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 : B와 D 사이

by 거의모든것의리뷰

인간의 인생은 B와 D 사이 C, Birth와 Death 사이 Choices라고 하지만 이 C에 Coincidence까지 껴넣어야한다. 왜냐하면 실제로 그렇기 때문이다. 아무리 열심히 계획을 짠다고 해도, 시뮬레이션을 돌린다고 해도 우연히 발생하는 일들을 대체할 수는 없고, 즉흥적으로 풀어나가야 하는 부분들이 발생한다. 우연히 길을 가다, sns를 통해 마주친 이제는 연락하지 않은 옛 친구들과 뜬금없이 다시 이어지기도 하고, 어쩌다 만난 사람들과 인연을 쌓고 그를 유지해 나가는 것 모두 우연에서 비롯되곤 한다. 길가에 별다른 생각 없이 우연히 들어간 식당이 인생의 최애가 되거나, 도서관이나 서점을 돌아다니다 고른 책이 인생 책이 되고, 인생 작가가 되는 일을 찾아보기 어렵지 않다.


평온한 호수에 돌을 던져 파문을 만들어 한층 더 흥미로운 삶의 이야기를 만든다. 소설이나 영화를 봐도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들은 우연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우연을 통한 인연을 조금 더 운명적으로 받아들이고 더 수용적인 경향이 있다. 마치 하늘이 나를 위해서 로또 번호를 알려준 것 같이 점찍어준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소개팅으로 만난 사람보다, 학교나 회사에서 만난 친구 -> 연인의 발전 단계보다 지하철에서 우연히 부딪혀 만난 사람의 이야기가 더 로맨틱하게 들린다.


어쩌면 우연은 불안함을 전제로 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의 세계 밖에서 훅 들어온 우연이라는 이름은 통제에서 벗어난 강아지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어 정신없게 만들기도 한다. 소개팅으로 만나, 이름과 나이 직업 등을 알고 있는 사람과 달리 지하철에서 어깨 한번 부딪힌 사람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이름도 성도 모르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더 높은 리스크 때문에 더 높은 만족감을 얻기도 하는, 동화 같은 이야기가 펼쳐지기도 하는 것이다.


한편 우연은 우리에게 Choices 즉 '선택의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핑계를 제공하기도 한다. "내가 고른 게 아니라 우연히 그렇게 된 거야"라고 말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조금 더 자유로워진다. 실패해도 "운이 나빴다"라고 할 수 있고, 성공해도 "운이 좋았다"라고 말할 수 있다. 우연히 지하철에서 마주한 사람과의 만남이 오히려 부담이 적은 상태로 더 스스로를 드러내며 온전한 나를 보여주기 용이할지도 모른다.


우연이 주는 선물 같은 순간들을 만끽하기 위해선 우연을 받아들일 준비가 필요하다. 아무리 좋은 우연이 찾아와도, 그것을 알아볼 수 없다면 그냥 지나쳐버린다. 우연한 만남도, 우연한 기회도, 우연한 발견도 모두 마찬가지다. 조금 더 열린 마음을 갖고 계획에서 벗어나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잃어버린 길이 새로운 마법 같은 곳으로 안내할 것이다.


우연은 계획할 수 없다. 하지만 우연을 맞이할 준비는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준비가 바로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방법 중 하나라고 본다. 결국 인생은 Choices와 Coincidences의 조화다. 우리가 선택하는 것들과 우연히 찾아오는 것들이 만나서 만들어내는 하나의 작품이다. 그 작품이 어떤 모습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서 더 흥미롭지 않은가





keyword
작가의 이전글광복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