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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향 Jun 13. 2022

주인공

그런 사람이 있다. 


자신이 맡은 일에 꾸준히 달라붙어서 끝판을 보는 게 아니라, 

그게 아닌 다른 이슈들로 괜히 자신을 분주하게 만드는 사람. 

직장을 배경으로 설명하자면, 자신이 담당한 사업 또는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제대로 신경 쓰고 있지 않으면서 매번 옆 팀의 프로젝트에 기웃거리거나,  

업무시간에 다른 직원들 컴퓨터 등 기계를 고쳐주면서 시간을 보내는 등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라는 본질에 집중하지 않고 다른 요소들로 항상 바쁜, 그런 사람. 


물론, 그렇게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진짜 자신의 장기를 찾고, 또 그게 발현된다면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특징을 보이는 사람은 그 발현의 단계까지 

왠지 갈 수 없으리라는 합리적 의심을 우리는 가지게 된다. 


내가 존경하는 회사 선배는 최근에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자신의 맡은 일에 대한 성공경험의 부재'가 그 원인일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 말씀이 정답인 것 같아서 무릎을 탁 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내 이야기일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영 기쁘게 낄낄거리지는 못했다. 글쓰기와 관련되어서는 나도 역시나 그런 사람이다. 


매일 생각하고, 매일 쓰지만 나의 글들은 내 작은 일기장이라는 그 좁은 영토를 차마 벗어나지 못한 채다. 

남의 인정 없이도 그저 글을 쓰고 생각을 표현하는 것에 기쁨을 느끼는 소시민이라고 스스로 포장하지만, 

나는 진짜 내 속내를 안다. 나는 완성으로 가는 과정을 외부에 보여주기 싫은 것이다. 보여주기 싫은 것보다

보여줘서 사랑받지 못하는 글을 견디는 게 싫은 것이다. 


나는 글쓰기를 참 좋아한다. 글쓰기가 좋다는 것은 생각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특히, 사람을 관찰하고 사람을 통해 새로운 삶에 대한 해석의 관점들을 얻는 것을 좋아한다. 

사람을 이야기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시각의 언어를 만들어내고 싶은 욕심도 있다. 


그런데 참... 글을 통해서 나를 표현하고 또 사람을 표현하는 일이 '꾸준히' 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부터, 지루해진다. 내가 인생의 주인공이 아니라, '지나가는 행인 1'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 같다. 

여기서 논리가 맞지 않는 부분이 생겨난다. '작가'가 사람을 지긋하게 관찰하고, 거기서 얻은 통찰을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는 일을 할 때, '배우'는 그 작가를 통해 탄생한 캐릭터를 표현하면서 생기를 불어넣는다. 

나는 그렇다면, 글쟁이가 아니라 연기를 하고 싶은 것인가? 당황스럽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의 실체가 무엇이든 간에, 글쓰기에 대한 내 게으름의 기저에 '지금 당장 반짝거리고 싶은 욕심'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결론이다. 다듬고 또 다듬어서 매일매일 훈련하고 노력하는 반복의 과정을 무수히 지나면서 얻게 되는 것이 순간의 그 반짝임이라면, 나는 그 과정이 아니라 결과만 누리고 싶어서 시작도 하기 싫은 것 같다. 

 

시작이 싫다고 정말 시작도 안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요새는 짧은 글이라도 여기저기에 쓴다. 

인스타그램에 썼다가, 페이스북에 썼다가, 또 그러다가 조용히 꼬리를 내리고 내 일기장으로 다시 기어들 오기를 반복하기도 한다. 


하지만 꾸준히 해내지 못하는 나 자신을 미워하지는 않기로 했다. 

옛날처럼 나와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 타인을 답답해하거나, 마치 내 모습 같아서 격하게 그 상대에게 거부감을 느끼는 일도 그만뒀다. 내가 잘하고 싶은 일을 진짜 잘하기 위해서, 나는 그 일의 수행자인 나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연습을 매일 실천한다. 나와의 협상 타결 없이는 그 어떤 것도 해낼 수가 없으니까. 


나도, 그리고 당신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꾸준히 하기'는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확실한 길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 확실한 길을 지치지 않고 걸어갈 수 있도록, 오늘도 나를 격려한다. 

나에게도 '성공경험'이 생기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좀 과장된 정신승리라고 할지라도, 언젠가는 확실히 반짝이는 그날이 오기까지 

지루한 오늘의 과정도 자체적으로 좀 반짝이 글리터를 뿌려주는 삶을 살면은 좋겠다. 

지나가는 행인 1, 2, 3,... n 모두 모노드라마에서는 다 주인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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