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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의모든것의리뷰 Oct 10. 2023

우산

가을비

 조금 더 차분한 나날들을 보내기를 바라는 하늘의 마음이 비를 뿌린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비는 상쾌한 공기를 만들어준다. 이제는 정말 반팔을 정리해야 할 때가 다가온건가, 검은색 후드를 뒤집어쓴 채 바지 그리고 가방까지 어둠의 깔맞춤과 하얀색 신발을 신은 앳된 얼굴의 175의 학생, 회색의 맨투맨과 청바지를 입은 학생, 검정 바람막이를 입은 직장인 등 옷 색깔이 점점 비슷해지는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곧 은행과 단풍 그 사이의 색을 가진 트렌치코트가 펄럭거리며 거리를 뒤덮으면 가을이 드디어 도래했음을 알게 될 것 같다.


단조로운 상하의의 조합을 깨고 형형색색 빛내는 오늘의 아이템은 우산이다. 노란색의 손잡이를 가진 검정 장우산, 하루가 멀다 하고 잃어버리는 성격 때문에 매일매일이 새 우산이지만 편의점에 파는, 온통 흰색으로 점 칠 해진 비닐우산, 버튼을 누르면 공격적으로 퍼져나가는 짧은 파란색 우산, 물 먹은 여름의 낙엽을 머금은 듯한 어두운 풀색의 우산 등등 모두가 핸드폰을 들고 있는 지하철에서 다른 손 한쪽을 차지하는 우산들이 있다.


하늘에서 비를 쏟아냈다면 지하철의 바닥은 신발에서 미쳐 떨어지지 않은 물방울들과 우산의 물기가 만들어낸 흥건함을 보여주었겠지만 오늘의 바닥은 다행히도 깨끗하다. 무시할만하게 작게 떨어진 물자국들, 어디에서 떨어져 나왔는지 모르는 조그마한 무엇들 위에 서있는 어딘가로 향하는 수많은 사람들. 연휴를 맞아 미리 내려가는 사람들과 회사에서 받은 연휴선물을 손에 들고 서로 다른 모습으로 서로 다른 곳으로 같은 곳에서 잠자코 기다린다.


역에 도착한다.


한 손에 들고 있던 비에 대한 방패를 펼 준비를 한다. 지하철의 출구에서 한마음 한뜻으로 순차적으로 펼쳐지는 우산은 비 오는 세상과 한걸음 동떨어진 각자의 세상을 만들어준다. 평소였다면 조금 더 가까운 거리로 사람들과 부대끼며 길을 걷겠지만 우산은 경계가 되어 경계의 끝자락에 물방울을 떨어뜨리며 오지 말라고, 선을 긋는다.


길을 걷는다.


마주치며 걸어오는 누군가가 우산을 편치 않은 채 아직 손에 들고 있다는 것을 보고 우산을 접지 않은 채 옆으로 슬쩍 치워보지만 머리 위 나뭇잎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정수리에 꼭하고 떨어져 느슨해졌던 마음에 경각심 한 방울을 떨어뜨린다. 비가 오는 게 좋아서인지 물 웅덩이를 밟을 까인 지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채 천천히 걸어가는 길에 끝에 나도 우산도 집에 다다랐을 때 하루종일 곁을 떠나지 않은 우산의 고생을 치하하며 우산살에 맺힌 물방울들이 다시 왔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게 활짝 펴 현관 앞에 가지런히 널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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