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넘치는 피렌체, 번외편2
한참을 걸었다. 원체 걷는 것을 싫어하는 나였기에 이 시간이 너무나도 길게만 느껴졌다. 우피치 미술관을 지나고 나니 해가 지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베키오 다리가 보였다. 상점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어 가까이에서 보면 썩 예쁜 다리는 아니었다. 멀리서 보았을 때 비로소 예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쩌면 우리의 삶도 동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하나의 인생을 가까이서 들여다 보면 희로애락이 모두 보여 아름답지만은 않은 것이다. 한 발자국 떨어져서 누군가의 인생을 바라보면 비단 남의 떡이 커 보여서가 아니라, 겉으로 보여지는 행복이 전부이기에 마냥 아름다워 보이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내 눈에 보이는 모두의 삶이 그렇듯 나의 삶도 동일했다. 지난 한 해 내가 겪은 아픔과 그로 인한 나의 슬픔을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강인한 사람으로 비춰지길 바란 것은 아니었다. 그저 남들이 보기에 나는 항상 행복한 사람이었으면 했다. 솔직하지 못하고 가면 속에 숨어 사는 것이라고 해도 그것이 나는 편했다. 어쩌면 나의 모든 것을 드러내고 싶은 사람을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무얼 하든 혼자 하는 것이 좋은 이유는 단 하나였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다는 것. 주변의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될 때에는 언제나 이어폰을 꼈다. 걷거나 혹은 운동을 하기 위해 뛸 때는 늘 그랬다. 가장 좋아하는 노래라는 것은 없었다. 재생 목록에는 장르에 상관없이 무수한 노래들이 담겨 있었고 나는 언제나 순서에 상관없이 랜덤 재생을 즐겼다. 베키오 다리를 건너기로 마음 먹었다. 어제 동행했던 친구와는 건너지 않고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 곳에서만 다리를 바라보았고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는 것이 다였다. 어차피 미켈란젤로 언덕을 가기 위해서는 어떤 다리들 중 하나는 반드시 건너야만 했다. 생각보다 먼 거리였지만 아까 먹은 티본 스테이크를 소화시키기 위해서라도 걷는 것이 최선이었다. 가는 길에 마트나 작은 상점이 있다면 얼른 들어가 와인도 사야만 했다.
작은 동네라 그런지 어제는 마트들이 일찍 닫는 것을 보았다. 서둘러 구글 지도를 검색했고 근처에 있는 아무 마트라도 들어가야 와인을 놓치지 않을 것 같았다. 베키오 다리를 건너자마자 작은 슈퍼마켓이 있었다. 다리를 지나면서보이는 귀금속 가게들에 눈이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처음 귀를 뚫었던 때가 떠올랐다. 귀걸이를 하면 단지 1.5배 더 예뻐 보인다는 말에 혹해서가 아니었다. 잠깐의 고통, 이라고 했지만 내게는 꽤 긴 고통의 시간이었던 귀를 뚫었던 때는 내 손을 꼭 잡아주던 누군가를 위해서이기도 했다. 돌아보면 나는 참으로 사랑이 넘치던 여자였다. 아니, 사랑을 많이 받고 사랑을 잘 느끼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한국 사람이세요?”
흔한 작업 멘트로 누군가 내 과거를 깨며 현실로 나를 꺼내왔다. 반짝이는 귀금속을 뚫어져라 쳐다 보고 있던 내가 고개를 돌렸다. 낯선 얼굴이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우리말을 하는 파란 눈을 가진 낯선 외국인의 얼굴이었다. 흔한 작업 멘트라고 생각했던 생각이 와장창 무너졌다. 외국인이라면 상황이 조금 달랐다.
“Si.”
나도 모르게 이탈리아어로 대답을 했다.
“한국말 잘해요. 나, 피렌체 살아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외국인이 우리말을 할 때면 늘 어설픈 그 억양을 버리지 못해 우리가 외국어를 하듯 말을 하는 것이 내게는 조금 웃긴 광경이었다. 한국어를 잘하고 한국사람처럼 보이는 동양 여자에게 선뜻 한국인이냐고 물을 수 있는 외국인이라니. 그의 말투에 잠깐 경계심을 풀었지만 나는 다시 경계를 해야만 했다. 참으로 각박한 세상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은 채 또박또박 우리말로 그에게 말했다.
“제가 좀 바빠서요.”
누가 보아도 여행 중인 관광객인데, 고작 바쁘다는 말을 하다니 나도 어지간히 긴장을 했나 보다. 그는 잠시 고민하는 얼굴을 하더니 서둘러 다리를 건너려고 돌아서는 나의 팔을 살짝 잡았다.
“예뻐요.”
나왔다. 이탈리아에 가면 가장 조심해야 하는저 말.
로마에서도 겪었던 일이지만 진지한 얼굴로 말을 하는 이 남자를 보고 있자니 더욱 당황스러워 나는 팔을 툭 떨쳐 내며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내 행동을 이해한다는 듯 살짝 미소 지었고 이내 목에 걸려있는 카메라를 잡고 흔들며 말했다.
예쁜 거 보고 있던 당신이 예뻐요. 사진, 찍고싶어요.
누군가 내게 이토록 다정하고 정중하게 나의 사진을 찍고 싶다 말한 적이 있었나. 언제부턴가 사진을 찍을 때 나는 피사체가 되길 꺼려했다. 흔히 말하는 도촬의 기운이 느껴진다 하면 당장에라도 달려가 그 사람의 카메라를 확인하고 지우라고 말할 정도로 나의 모습이 찍히는 것을 싫어했다. 한 남자와의 이별 후 내가 겪는 자신감 하락의 증거였다. 더 이상그 사람의 눈에 비춰지는 나의 모습이 아름답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이후였다. 조금, 우스울 지도 모르는 병적인 행동이었다.
“싫어요.”
간절한 눈빛으로 나의 허락을 기다리던 파란 눈의 사내에게 나는 매몰차게 말했다. 전문가가 아님에도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사진을 찍는 사람이 많아진 요즘 세상에서, 사진을 찍을 때의 예의는 발 빠르게 변하는 세상을 따라갈 수 없었다. 그런 와중에 이토록 정중하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며 사진을 찍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니. 나는 그에게 화가 났다. 차라리 내게 묻지를 않았더라면 서둘러 다리를 건너려던 나는 모르고 그냥 지나갔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이토록 예의를 차리며 내게 말을 건 그에게 화가 났다.
“오케이. 당신 예뻐요. 잘 가요.”
나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싱긋 웃으며 그는 내게 예쁘다고 말했다. 민망했고 잠시 화가 난내 자신이 한없이 작게만 느껴졌다. 그렇게 말을 하고는 바다 색의 눈동자를 가진 그가 나보다 먼저 다리를 건너 앞질러 가는데, 하마터면 그를 잡을 뻔 했다. 그저 예쁘다고 꾸밈 없이 말하는 그를, 하마터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