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영화를 빙자한 미친 로맨스
감격에 찬 두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극장을 빠져나왔다. 나는 스포츠 영화에 흥미가 없었던 게 아니라 걍 이렇게 재밌는 스포츠 소재의 영화를 여태 못 본 것 뿐이었다.. 소재는 잘못이 없다.
이 영화는 주인공이 셋이다. 내가 익힌 시나리오 작법에 따르면 다수가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요건은 그들이 같은 욕망을 가지고, 그 욕망을 이루기 위해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다수의 주인공을 가진 이 영화가 더 돋보이는 지점은, 단 한 사람의 매니퓰레이터, 타시 던컨이 나머지 둘의 욕망을 자기의 욕망과 일치시키기 위해 조종하고 있다는 것이다. 타시가 작가의 머리를 뛰어다니며 아트와 패트릭을 주인공으로 만든 셈이다..
타시에게는 테니스가 전부다. 경기로 모든 걸 이해하고, 경기로 모든 걸 표현한다. 테니스는 또한 그녀의 언어다. 경기는 상대 선수와의 대화, 상대 선수와 자신의 관계를 확인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타시는 전력을 다해 임하는, 치열한 경기를 통해서만 사람을 이해한다. 그래서 아트와 패트릭을 경기 속으로 끌어들이고 싶어 한다. 그래야만 두 사람을 알 수 있다.
여기부터가 웃기는 짬뽕이다. 아트와 패트릭은 자신들의 욕망이 타시의 욕망과 일치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는 채, 게임 속으로 끌려들어가 누구보다 치열하게 싸운다. 자기네들이 진짜 원하는 게 뭔지도 모르고, 타시 던컨의 사랑을 쟁취해야 한다는 거짓 목표에 스스로 속아 넘어간 것이다. 어리석은 중생들.. 그들은 챌린저스 경기에서 다시 만난 순간, 비로소 뭘 위해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는지 깨닫는다. 세 사람이 욕망하는 것은 쟁취해야 할 목적으로써의, 사랑할 특정한 대상이 아니다. 역동적인 시합을 통해 완성되는 ‘살아있는 관계’다.
영화가 끝났을 때, 타시는 아트와 패트릭의 조종자가 아니라 선구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결국 나는 스크린 속의 인물에게 조종당해버린 것이다. 얼마나 대단한 캐릭터성인가 ㅠㅠ 엄지척
+ 더 대단한 사실. ‘챌린저스’의 각본가가 ‘패스트 라이브즈’의 감독, 셀린 송의 배우자라고 함.(해성과 아서가 노라를 사이에 두고 함께 찍은 사진을 다시 보는데 갑자기 기분이 이상해져버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