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작
"어떻게 태극기를 단 집이 하나도 없네"
"우리 집도 안 달았는데 뭐, 태극기는 있나?"
8월 15일 아침과 점심 사이, 엄마와 같이 라면을 먹고 있을 때, 엄마의 말,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아파트 베란다에 서서 내려다본 풍경은 썰렁했다. 수백 세대가 빼곡히 들어선 단지에서 태극기를 단 집은 없었다. 비가 와서는 아닐 것 같았다.
어릴 때는 달랐다. 광복절이면 온 동네가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물들었다. 집집마다 태극기가 펄럭였고, 학교에서는 광복절의 의미를 열심히 가르쳤다. 일본의 통치에서 벗어나 드디어 나라를 되찾은 날이라고 배웠고, 그 말에 독립운동가의 염원과 나라를 되찾았다는 마음에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했다. 물론 그때는 그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특별한 날'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국경일이 그냥 '빨간 날'이 되어버린 것은. 광복절은 그저 하루 쉬는 날, 3.1절은 봄나들이 가는 날, 현충일은 그나마 묵념이라도 하지만 그것도 TV에서 나올 때만 잠깐. 우리는 언제부터 무관심해졌을까? 더 씁쓸한 건 이런 내 모습이었다. 광복절 전날부터 신났던 건, 광복절이 쉬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광복절 아침에 일어나서 "아, 오늘 광복절이네. 쉬는 날이라 좋다"라고 생각한 게 전부였다. 태극기를 달 생각은 애초에 없었고, 광복의 의미를 되새길 생각도 없었다. 전날 친구를 만나고 금토일 3일을 쉴 수 있다는 사실이 마냥 좋았을 뿐이다.
나만의 문제라면 좋겠지만, 텅 빈 태극기를 보면 너나 할 것 없이 국경일에 대한 관심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문득 저출산 문제가 떠올랐다. 태극기를 달지 않는 풍경과 아이들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 사이에 묘한 연결고리가 있는 것 같았다. 태극기를 다는 것은 단순한 의례를 너머 다음 세대에게 "이 나라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왜 소중한지"를 보여주고 기념하기 위함이다. "오늘은 우리나라가 해방된 날이야"라고 설명해 주는 순간, 그 아이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역사를 배우며 어릴 적 내가 느꼈던 생각과 마음을 느낄 것이다. 아이가 만약 "우리는 왜 태극기 안 달아?"라는 질문을 한다면 아이 때문이라도 태극기를 달 수도 있다.
하지만 세대마다 점점 줄어드는 아이들은 집집마다 태극기의 이유를 찾기 어렵게 만들 수 있다. "뭘 그런 번거로운 일을, 다 아는데"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사실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지만 마음을 먹기가 얼마나 번거로운지, 바람에 너덜너덜해지면 치우기도 힘들고, 비라도 오면 젖어서 지저분해진다. 그럴 바에야 그냥 안 다는 게 낫지.
어쩌면 저출산과도 닮아있지 않을까 한다. 아이를 키우는 일도 마찬가지로 번거롭고, 비용이 많이 들며,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투자다. 당장 내게 돌아오는 이익은 없다. 그럴 바에야 그냥 나 혼자 편하게 사는 게 낫다는 결론에 이른다. 하지만 이런 개인적 선택들이 모이면 어떻게 될까? 거리에서 태극기가 사라지고,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사라진다. 과거를 기억하는 사람도, 미래를 이어갈 사람도 점점 줄어든다.
물론 태극기를 달지 않는다고 해서 애국심이 없다는 건 아니다. 아이를 낳지 않는다고 해서 이기적이라는 것도 아니다. 각자의 선택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고, 그것을 존중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아쉽다. 우리가 무엇을 잃어가고 있다. 어쩌면 문제는 의미를 잃어버린 데 있을지도 모른다. 태극기 달기가 단순한 의례로만 여겨지고, 그 안에 담긴 의미는 잊힌 것 말이다. 아이 낳기도 마찬가지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야 하고, 마치 모든 아이가 의대나 sky에 가야 하는 것처럼 모든 돈과 시간을 쏟아부어야 하기 때문에 두려워서 하지 못한다. 물론 그 과정이 고통을 수반할 수 있다. 육아가 힘들다고 한다. 사실 나는 해보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가 있는 어른들에게 아이들의 존재에 대한 질문에 답은 항상, "힘들지만 그를 넘는 기쁨을 준다"였다.
태극기를 다는 것은 과거의 기억을 미래 세대에게, 아이를 낳는 것은 유전자를 미래에 전달하는 행위라는 관점에서 동일하다. 물론 지금 당장의 현실은 까만 밤처럼 보일 수 있다. 빈 깃대들이 늘어나고, 놀이터가 텅 비어 가고, 사람들은 더 안전지대로만 향한다. 하지만 나는 이런 흐름을 뒤바꿀 수 있는 힘이 여전히 남아있다고 믿는다. 어릴 적 느꼈던 뭉클함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마음에서, "힘들지만 그를 넘는 기쁨"이라고 말하는 부모들의 경험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아무리 헬조선이라고, 너무 힘들다고 하지만 우리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공동체에 대한 그리움과 미래에 대한 희망이 남아있다고 믿는다. 그것을 끄집어내고, 함께 키워나가야 하는 계기가 이번 광복절이 되길 바란다. 어두운 일제의 통치가 끝나는 순간 모두가 태극기를 들고 밖으로 뛰쳐나와 새로운 대한민국의 시작을 꿈꾸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