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바르셀로나 3 (라고 쓰고 환상의 지로나라고 읽는다)
드라마 작가가 되고 싶었다. 꽤 오래 품고 산 꿈이었다. 과거형으로 말하기에는 여전히 마음 속에 가지고 있는 꿈이지만 나는 어느 순간부터 손을 놓고 말았다. 딱히 현실에 맞닥뜨리지도 않았다. 그저 조금만 더 돈을 벌어서 목표 금액을 만들고 나서 다시 꿈꿔야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이후였다. 드라마를 구상하고 습작 쓰는 것을 멈춘 이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많은 드라마를 보는 것이었고 또 나아가 수많은 드라마 촬영 장소를 찾아가 보는 것이었다. 이 먼 유럽까지 와서도 내 꿈을 위해 한 발자국 나아갈 수 있는 장소를 찾아보았고, 그렇게 나는 바르셀로나 근교인 지로나 행 기차를 탔다.
마침 전날 산 초콜릿을 챙겼고 아침에 서둘러 나오느라 챙기지 못한 아침으로 먹기 위해 가방에서 꺼냈다. 초콜릿이 묻은 부분을 제외한 말린 오렌지가 햇살을 잔뜩 머금은 것이 보였다. 예쁜 모양의 초콜릿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예뻐 보일 수 있을까. 며칠동안 익숙해진 바르셀로나가 아닌 낯선 작은 도시로의 여행에 긴장했던 마음이 초콜릿처럼 녹아 내렸다.
두어 시간 정도 후 도착한 지로나는 매우 맑았다. 기차역에서 나와 지로나역을 돌아보는데 몽실몽실한 구름이 하늘에 가득했고 그 사이로 햇살이 기차역을 비추고 있었다. 둘러보기도 전부터 이곳이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관광안내소로 가 지도를 받아 들고 한참을 걸었다. 성곽길을 따라 걸으니 낙산공원이 떠올랐다. 나는 종종 외국의 어느 장소에서 한국의 특정 장소를 떠올리곤 했다. 어쩌면 나 뿐 아니라 각국의 모든 사람들이 외국을 여행할때 떠올리는 생각일 지도 모르겠다.
지로나는 작은 동네였고 그냥 마음 놓고 이리저리 걸어 다니면 되는 곳이었다. 그런 점에서 매우 마음에 들었다. 항상 여행을 다닐 때 철저하게 계획하고 다니는 나의 피곤한 성격 때문에 며칠 사이 조금 지쳐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끔 아무 생각 없이 걷고 또 걸으며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닐 필요가 있었다.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힐링’이라고 생각했다.
한산하고 작은 동네로 천천히 걷고 있는 이 시간이 매우 좋았다. 어떻게 돌아다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저 걸어가며 나의 카메라를보고는 ‘포토!’를 외치는 아이들의 모습이 잔상처럼 종일 떠올랐을 뿐 이었다. 외모가 자신과 다른 사람을 보고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스스럼없이 사진을 찍어 달라고 말할 수 있는 이는 얼마나 될까. 어쩌면 그들은 어른이 아니었기에, 아이들 혹은 학생이었기에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마치 수학여행을 온 아이들처럼 보여 어디서 왔느냐 물었더니 이곳 사람이란다. 그들의 사진을 찍고 돌아서는 길에 카메라를 자세히 본 나는, 너무나도 잘생긴 남학생이 카메라 속에 담겨 있어 지로나가 다시 한 번 더 좋아졌다.
드라마의 영향이 컸는지 ‘푸른 바다의 전설’ 속 주인공이라도 되는 양 아름답게 사진을 찍는 한국인들이 많았다. 비록 내가 전지현이 될 수는 없었지만 나는 이곳에 와 봄으로써 극중 전지현이 연기했던 인물만큼 환상적인 인물이 나오는 드라마를 쓸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다시 나의 꿈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돌아가기 전 지로나에서의 중요한 행위를 위해 지도를 열었다. 그 유명한 사자 궁둥이를 찾기 위함이었다. 지도에서 가리키는 곳을 따라 몇 번을 왔다 갔다 하였지만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꼭 보고 싶은 게 보이지는 않고 배는 점점 고파오니 당연히 성질이 날 수 밖에 없었다. 역으로 돌아가야지 마음 먹은 찰나, 드디어 사자상을 만날 수 있었다. 눈 앞에 두고 엄한 데를 찾고 있던 내게 잠시 화가 났다. 나는 짧은 계단을 올라 얼른 사자 궁둥이에 매우 살짝 입을 맞췄다. 어느 곳을 가든지 이런 믿고 싶은 속설이있는 특별한 행위들이 존재했다. 사실 믿거나 믿지 않거나 그것은 본인의 자유이고 믿음 끝에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보장 또한 없다. 그럼에도 나는 꼭 그러한 ‘행위’를 즐겼다. 밑져야 본전 아니겠는가 하는 마음도 있지만 그런 소망을 담아 간절히 원한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미신 따위 믿지 않고 꽤나 이성적이고 냉철할 것만 같은 내게 남아있는 어쩌면 마지막 감성인지도 모르겠다.
2017년 1월 16일, 지로나향 렌페 안에서. 전지현일 수는 없지만요...
2017년 1월 16일, 반가워 지로나! 반갑다, 지로나 친구들!
여행을 하다보면 정말 작은 것에 감사하게 된다. 작은 것에 행복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여행을 좋아한다. 겨우 저 작은 초콜릿 하나에 추운 마음이 녹아버리고, 예뻤던 드라마를 생각하며 다시 꿈을 꿀 수 있는 것. 나의 여행은 그래서 특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