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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하루 Jun 01. 2024

선생님 앞에서는 15살이어도 돼

어른스러운 아이


꽃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나에게는 꽃 같은 제자가 있다. 우리의 만남은 정확하게 이 시와 닮아있었다. 국어 시간 뒷줄에 앉아, 발표를 시키면 아주 아주 부끄러움이 많아 작은 목소리로 수줍게 말하던 옆반 학생은, 다음 해 나의 담임반 제자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의 의미가 되었다.



여러 아이들을 관찰하다 보면 같은 15살인데도 행동에 감탄이 나오는 학생이 있다. 봉사 정신이 투철한 학생이다.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청소도, 종례 후까지 남아서 해야 하는 심부름도 늘 웃는 얼굴로 하는 그 학생을 보면서 참 기특하고 대견했다.


친구들을 어찌나 잘 챙기던지 각종 준비물부터, 알림 사항, 고민 상담까지 늘 기꺼운 마음으로 자처하는 예쁜 마음을 보여 반에서 가장 신뢰를 받는 학생이었다. 여기까지는 뭐 그럴 수 있다 쳐도, 가장 놀랐던 것은 늘 그 학생이 늘 나에게 하는 말였다.


"고생 많으세요, 선생님"


아니, 도대체 어떤 15살이 이런 말을 한단 말인가. 나는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그 학생을 칭찬했다.


"너는 애가 어쩜 이렇게 어른스럽니. 너무 기특하다."


나의 칭찬에 힘입어 부끄러움이 많던 그 아이는 우리 반 2학기 부회장이 되었다. 친구들에게 이것저것 명령하고 시키는 부반장이 아니라, 그 모든 궂은일을 혼자 솔선수범하는 부반장.


책임감에 혼자서 모든 것을 이고, 짊어지는 것 같아서 그렇게 안 해도 된다고. 힘든 일이 있으면 선생님이 도와줄 테니 얼마든 말하라고 했다.


어느 가을날 조심스럽게 할 말이 있다며 나를 찾아왔다. 고민이 있는데 종례 끝나고 나와 상담을 하고 싶다고 했다. 많은 이야기들이 오랜 시간 동안 오고 갔다.


어른에게 처음 털어놓는 이야기라고 하며 시작한 가정사를 들려주었다. 나는 그저 손을 잡아주며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네 잘못이 아니라고, 어른들이 해결해야 하는 일이라고, 죄책감 느낄 필요 없다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는 아이가 안타까워 한참을 안아주었다. 내 앞에서 어깨를 들썩거리며 우는 이 아이는 고작 15살이었다. 차라리 시원하게 화를 내거나 여느 아이들처럼 부모에게 반항하고 짜증을 내거나 하지, 어쩌다 이 아이는 벌써 어른이 되었나 하는 생각을 했다.


"선생님 앞에서는 15살이어도 돼. 네 마음이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돼. 네가 다른 사람들을 생각해서 돌보는 만큼 네 마음을 소중하게 여겨줘. 늘 생각하렴. 너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는 너여야 해."


나는 그 후로 아이들에게 어른스럽다는 칭찬을 하지 않는다.  

그런 칭찬은 아이가 자신의 욕구를 외면하고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가지게 만든다.


아이는 아이다워야 한다.



아침에 출근을 하니 책상 위에 쪽지가 놓여있었다.

시 봐도 15살이 쓸 문장은 아니다.

하지만 어른스러운 아이도 아이처럼 대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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