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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빈 Nov 11. 2018

‘썸’부터 ‘셈’이 시작된다

교섭하고 확인하고 약속하라

내꺼 아닌 너, 니꺼 아닌 나

몇 년 전 소유, 정기고의 ‘썸’이라는 노래가 공전의 히트를 했다. “요즘 따라 내꺼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너, 니꺼인 듯 니꺼 아닌 니꺼 같은 나”가 주요 가사다. 연애는 ‘서로가 서로의 것(소유물)’이 되는 것이고 썸은 바로 그 직전 단계라는 뉘앙스다. 많은 사람들이 이 가사에 공감을 했다. 사귀는 사이가 되면 소유권자에게 소유물을 통제하고, 이용하고, 변형하고, 처분할 권리가 있는 것처럼, 연인에 대해서도 그러한 권리가 있는 것처럼 은연중에 생각해 온 것 같다. 그러나 단지 사귀는 사이라는 이유로 연인을 통제하려는 태도는 현실에서 많은 문제를 낳았다. 통제를 거부한 상대방에게 가하는 연인의 폭언이나 폭력이 마치 정당화될 수 있는 일인 것마냥 여겨지기도 했던 것이다.

연애가 계약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계약법을 배웠을 때였다. 공부를 하면서 법리를 쉽게 이해하려고 연애에 빗대어 생각하곤 했는데, 문득 ‘내꺼’와 ‘니꺼’가 되는 연애관계와 계약에 빗대지는 연애관계가 어딘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연애로써 ‘니꺼와 내꺼’가 되는 관계에서는 예비 신랑이 미래의 장인에게 “따님을 저에게 주십시오”라고 말하게 된다. 어떤 물건이 내 것이 되려면 물건의 소유자와 계약을 해야 하는 것처럼, 딸을 아버지의 소유물이라 여기는 문화 탓이다. 이 경우 예비 신랑의 계약 상대방은 예비 신부가 아니라 미래의 장인이 된다. 이런 관계에서의 연애는 결코 두 사람 사이의 계약일 수 없다. 연애를 하는 둘 중 한 사람은 계약의 당사자가 아닌 것으로 되기 때문이다.

‘내꺼’ ‘니꺼’ 소유 관계 아닌
‘나와 너’ 사이의 계약인 연애

옷 쇼핑 같은 소소한 일상에도
많은 노력과 시간 들이듯
관계 정의 않고 만나더라도
연락 빈도·연애스타일 등 공유
서로 입장 보여주고 조율해야

계약이란 쉽게 말해 갑과 을이 특정한 책임과 의무를 이행하기로 합의하고 약속하는 것이다(반드시 종이에 써야만 계약인 것은 아니다. 계약서는 서로 그런 계약을 했다는 사실에 대한 증표 역할을 한다). 나는 연인과 사귀기로 약속하는 것이지 연인을 소유한 다른 누군가와 약속을 하는 것이 아니다. 연애는 서로에 대한 배려와 끊임없는 조정의 과정으로 빚어지는 상호작용이다. 헤어짐 역시 그 상호작용의 결과이지 누가 누구를 물건 버리듯 ‘버리고’ ‘버려지는’ 일방적 행위는 아니다.

연애가 계약이 된 순간 나는 상대방을 “내꺼”라고 부르는 일을 멈추었다(비유적인 의미라 하더라도 더는 말하지 않게 되었다). 내 사랑의 상대방을 사람으로서 제대로 존중하기 위한 일이었다. 그렇게 나는 “연애는 계약이다”라고, 아니 ‘니꺼와 내꺼’의 관계가 아니라 ‘나와 너’ 사이의 계약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후략)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11091719005&code=960100&sat_menu=A0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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