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넘치는 피렌체, 번외편1
* 이 글은 피렌체 번외편으로 가상의 이야기임을 밝힙니다.
동행한 친구를 먼저 떠나 보냈다. 언제가 되든 누구를 만난 이후이든 이별은 항상 마음이 아픈 행위였다. ‘회자정리 거자필반’. 가장 좋아하면서도 싫어하는 사자성어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다니. 게다가 떠난 사람은 반드시 돌아온다니.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언어 유희인가 싶었다. 이 말 속에 ‘희망’이 있어 좋았고, 또 희망 이후의 ‘절망’이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어 싫었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다고 자부했고 그래서 충분히 헤어짐에 익숙해진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여겼지만, 그것은 오만한 생각에 불과했다.
이탈리아 남부를 꼭 가겠다고 다짐했다던 동행 친구는 나와 함께 한 피렌체에서의 시간이 너무 좋았다고 했다. 로마에서 만나 함께 여행했던 것이 선물이라고 했다. 참으로 말을 예쁘게 하는 친구였다. 이 친구가 이성이었다면 나는 충분히 그에게 반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어딜 가든 길을 잘 못 찾고 다닌 길도 헤매는 나에게 이 친구는 길잡이가 되어 주었고, 덜렁대는 나와 달리 세심한 면을 지니고 있어 많이 의지할 수 있었다. 고작 일박 이일, 아니 하룻밤이었다. 48시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을 함께 했지만 서로에게 호감을 갖기에는 ‘하룻밤’이면 충분했다.
피렌체 역에서 기차에 오르기 전 친구는 나를 꼭 안아 주었다. 누군가 나를 안아준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아 조금 서글퍼지는 순간이었다.
Grazie, amico.
서투른 발음으로 우리는 인사를 나누며 웃었다. 누가 들어도 이탈리아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어설픈 어투였다. 그러나 짧은 인사말이 비로소 나를 이탈리아의 깊은 어느 곳에 데려다 준 것만 같았다.
기차가 떠나는 것을 바라보고 있자니 눈가에 눈물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언제나 누군가와 헤어질 때면 나는 항상 내가 그 장소에 남아 그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상대방이 나의 뒷모습을 보는 것이 싫었다. 그 쓸쓸함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나는 항상 그랬다. 누군가 나로 인해 아픈 것이 싫었다. 아픔은 고스란히 내가 안고 가는 것이 마음이 편했다. 아니, 어쩌면 내가 누군가의 그리움의 대상이 되는 것을 꺼려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시계를 보니 다섯 시였다. 조금 이른 저녁을 할까 생각했지만 함께 들렀던 식당 외에는 다른 좋은 곳을 알지 못했다. 감정 소모가 심해서였을까 점심을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허기가 졌다. 아까 헤어지기 전 점심을 먹었던 달 오스떼를 다시 찾았다. 마침 역 가까운 곳에 있어 한 걸음에 갈 수 있었다. 웨이터는 불과 몇 시간 만에 다시 들어온 나를 알아본 듯 했다. 가볍게 목례와 함께 눈 인사를 하고 창가 자리에 앉았다. 티본 스테이크를 시켰다. 천천히 다 먹고 마트에서 와인을 사 들고 미켈란젤로 언덕에 갈 계획이었다.
스테이크가 나오자마자 나는 휴대폰을 꺼냈다. 아주 잠깐 눈으로 그리고 휴대폰 액정을 통해서 음미할 수 있는 이 짧은 찰나가 좋았다. 그래서 음식 사진을 찍는 것을 좋아했다. 사진을 한 장 찍고 스테이크를 썰기 시작했다. 스테이크, 혹은 통틀어 고기를 썰 때 내가 느끼는 것은 희열이었다. 어렸을 때는 서투른 칼질에 꼭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지만, 고기도 썰어본 사람이 썬다는 말을 이해할 즈음 나는스윽스윽 잘 썰리는 고기를 보며 묘한 흥분을 느끼기 시작했다. 한국 식당에서 고기 굽기의 정도는 미디움-웰던이었지만 해외에서는 달랐다. 아주 작은 차이에 불과할 지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해외에서 스테이크를 먹을 때면 미디움-레어로 주문했다. 외국에서의 음식 주문이 서툴렀던 언젠가, 다른 한국인이 시킨 대로 따라 한 이후였다. 많은 양이었지만 나는 깔끔하게 접시를 비웠다. 곁들여 나온 사이드 메뉴도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 야채를 싫어하는 내가 잘게 썰린 야채 한 조각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곁에 없는 누군가 때문에 너무 빨리 허해진 나의 마음을 음식으로 채운 기분이 들었다.
아까와 달리 팁을 넉넉하게 두고 나왔다. 몇 시간 전과는 다르게 혼자 식사를 하러 들른 나를 따뜻한 눈으로 맞아주고 또 보다 편안하게 서빙을 해 준 웨이터에게 고마웠다. 식사마저도 혼자하는 ‘혼밥’이 유행이 되어버린 각박한 세상이지만 때로는 이렇게 혼자 밥을 먹는 나를 적당하게 신경 써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좋았다. 밥을 먹는 속도가 느린 편이라고 생각해 어둑한 하늘을 생각했지만 아직 밖은 밝았다. 계획한대로 마트에서 와인을 사 들고 미켈란젤로 언덕을 오르면 그제서야 뉘엿뉘엿 지는 해를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뱃속에 한 가득 스테이크가 차 몸은 무거웠지만 따뜻해진 마음에 미켈란젤로 언덕으로 가는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온통, 따뜻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