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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DA Oct 07. 2021

우울감, 강박적인 하루의 루틴

저녁 7시에서 8시 사이에는 반드시 밥을 먹어야해

  사람들과 일상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나에게는 어떤 강박과 같은 하루의 루틴이 있었다. 반드시 오후 7시에서 8시 사이에는 저녁 식사를 해야 한다는 강박, 사무실의 컴퓨터로는 업무 이외의 작업을 해서는 안된다는 강박, 퇴근 후에는 항상 생산성이 있는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강박. 어쩌면 남편과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내 정신건강에 더 도움이 될 수도 있는데, 왠지 그런 일상을 보내고 나면 시간을 낭비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게 문제다. 쉬거나 멍때리는 시간들이 아깝다는 강박이다. 내가 노는 이 시간에도 경쟁자의 책장은 넘어가고 있다는 학창시절 학원 선생님의 지도가 나를 이렇게 만든건 아닐까 싶다. 그렇지만 나도 그 문구가 너무 마음에 들었고, 내가 성실히 학업에 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것은 사실이다.(결과가 어떻든 말이다) 


  목표가 없으면 공허함을 느끼는 것이 나의 가장 고질적인 병이다. 도전적인 과제가 주어지는 상황을 즐기기도 하고, '힘들다', '하기싫다' 하면서도 결국 나는 해낼것이라는 변태적인 믿음도 있다. 혹자는 이런 긍정적인 자기 주문이 생산성을 높인다고 말하기도 하고, 스트레스를 줄여준다고도 하며, 스스로 깨닫지 못한 잠재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고 한다. 맞는 말인것 같기도 하다. 나 스스로도 내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으니까.

 

  그런데 요즘은 그 긍정이 오히려 스트레스로 작용하는 듯 하다. 나는 많은 걸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 자꾸 나의 일상에 루틴을 만들고, 생각보다 능력이 부족한 나의 육체는 나의 생각과 계획을 따라가지 못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그러면서 오는 우울감은 내가 일상에서 받는 모든 스트레스 중에 가장 큰 포션을 차지한다. 나에게 일을 가장 많이 시키는 사람은 회사의 부장님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다. 뭐가 그렇게 바라는 것이 많은지. 


  영어 회화도 잘하고 싶고, 한국 사람이니 한국사 자격증은 있어야 할 것 같고, 학위도 새로 따고 싶고, 운동도 잘하고 싶고, 다이어트도 성공하고 싶으며, 남편과의 행복한 미래계획도 세우고 싶다. 매일 책을 읽으며 생각을 확장하고, 글을 쓰며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싶고, 그 와중에 친구들과 마음도 나누고 싶고, 가족들에게도 사랑을 나눠주고 싶다. 그런데 인간이라고 해서 다들 동시에 이 모든 것들을 할 수 있는건 아니지 않은가.  


  이런 강박. 사실 목표만큼 성실히 시간을 보낸다면 내 인생이 어떻게 달라져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내가 자꾸만 강박적인 루틴을 만드는 이유도 그 가능성 때문이다.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하는 끝도 없는 욕심. 직장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바꾸고, 외모도 더 매력적으로 변하고(노화를 늦추고..), 영어로 자유로운 대화를 하고 싶다는 지적허영심도 채울 수 있고, 누구나 부러워하는 가족을 잘 꾸려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욕심들. 


  어떻게 하면 이 많은 것들을 내려놓거나, 이룰 수 있을까.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많은 일상에 노력을 더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일상을 향유하는 것이 좋을까. 물론 그 중간 어디즈음에서 균형을 찾는 것이 가장 좋겠지. 답도 역시 내 안에 있다. 균형, 강박을 이겨낼 수 있는 유연함을 가져야 한다. 조금씩, 오늘 나의 상황과 에너지를 잘 살펴서 우울하지 않을 수 있는 정도만큼만 목표로 삼아볼까 한다. 


  조금 덜 하면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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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의학에서 이야기하는 우울한 상태란 일시적으로 기분만 저하된 상태를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분 저하와 함께 생각의 내용이 우울해지며 생각의 속도도 느려져 아이디어가 떠오르지도 않고 식욕, 성욕, 수면이 감소하지만 일반적인 경우와 달리 수면 과다나 식욕증가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출처]우울감-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국민건강지식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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