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중 핸드폰 침수
보홀의 바다를 거닐었다. 아름다운 바다는 주머니에 핸드폰이 있다는 사실조차 망각하게 만들었다.
핸드폰이 켜지지 않았다. 갑가지 방전되었나? 이리저리 만져봤지만 이유를 알 수 없었고 핸드폰이 바닷물로 들어갔다가 나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한참뒤였다. 생활방수에 바닷물을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이 아쉬웠지만 이제 와서 무얼 할 수는 없었다. 단 30초의 바닷속 여행이 그 작은 컴퓨터의 생명을 앗아간 것이다. 황당했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햇볕에 말리면 기적적으로 살아날까 하는 희망을 품고 숙소로 돌아갔지만, 핸드폰은 영영 눈을 뜨지 못했다
예상치 못한 3일간의 디지털 디톡스가 시작되었다.
아무것도 되지 않는 핸드폰은 그저 쇳덩어리에 불과했기 때문에 핸드폰을 들고 다니지 않게 되었다. 친구들에게 모든 것을 일임했다. 혼자가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덕분에 디지털 디톡스를 할 수 있었다. 그것도 꽤 긴 시간 동안의 디지털 디톡스도 여행의 일부가 되었다.
처음에는 특별히 무엇이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그렇게 연락이 많이 오는 것도 아니었고 간간히 연락이 필요할 때는 친구를 통해 하려면 할 수 있었다. 다만 가끔 불편함이 드러날 때는 음식점에서 주문한 음식이 나오지 않았을 때, 카페에서 음료가 나오지 않았을 때, 핸드폰을 보지 못했다. 오늘의 야구 경기의 결과를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여행의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할만 했다. 생각보다 연락을 많이 하지도 않았고, 인스타를 올리지 않아도 되었다. 중간중간 시간이 빌 때면 창밖을 바라보거나 멍을 때리면 되었다. 차라리 책을 더 많이 볼 수 있었던 것이 이득이었을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하다가 다른 것으로 넘어가는 그 짧은 순간들, 평소라면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만지작거렸을 그 시간들이 온전히 현재로 돌아왔다. 바깥세상을 한 번 더 바라보고, 음식의 맛을 한 번 더 음미할 여유가 생겼다. 해변의 선베드에 누워 핸드폰을 스크롤하는 대신 그냥 잠을 잘 수 있었다. 무엇을 하든 그 행위가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핸드폰 없이 바로 잠들 수 있다는 것, 음식을 먹을 때 온전히 먹을 수 있다는 것. 그제야 깨달았다. 핸드폰이 '지금 여기'에서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얼마나 흐리게 만들고 있었는지를.
여행 중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이런 디톡스를 가능하게 했다. 항상 동행하는 친구들이 있어서 굳이 내가 모든 것을 챙길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현실의 벽이 나타났다.
대중교통을 타는 것도, 버스 시간을 보기도 어려웠다. 바로 서비스센터에 달려갔지만 그곳엔 좌절만 남아있었다. 사형선고를 받은 핸드폰과 곧 지출될 돈을 생각하면 여행경비가 갑자기 두 배가 된 느낌에 정신적으로 어이가 없었지만 이미 벌어진 일은 벌어진 일이었다. 인터넷으로 핸드폰을 사야 했다. 그리고 진짜 문제가 시작되었다. 핸드폰으로 인증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핸드폰을 사기 위해서 인터넷으로 구매를 하려면 핸드폰 인증을 해야 한다! 간편 인증은 당연하고 카드만 있어도 된다고 생각한 것까지 계좌에서 돈을 빼기 위해 인증을 받으면 핸드폰으로 문자를 받고, ARS 전화를 받아 숫자를 입력해야 하는데 핸드폰이 없는 상태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게 했을 행동들에 대한 제약이 너무나 뼈아프게 다가왔다. 삼성페이가 없어도 물건을 사거나 교통수간을 이용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지만 마트에 가지 않는 이상 인터넷에서 무언가를 사기는 어려웠다. 결국 공기계를 통해 해결하긴 했지만 이미 너무 많이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를 되돌릴 수는 없었다. 그 편의성에 잠식되어 버린 상황에서 나만 다른 방법을 택할 방법도 남아있지 않았다. 앞으로 더 많은 것들이 핸드폰에 들어가고 AI 화 함께 일들을 할 텐데... 이미 전 인류는 독이 든 성배를 마셔버렸다.
그 독이 우리를 죽이는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능력을 주는 것인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미 마셔버렸다는 것, 그리고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 보홀의 바다가 가르쳐준 교훈이 있다면, 가끔은 의도치 않은 멈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선명함을 그리워하기보다 선명함을 살 수 있도록 해야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