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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아 Mar 10. 2021

명함은 핑계고 이건 제 번호입니다.

<어쩌면 이건 너의 내일> 출간 전 연재

스트라이크!

엉성한 자세에도 불구하고 칠 파운드의 볼링공이 막판에 방향을 틀어 열 개의 핀을 시원하게 넘어뜨렸다. 나는 곧바로 아이처럼 방방 뛰며 J에게 달려가 손바닥을 내밀었고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싱긋 웃으며 내 손바닥을 쳤다. 그와 내 손바닥이 맞닿은 순간 온몸에 짜릿한 전류가 흐르면서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볼링 동호회에 들길 잘했다.

분명 올해 가장 잘한 일은 사직서를 거둔 것과 J가 있는 이 동호회에 가입한 일일 것이다.


"참, 수경씨. 이제 명함 나오지 않았어요? 이쯤이면 나올 때가 됐는데."

이번에도 영업사원 H였지만 기회를 던져 준 것이 너무 고마워서 히마터면 그를 얼싸안을 뻔했다. 그리고 이 때를 놓칠세라 얼른 지갑에서 명함 몇 장을 꺼내며 말했다.

안 그래도 생애 첫 명함이라 나눠주고 싶은데
줄 데가 없어 속상했거든요!
선배님들, 받아 주실 거죠?

아이처럼 말하는 내 모습이 보기 좋았는지 다들 흔쾌히 손을 내밀었고 차례로 명함을 돌렸다. 일부러 J에게는 제일 마지막에 건넸는데, 그러는 와중에 J와 손끝이 스쳤다. 아까 손바닥을 마주쳤을 때보다도 더 강렬한 무언가가 내 손끝을 타고 전해졌다. 그 순간 영화의 한 장면처럼, 시간이 멈추면서 그를 제외하곤 모두 흑백이 되었다.




해당 글은 저의 첫 독립출판물 에세이 <어쩌면 이건 너의 내일> 정식 출간에 앞서,

일부분을 발췌하여 올린 것입니다.

출간 전까지 연재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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