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마음
연주자의 성향을 '자유'를 그 척도로 두었을 때, 서로를 바라보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린, 클래식과 재즈.
음악의 악보에 적혀진 그대로 연주하는, 수많은 악기들의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오케스트라의 클래식과 피아노, 트럼펫, 드럼, 첼로 4개의 악기로 악보가 없이 그들의 느낌과 직관으로 연주를 이어가는 재즈.
언제 어디서 들어도 똑같은 노래를 들을 수 있는 변함없는 고전과 언제 어디서 들어도 다른 연주를 들을 수 있는 재즈.
클래식과 같은 사람이라 하면, 어렸을 때부터 엘리트의 길을 밟아 전문직으로 양복을 쫙 빼입고, 소위 '사'자 직업으로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의 표본으로 자랐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형식과 절차를 중시하고 자신만의 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나.
재즈와 같은 사람이라고 하면, 마치 재즈 애니메이션 '블루'에서 주인공의 모습처럼,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길이 아닌, 자신의 길을 걷는 사람일 것 같다. 그것이 성공이든 실패든 우직하고 격렬하게 밀고 나가는 그런 활동성과 에너지를 가진 사람. 누구를 생각하든 어떤 영화에서 주인공의 이야기를 닮은 음악.
너무나도 다른 둘이지만 서로는 서로가 가질 수 없는 매력을 갖는다. 안정적이며 편안한 예측 가능한 클래식은 그 이야기가 단조롭게 보일 수도 있지만 고전은 시간이 지나도 그 빛을 잃지 않는다. 정교하게 돌아가는 멈추지 않는 거대한 기계장치다. 재즈의 변화무쌍함은 공연장의 분위기를 달아오르게 만드는데 천부적인 성격을 갖는다. 연주자에 따라 천차만별의 느낌을 선물해 주기 때문에, 같은 곡을 들어도 질릴 수가 없다. 아주 날 것의, 드넓은 초원에서 뛰어다니는 동물들의 노래다.
둘은 서로 다른 음악으로 다른 곳을 바라보지만 그들의 등은 서로 맞닿아 있다. 음악을 통한 위로, 자기표현은 음악이라는 본질 속에서 그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표현의 차이일 뿐 음악을 통해서, 즐거움을 느끼거나,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다거나 하는 마음에서 우러난 그 표현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다를 뿐이다. 가령 생일 선물을 줄 때, 상대방이 필요한 것을 줄 것인가와 상대방이 필요하지 않지만 원하는 무언가를 줄 것인가도 결국 상대방의 생일을 축하해 주는 마음은 동일하기 때문이다. 물론 받는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또 다른 문제이지만, 관객이 클래식과 재즈 중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에 관한 문제와 별다르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건 그 마음일 테니까 말이다. 때로 그 표현 방법에 대한 차이로 반목할 때도 있지만, 돌아보면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