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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DA Oct 07. 2021

나, 우울해도 될까?

누구나 한 번쯤은 우울해

  갑자기 미친 듯이 글을 쓰고 싶을 때가 있다. 그 욕구가 발현되는 시점이 이 누군가에게는 '유레카'라고 외치는 순간일 수도, 어떤 누군가에게는 드디어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확인한 순간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쉽게도 나는 그 욕망의 순간이 대부분 '우울감'을 느꼈을 때 온다. 밤 11시에 겨우 퇴근하면서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을 사서 집에 가자마자 노트북을 켠다거나, 볕이 좋은 일요일 오후에 핸드폰 연락처의 수많은 리스트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선뜻 누군가에게 연락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 홀로 카페에 가서 노트북을 켠다거나 하는 때 말이다.


  오랜 시간 브런치에 어떤 글을 쓰면 좋을지 고민해왔다. 책을 좋아하니 독후감을 써볼까, 취미 부자이니 나의 취미를 소개해볼까, 그것도 아니면 현대문학 작가가 되기 위해 소설을 연재해볼까. 그러다 문득 오늘같이 우울한 날에는 유난히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솟아오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늘은 논문 제출 바로 전날이니까.




그리고 글이라는 것과,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나의 우울감을 한쪽 귀퉁이부터 서서히 밝아지게 만드는 힘이 있다는 것을 안다. 



  나는 스무 살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일기를 써왔다. 물론 삼일씩 밀려서 쓰거나, 일주일 치의 일기를 한 번에 퉁쳐버리는 날도 있었지만 가능하면 빼먹지 않으려고 했다. 일기는 나의 역사라고 생각했고, 일기를 쓰면서 얻는 작지만 확실한 희열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일기는 나의 진부한 일상을 밝게 비췄다.


  사실 나는 누구보다 사람을 좋아하고 외향적인 성격을 가졌다. 대학생 때에는 일주일에 6일을 사람들과 어울려 술을 마셨고, 주말에 약속이 없으면 불안해했으며, 3개의 동아리를 돌아다니며 캠퍼스를 누볐다. 덕분에 그 좋아하는 무한도전도 본방을 챙겨본 적은 없었다.  취업 이후에는 평일에는 회사-집 루틴으로 푹 쉬고, 주말 3일을 내리 달리는 청춘을 살았다. 그리고 결혼해서는 일주일에 네 번씩 집들이를 하며 홈파티를 벌였다. 물론 코로나로 2년 전부터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이렇게 타인을 위해 필요한 에너지는 바로 글. 글을 쓰는 시간 동안 확보된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유지해왔다. 아무래도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일상을 보내다 보면 크고 작은 마찰들이 생기기 마련인데, 그럴 때마다 나는 글을 쓰며 그들을 이해하거나 나 자신을 이해하는 도전을 해왔다. 사람을 좋아하는 만큼 기대가 컸고, 기대가 큰 만큼 실망과 상처를 많이 받았기에 글쓰기는 필수였다. 다행인지 지금까지도 날 우울하게 하는 주변인이 없는 걸 보니 나의 방법이 효과가 있는 듯하다.(관계로 우울해하는 분들께 추천!)


늘 신명 나게 놀 준비가 되어있는 나이지만, 이런 우울한 글쓴이도 내 자아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나는 이런 양극의 성격을 가진 나 자신을 사랑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나의 우울한 시간들을 잘 활용하여 좋은 글들을 많이 쌓고 싶다.


그러니까 오늘은 우울해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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