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우리

다시..

by 거의모든것의리뷰

그때 조금 더 참았더라면, 그때 널 잡았더라면, 그때 널 놓지 않았다면, 그때 반지하에 살지 않았더라면


만약에라는 단어는 참 매력적이다.


절대 일어날 일 없는 것부터 시작해서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선택들을 눈앞에 두고 있었을 때까지 가장 진지한 순간부터 가장 실없는 순간까지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상상하다 보면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 것처럼 신기하고 재미있다. 그리고 대게 과거에 대한 만약에는 인생의 굵직한 분기점들을 떠올리곤 한다. 대학교에 다른 전공을 선택했더라면, 다른 회사에 취업을 했더라면, 첫 번째 연인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등 지금의 나를 있게 만든 순간들이 우선순위로 꼽힌다. 뭐, 비트코인을 샀다면, 테슬라를 샀다면 같은 것도 있겠지만 그것들은 흥을 돋우기 위한 안주거리 일 뿐이다.


하지만 인생의 분기점들을 바꾸기 정말 어렵다. 중고등학교시절, 공부를 해서 대학에 가는 일이니 하루아침에 대학교를 바꿀 수는 없고, 전공도 크게 바뀌지는 않았을 것이다. 회사 역시 취업이 쉽지 않은 시절에 붙여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면서 다녔을 것을 손바닥 뒤집듯 쉽게 바꿀 수 있을까?


하지만 온전히 개인의 의지로 만약에를 현실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사랑일 것이다. 사랑의 시작과 끝은 말 한마디, 한 발자국만큼의 발걸음으로 이루어진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 그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저기"라는 말이 귀에 들어오면서 인연이 시작된다. 어떤 인연으로, 어떻게 구성해 나갈 것인지는 그다음의 일이다. "잘 지내"라는 단어와 함께 항상 같은 방향을 향해 있던 신발의 앞코가 서로 반대 방향을 보고 있게 되는 그 순간에 이별을 말한다.


그러기에 쉬워 보인다. 나의 생각이라면 무조건 따르는 입과 발이니, 단 51% 의 이유로 이별을 택했던 나의 마음이 조금만 더 기울었다면, 발걸음이 차마 떼어지지 않아 마음이 51%가 아니라 49%였음을 깨달았다면 지금 이 순간 함께이지 않을까? 잊어버렸다. 그 순간의 치열했던 고민을, 밤을 새우며 갈팡질팡했던 마음을 다잡기 위한 노력들을, 이성과 감성 사이의 줄다리기가 얼마나 버거웠는지, 한 발자국의 무게가 세상 그 무엇보다 무거웠음을 잊은 채, 만약에라는 한마디가, 행복을 위해 안 좋은 기억을 삭제한 나의 뇌가 그 모든 것을 한없이 가볍게 만든다.


깊이 묻어두었던 그때의 감정과 그때의 마음을 그대로 떠올린다면 쉽게 선택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과거로 돌아간다 한들 그 선택이 후회가 된다 한들, 이별이라는 종착역을 향해 가는 시간이 길어진다 한들 가고 있다는 사실, 종착역에 도달하면 설령 술에 취해 자고 있더라도 내려야 한다.


만약에라는 단어는 하룻밤의 꿈같다. 닿을 수 있어 보이지만 닿을 수 없는 그곳. 우리는 가끔 그 꿈을 곱씹으며 불행한 현재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 친다. 만약에는 그렇게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종착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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