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 나의 쥰세이는 어디에.

사랑이 가득한 피렌체 1

by 리아

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나올 때면 나는 늘 책을 먼저 읽는 편이었다. 책을 읽으면 내 머릿속에서 여자 주인공은 늘 내가 되어 생각하고 행동하곤 했다. 터무니 없는 상상이고 또 어쩌면 바보 같은 망상이라고 할 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늘 그렇게 주인공에게 과한 감정이입을 하며 책을 읽었다. 책 속의 주인공들이 한 마디 한 마디 내뱉을 때마다 그들의 표정을 상상하는 것이 즐거웠다. 나도 모르게 대사를 따라 해 본 적도 있었다. 모든 것이 나의 상상을 자극했다. 책은 그런 것이었다.

‘냉정과 열정 사이’를 처음 접한 때는 십대였다. 한창 공부해야 할 나이에 나는 학교 도서관을 찾는 것을 즐겼고 머리를 식히고 싶다는 이유로 수많은 소설을 갈구했다. 당시 내가 책을 고르는 기준은 마음에 드는 표지와 작가였다. 주황색의 하드 커버에 가볍기까지 했던 이 책은 내 시선을 끌었고 ‘에쿠니 가오리’라는 익히 들어 알고 있던 작가는 궁금증을 이끌어냈다. 어딘가 센치한 제목도 한 몫 톡톡히 했다. 그렇게 이 책을 접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것은 ‘피렌체’라는, 당시의 나에게는 머나먼 유럽의 동화 속 같은 도시가 배경이라는 점이었다. 그 땐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학생으로서의 본분인 공부를 하고 또 더 나은 대학을 위해 노력하면서 시간을 보냈고 그렇게 잊고 살았다. 근 10년이 지나서야 나는 비로소 내가 가장 고대하던 순간을 누릴수 있게 되었다는 희망을 다시 꺼낼 수 있었다.

사실 첫 장기간 해외 여행이었고 유럽 국가가 처음은 아니었지만 이탈리아는 처음이었기에 단순히 로마에만 있기로 마음 먹었었다. 앞서 말했듯 나는 고대 문물에 관심이 많았고 정말로 시간이 멈추어 버린 것만 같은 로마는 내게 매우 기대가 컸던 도시였기 때문이었다. 피렌체를 들르게 된 것은 정말이지 단 며칠 만에 결정한 신의 한 수였다. 조금은 두렵기도 했던 파리에서의 며칠 동안 만난 사람들 중 한 명이 마침 이탈리아로 가는 일정이 나와 겹친다 하여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나는 이처럼 누군가가 나를 이끌어 주기를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그 아이를 만나게 된 것이 나에게는 큰 행운이었다. 파리에서 잠깐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재회하여 저녁을 먹은 로마의 첫 날 밤은 정말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고, 다음 날 함께 그리고 또 따로 시작된 피렌체로의 여정은 여행의 마지막을 충분히 아름답게 할 하루였다.

하루 전날 피렌체 행 기차를 예약한 나는 남은 좌석을 탔기에 조금 비싸지만 좋은 좌석에 앉았다. 로마 테르미니 역에서 피렌체까지는 그다지 멀지 않았다. 1박을 하지 않고 오자니 아쉬울 것 같아 하룻밤 묵을 숙소를 찾아보며 피렌체로 향했다. 숙소를 고르는 데에 사연이 깊었지만 생각보다 만족스러운 곳을 고를 수 있었다. 피렌체는 생각보다 큰 도시였다. 워낙 걷는 것을 싫어하던 나였기에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나보다 걸음이 빠른 그 아이를 따라 가자니 나는 꽤 지쳤고 한참을 걸어 도착한 숙소 앞에서 우리는 호스트를 또 기다려야 했다. 아침부터 서둘러 나서 기차를 타고 온 터라 지친 우리는 잠시 쉬었다가 나가기로 했다. 조금 춥긴 했지만 아늑한 숙소가 꽤 마음에 들기도 했다. 이대로 누워버리면 잠이 들까 짐과 옷가지를 대강 정리한 후 잠시 앉아 있다가 본격적으로 피렌체를 구경하러 나갔다.

피렌체의 두오모다.

해질녘이라 역광 때문에 두오모를 배경으로 한 나의 사진은 찍을 수 없었지만 나는 두오모의 그 자체에 감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바로 그 곳이었다. 아오이와 쥰세이가 비로소 재회했던 그 곳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나의 시절에 사랑일까 싶은 생각을 갖게 해준 소설과 영화, 그리고 그 속의 두 주인공. 그들의 장소였다. 따듯하게 입고 오지 않아 추위에 떨면서도 머릿속엔 온통 이런 생각뿐 이었다.

나의 쥰세이는어디에 있을까. 언젠가 함께 이 곳에 올 수 있을까.

소설을 읽으면서 그리고 영화를 보면서 수없이 했던 생각을 비로소 존재하는 장소에서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참으로 오랜 나의 꿈이 현실화 되는 순간이었다.

두오모 안은 따듯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들어간곳은 누군가의 염원이 담긴 초로 밝혀져 있었고 한참을 바라보다 함께 하던 친구에게 손을 요청했다. 그 아이의 손이 따듯하게 촛불의 빛을 감싸 안는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우리는 두오모의 꼭대기에는 오르지 않았다. 수많은 계단이 있다고 들었고 걷는 것을 싫어한 탓도 있었다. 또 다른 새로운 곳에 다다라 심신이 꽤 지쳐 있다는 핑계도 대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사랑하는 사람과 오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적어도나의 이유는 그랬다.

언젠가 나의 쥰세이를다시 만나게 되는 날, 나는 그렇게 언제가 될 지 모르는 그 날을 기약했다.
SAM_7481.JPG 2017년 1월 21일, 사랑이 가득한 피렌체에서 쥰세이를 기억하며.
SAM_7492.JPG 2017년 1월 21일, 두오모 성당 안 누군가의 염원을 만지다.

여행이 끝나가는 무렵 가장 많이 한 생각은 '떠나고 싶지 않다' 였다. 어쩌면 이곳에서 사랑하는 누군가를 만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피렌체는 더욱 그랬다. 아름다운 이야기꾼이 되고 싶었던 나는 이곳이라면 충분히 아름다운 이야기가 만들어 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곳이라면, 사랑을 해도 좋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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