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이별과 계약상 이행거절
“나 지금 이거 차인 거지?”
간만에 브런치를 하자기에 나갔더니 O가 창백하게 질린 얼굴에 눈은 퉁퉁 부어서는 날숨 전체를 한숨으로 채우고 앉아 있었다. 그의 연인이 바쁘다는 이야기는 몇 번 들은 적은 있었다. 뭔가 연애전선에 커다란 문제가 생긴 것이 분명해 보였다. “뭐야, 헤어졌어?” 최대한 쿨하게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은 “잘 모르겠어”였다. 그의 연인은 지금 거의 한 달째 O의 연락을 받는 둥 마는 둥 하며 ‘바쁘니 다시 연락할게’만 반복하고 있었다. O는 “그 사람이 바쁘다니까 내가 연락도 적게 하고 참아보는 중이야”라고 말하며 덤덤하려 애쓰다가도 울먹이면서 “아무래도 내가 헤어지자는 말을 하게 하려고 유도하는 것 같다”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나는 그의 연인이 너무 비겁한 수를 쓰는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O를 위해 일단은 ‘정말 바쁜가보지, 좀 더 기다려보자’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잠수이별자’는 연애 파탄 주도자
혼자 ‘계약 끝났다’ 생각하면 오산
‘잠수 당한 사람’이 해제 권리가져
잠수이별은 연애 상대방을 하염없이 기다리게 한다. 답이 오지 않는 문자와, 연결되지 않는 전화와 접속되어 있음에도 대답하지 않는 페이스북 메시지와 인스타그램 다이렉트메시지 그 외 원래는 연락이 되어야 마땅한 많은 소통수단들이 모두 ‘거절’을 나타낼 때 잠수한 상대방을 기다리는 사람은 고통 받는다. 명시적으로 헤어지자는 말을 들은 것은 아니어서 연인이 잠수에 돌입하면 상대방은 혼자서 온갖 시나리오를 쓰며 고뇌에 빠진다. 그 사람은 가끔 자기만의 시간이 필요한가봐, 혹은 요즘 많이 바쁘니까 연락이 좀 잘 안되는 것 같아 등등 그런 말을 내뱉으며 한숨을 푹푹 쉬게 되는 것이다. 닿고 싶어도 소통하기를 회피하고, 연락을 받지 않는 이 사람은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나를 보고 싶어 하기는 하는지, 나와는 무슨 관계였는지 모든 것을 흔들리게 하는 시간이 도래하게 된다.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