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 Heo.
거기서 기다려요, 내가 데리러 갈게.
그녀의 울림 있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딱 삼 년 만이다. 삼 년 전 종로의 한 술집에서 만난 그녀, H는 스무 명쯤 되는 사람들의 무리에서 유독 눈길을 끌던 사람이었다. 내 두 손을 붙잡으며 내가 마음에 든다고 초면임에도 낯가림 없이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던 사람. 예쁜 안경 속에 종로의 가을밤처럼 우수에 찬 눈빛을 가진 사람이었다. 사람의 입꼬리가 정말로 귀에 걸릴 수도 있구나, 생각하며 그녀가 환히 웃는 모습에서 시선을 거둘 수 없던 밤이었다. 아침 달을 보며 흩어지는 사람들 속에서 그녀의 뒷모습을 찾아내지 못한 것이 못내 후회스러워서 며칠 동안 인스타그램을 뒤지기도 했다. 그날 이후 어쩌다 보니 사는 게 바빠서, 서울이 생각보다 넓어서, 라는 핑계 때문에 그녀를 만나지 못했지만, 그 덕분일까 우리의 만남이 조금 더 특별해졌다.
나는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그녀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제주로 혼자 여행 간 것이 처음이기도 했으며 그녀가 자주 올리는 그녀의 예쁜 아들을 실제로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너무 갑작스러운 것은 아닐까 하여 망설이다가 그날 저녁 그녀에게 연락했다. 그녀는 역시나 흔쾌히 놀러 오라며 나를 반겼다.
혹시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요, 출동합니다!
제주에서의 마지막 날에 그녀를 만나기로 약속을 했고, 그녀는 그전까지 여행 잘하고 있으라며 든든한 보안관 역할을 자처하기도 했다. 혼자 여행하는 제주는 무척이나 아름답고 포근했지만 그녀를 만나고 싶은 마음에 빨리 마지막 날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능숙하게 차를 몰고 나를 데리러 나온 그녀는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동안이었던 맑은 얼굴과 양볼의 매혹적인 보조개만 빼고 다 변했다. 사랑을 하고 엄마가 되고 어딘지 그녀를 많이 닮은 제주에 내려와 분신 같은 물건으로 가득한 자신만의 공간까지 일궈냈으니, 어쩌면 그녀와 그녀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변화했다고 하는 게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너무 좋아요.
참, 아이는 꼭 낳는 걸 추천해요. 여자로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이랄까.
그녀가 운전하는 차 안에서, 내가 서울에서의 삶을 두고 먼 곳까지 내려와 가정을 꾸린 것이 어떤지 묻자, 그녀가 특유의 보조개를 만들어내며 대답했다. 그 순간 나는 그녀의 말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내 그녀가 가꾸고 있다는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한 세계의 다정함을 느꼈고 그녀의 남편과 아이를 만났을 땐 함부로 그녀의 옆집으로 이사 가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나를 지구별 여행자라고 부르며 커피와 달큼한 팬케이크까지 대접해준 그녀 덕분에, 나는 제주가 더욱 좋아졌다. 이렇게 제주에 가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겨버렸다. 지구별 여행자가 아니라 제주의 외계인이 되어도 좋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