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미움을 털어냈다

by 최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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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처 베이커리의 식빵 봉지를 들고 털레털레 출근한다. 이건 우리 카페의 유일한 디저트 메뉴를 위한 재료다. 점심시간 언저리의 출근길. 카페 주위에 즐비한 식당들 앞에는 사원증을 목에 건 회사원들이 줄을 서서 식사를 기다린다. 그건 내가 언젠가 되리라고 생각했던 모습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지나쳐 커피 냄새나는 자그마한 동굴같은 카페로 들어간다. 이게 지금 내가 된 모습이다.


부럽지는 않다. 어차피 나는 단체생활에 소질이 없다. 학생 시절부터 이상하게 다수 속에 자연스럽게 섞이는 게 의식될만큼 어렵고 불편했다.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들었다. 즐겁지가 않았다. 그때는 자퇴가 유일한 꿈이었다. 단지 부모님에게 보답하려는 심정으로 끝끝내 견뎌낸 거라고 본다. 그게 아니었다면 내가 질식당할 것 같은 기이한 고통을 기꺼이 감내할 이유가 어디에도 없었다. 지금 내 삶에 졸업장은 어떤 역할도 하고 있지 않으니.


이제 꿈은 나의 유일한 희망이다. 나는 그 희망 덕분에 불행하지 않다. 아, 물론 행복하다는 뜻은 아니다. 아니지, 불행하지 않은 것이 행복의 궁극적 모양인지도 모르지. 내 꿈은 작가가 되는 것. 시멘트같은 뇌 속을 가득 채운 말들을 이야기로 축조할 것이다.


어느 날 친구가 나에게 자신이 생각하는 도시 생활의 이점을 말했다. 그건 익명성이라고. 한때 비대한 자아를 납작하게 누르고 싶어서 내가 자란 지방으로 돌아가고 싶어했던 나에게, 군중 속의 익명성이라는 건 생각지도 못한 발상이었다. 도시에서만이 나를 잃을 수 있다고? 내가 사는 세계가 좁아질수록 내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그러니까 사람들로부터 사라지는 것 말이다. 하기사 시골에서는 이집 누구네 딸이 뭐 하고 사는지 다 꿰고 있다. 매일매일 자아가 남들에 의해 까발려지는 고통이 있을 수 있겠다.


배를 채운 회사원들은 줄지어 카페로 들어온다. 이따금씩 주식과 디저트가 전도된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커피야말로 그들의 주식이 아니었던가. 돌이켜 생각해보니, 내가 아메리카노를 물처럼 마시기 시작한 기점이, 직장 일이 지독하게 힘들었을 때였던 것 같다. 그때는 아메리카노 쯤이야 하루에 세잔을 마셔도 집에 오면 시든 풀처럼 쓰러져 잠들었다. 정말로 밥을 안 먹고 커피만 마셨다. 값싼 연료 세 잔이면 움직이는 가성비 좋은 노동력이었지.


오늘 하늘은 흐렸다. 비는 하늘이 뱉은 침처럼 흩뿌려졌다. 불쾌했지만 퇴근길 버스에서 델리스파이스의 챠우챠우 라이브 버전을 들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열창했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


내 목소리는 언제쯤 누군가에게 들릴 수 있을런지. 근래 나는 쓰고자 하는 글의 주제 하나 잡지 못한 채로 며칠을 흘려보내는 중이다. 쓰던 극본은 멈췄고 무언가 하고픈 말은 명치에서 끓고 있는데 김 빠질 구멍이 없어 주전자처럼 뜻없이 꽥꽥대기만 한다. 유려한 문장을 써내릴 재주가 없다. 그래서 작가는 될 수 없을 것 같다. 나같은 게 작가가 된다면 단어로 그림을 그리는 수많은 천재들의 마음을 욕보이는 것 같아서.


인스타그램을 들여다본다. 둘러보기에는 말들이 참 많다. 요새는 이미지만 있는 게 아니다. 몇 번을 내려서 새로고침 한다. 입술이 도톰한 인플루언서가 외모를 뽐내고 있다. 그녀가 입은 옷들과 비슷한 빈티지 웨어를 어플로 검색한다. 글쓰기는 글렀다는 뜻이다. 아, 이런 내가 밉다.


그렇다고 접자니 서운하다. 서운해서 펜을 놓지 못하고 과하게 비대해보이는 내 얼굴도, 내 마음도 그냥 다 닳아 없어질 때까지 보겠다는 심정으로 본다. 그러다보면 비대했던 것들은 점차 흐려지고 나는 미워할 힘마저 잃는다. 더 미워하지 않기 위한 방법이란 이런 거다. 지칠 때까지 들여다 보면 미움은 사라지고 귀찮음이 모래처럼 가라앉아 있다. 그러면 그 때는 발바닥에 붙은 모래를 털어내며 그 자리를 뜨는 거다. 나는 미움을 그렇게 다룬다.


젊은 날의 성공을 그려본 적이 있다. 그들은 대부분 나의 하잘것 없는 질투의 대상들이었다. 언젠가부터 나는 훌륭한 창작자들의 나이를 확인하고 나에게 남은 기한을 체크해보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혹은 거장들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던 나이와 지금 내 나이를 비교하면서. 그리고 결국 다시 미움의 늪으로. 시간은 째깍째깍 흘러가는데 이룬 건 왜 없는가. 하지만 그 무렵 블로그에는 자기암시적인 글귀를 써놓았더랬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폐쇄적인 라이프 스타일은 말도 안되는 논리에 확신만 더할 뿐이다. 밖으로 나가야 한다.


프리터족으로 살아가면서 가장 만족스러운 점은, 주에 5일은 무조건 밖으로 나와야 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한결 가벼운 책임감은 보너스. 사장님 죄송합니다.


내 삶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날들로만 이루어져 있다. 성취 없는 하루하루. 거울을 들여다보면 미움만 끓는다. 하지만 미움은 발바닥에 붙은 모래일 뿐이다. 그리고 희망은 그 모래를 터는 빗자루다. 거울에 비친 나는 손에 빗자루를 꼭 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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