조명도 햇살처럼 밝힐 수는 없다. 이보다 따스할 수 없다. / ⓒ 2020, Lia, All rights reserved.

한참을 구경하다가 조심스럽게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여쭈었더니 흔쾌히 그러라고 하셨다. 나는 그제야 셔터를 눌렀다. 왜인지 책방에서는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조차 미안하게 느껴진다. 불규칙한 셔터 소리에 고이 잠들어있던 책들이 놀라 깰 것만 같다.

서울에서는 이제 구하기 힘든 '이별이 오늘 만나자고 한다' (이병률, 문학동네) 동네책방 에디션이 몇 권 남아 있었다. 선물하기에는 시집만큼 사랑스러운 것이 없으므로 한 권 집어 들고, 육지에서는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든 책이라 반가운 마음에 몇 권 더 사려다가 이내 관두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만나보았으면 하는 마음에. 대신 무슨 책을 선물할까 고민하는 한 손님에게 실망하지 않을 거라며 강력하게 추천했다. 그랬더니 글쎄, 그 손님이 나를 믿는다며 두 권이나 가지고 오더니 계산대에 올렸다. 책방을 나선 이후로도 아주 오래 마음이 울렁거렸다.

제주가 오늘 만나자고 한다. / ⓒ 2020, Lia, All rights reserved.


책방을 나와 늦게나마 풀무질에 관해 찾아보니, 화력을 높이기 위해 산소공급을 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요즘 나에게 필요한 것이 어쩌면 따스한 풀무질이 아닐까 생각하며, 그곳에서 구매한 책을 선물하러 가는 길에 내내 책의 모서리를 매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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