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뒤, 퇴사를 한다.
묘하다. 아직 같은 사무실에 앉아 있는데, 여태까지와는 조금은 다르게 나를 대한다. 내가 마치 과거에서 온 인물인 것처럼. 한걸음 더 떨어져 있는 느낌이랄까. 인수인계를 하는 중에도 어쩌면 말뿐인 인수인계일지도 모른다. 엄청나게 대단한 일은 아니었다. 그저 남은 사람들이 신경 쓸 한 가지의 일이 추가되었을 뿐이다. 담당자들에게도 미리 말해두었고, 다 같이 하던 일이 대부분이니, 아마 나를 대체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평소에는 일하느라 다른 생각이 들어올 틈이 많지 않았다. 가끔 맞이하는 일이 없는 순간에는 다른 팀원들과 잡담을 이어가며 비어있는 순간이 없었는데, 키보드 소리와 마우스 소리가 난잡하게 들려오는 이 공간에서 명상하듯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가만히 앉아 사무실의 풍경을 바라본다. 우주에서 회사를 내려다보는 것 같은 이 기분 속에 마구잡이로 솟아오르는 생각을 음미해 본다.
앞으로의 유일한 업무는 인수인계. fade out을 위한 이 작업은 떠나가는 이의 남은 이에 대한 마지막 의무다. 내가 없더라도 잘 돌아갔으면 하는 마음에 자료를 한번 더 정리하고 조금 더 쉽게 설명해 놓는다. 한편으로는 너무 쉽게 잊히지는 않았으면 한다. 내가 밤잠 설쳐가며 메꿨던 구멍들이, 내가 떠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터져 나오길 바란다. 그래서 남겨진 이들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내 이름을 읊조렸으면 좋겠다. '아, 정말 많은 일을 하고 있었구나.' 'Dr 히루루크'는 말했다. 사람은 잊혔을 때 비로소 죽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 정의대로라면, 나는 이 사무실에서 아주 끈질기게 살아남고 싶다. 적어도 1년쯤은 그들의 입과 메신저 창에 내 이름이 유령처럼 떠돌기를, 기어이 빌붙어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회사에 대한 아쉬운 감정은 많았지만 사람들에 대한 악감정은 많지 않았다. 아, 가끔 있었지만 한 순간의 사건이었을 뿐이다. 잔잔한 바다에 가끔 태풍이 몰아치 듯한 그런 주기적이면서 비주기적인 사건들은 대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렇게 끝났기 때문이다. 문득, 나의 부재로 좋아할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름 무난 무난하게 사회생활을 했다고 생각하는데, 모든 사람이 그렇게 생각할까라는 질문 속에 100% 확신을 담아 대답하기는 어려웠다. 언젠가 퇴사를 하는 누군가를 바라볼 때, 드디어 가는구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뭐, 이제 와서 뭘 하겠어. 나의 시간은 끝났다. 그의 감정이 나의 감정에 너무 선명하게 닿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어디 가요?"라는 질문은 단골 멘트다.
성공적인 이직은 퇴사를 마음먹은 결정적 이유이기도 하지만 과연 이를 사실대로 말해도 되나?라는 질문이 따라왔다. 무언가 동료들을 버리고 나 혼자 잘되기 위한 결정인 것처럼 비칠까 봐, 이 지옥 아닌 지옥의 동료에서 배신자의 오명을 뒤집어쓰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10% 정도 들었다. 그렇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고 경쟁사 같은 곳은 아니라 사실 마음에 걸릴 것도 아니긴 하지만, 내가 너무 착한 건가? 아무튼 이직의 결과를 말해주면 대답은 대게 두 개다. 덜 친한 사이라면 '축하한다', 조금 안면이 깊은 사이라면 '밥 한번 먹자'이다. 진심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나의 '밥 한번 먹자'는 그 어떤 퇴사자와도 인연의 끈이 닿지 않았지만 혹시 모르지 않은가.
다들 이직이라는 결론을 부러워한다. 나라도 그랬겠지만, 지금의 대우보다는 조금 더 높은 연봉과 나은 복지를 향해 가는 것이 대부분이므로 나쁘지 않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 회사에서 쌓아온 사람들과의 관계, 새로 배워야 하는 업무 등은 두려움이 없을 수는 없다. 사람들은 마치 지옥을 빠져나가 천국으로 향하는 것처럼 나를 바라보지만 언젠가 적응을 한다면 지금 회사에서의 삶은 까맣게 잊은 채 그저 다른 지옥처럼 느껴지겠지만 지금은 사실 너무 홀가분한 게 사실이다. 난 떠난다. 이 순간만큼은 활짝 웃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