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정류장은 사랑, 사랑입니다.

제주 버스

by 리아

한 도시 건너에 있는 학교와 학원을 다니는 바람에 나는 어려서부터 버스 타는 것에 익숙했다. 제시간에 맞게 다니는 지하철보다 경우에 따라 더 오래 걸리기도 하는, 보다 인간적으로 느껴지는 버스를 선호했다. 처음에는 거친 버스기사님의 운전 때문에 머리도 아프고 속도 울렁거려서 버스 한 번으로 갈 곳도 나누어 타곤 했으나, 차츰 버스에서의 시간을 즐겼다. 게다가 어느 자리에 앉아야 타고 내리는 데 수월하고 안정감 있는 운행을 즐길 수 있는지, 이 시간에는 어디에서 사람들이 많이 타고 내리는지 자연스럽게 알아갔다. 버스를 타고 있으면 그 버스를 이용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관찰할 수 있었다. 그래서 선호하는 자리는 버스기사님 바로 뒷자리다. 버스기사님의 시야와 가장 비슷한 자리.

고작 천 몇 백원으로 풍광을 감상하는 법. / ⓒ 2019, Lia, All rights reserved.


이처럼 항상 버스를 애용하는 시민이기에 제주에서도 버스를 타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다. 다만 내 기억에 십여 년 전 제주의 버스는 동일주행과 서일주행이 나뉘어 있어 꼭 시간과 정류장을 확인해야 하고 그 때문에 항상 긴장을 늦추면 안 된다는 것. 그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지금이야 휴대폰으로 얼마든지 버스 시간과 노선도를 확인할 수 있지만 보편화되어 있지 않았을 때는 오로지 그곳의 주민이나 숙소 주인에게 물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서쪽으로 가야 하는데 동일주 행을 타서 그날 가기로 했던 관광지에 가지 못한 적도 있었다. 그때 이후로는 타기 전에 무조건 버스기사님께 목적지를 미리 여쭈었다.


얼마 전 혼자 제주에 떠났을 때였다. 도저히 렌트하기에는 용기가 나지 않아 결국 버스를 타고 이곳저곳 돌아다니기로 마음 먹고는 아침마다 버스 시간을 살폈다. 이어폰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일단 탑승하면 한 시간은 기본이니 그 무료함을 달랠 수 있는 것은 음악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버스를 타는 동안 단 한 번도 이어폰을 사용하지 않았다. 누군가와 함께 했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차창 밖으로 보였고 버스를 오르내리는 제주 사람들과 버스기사님의 대화만으로도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였으니까. 물론 제주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이야기는 아무리 귀를 쫑긋 세워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영 다른 나라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바다다, 그토록 그리웠던 바다. / ⓒ 2020, Lia, All rights reserved.


내가 여행객이라서 그런지 버스 정류장에 서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유독 여행객이 눈에 띄었다. 잘 오지 않는 버스를 놓칠세라 버스 정류장을 향해 버스와 나란히 달리는 사람을 보면서 속으로 '조금만 더!'라고 외치면서 다른 여행객의 목적지에 대해 궁금해하기도 했다.

기사님, 천천히 가주시면 안 되나요? 딱 한 장만 찍을게요! / ⓒ 2020, Lia, All rights reserved.

제주 201번 버스의 한 기사님은 정류장이 다가오면 속도를 줄였다. 어쩌면 여행자들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건 아닐까. 혹시나 가방을 멘 여행자가 버스를 보지 못한 채 정류장 쪽으로 걸어가고 있으면 다정하게 경적을 울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또, 기사님은 사이드미러를 통해 트렁크를 끄는 어떤 여자의 걸음이 빨라지는 것을 보더니 마치 그녀를 위한 버스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정차해서 기다려주기도 했다. 분명 그녀는 무사히 공항으로 향했을 것이다.


나는 하차할 때 유독 큰 목소리로 "감사합니다!" 하며 기사님께 인사했다. 그런 내 등 뒤로 기사님의 따뜻한 인사가 들려왔다.

즐거운 여행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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