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IDA Oct 09. 2021

우울감, 느린 것을 참지 못할 때

듣기 싫은 단어, 빨리

  나는 다음달 계획을 이번주에 미리 생각해두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2022년 다이어리를 10월 초인 지금 이미 구매해버린걸 보면 말 다했지 뭔가. 일을 할때도 마찬가지다. 1년치의 사업 목표와 예산 집행 계획을 매주 확인해야 하고, 매달 결산해야 불안함이 가신다. 그런데 나의 이런 빠른 속도감이 자칫 다른 사람을 괴롭게 한다. 입사 1년 미만의 후배들은 당장 오늘 일을 쳐내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텐데, 나는 어제 주문한 일이 얼마나 진척되었는지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확인하고 싶다. 


  그리고 오늘 오후, 조급한 마음을 애써 숨긴 채 나름 조심스레 후배에게 업무 경과를 물었다. 후배의 표정은 아차! 업무에 대해 이해조차 못하고 있었다. 겨우 규정집을 출력해놓고 '저는 이러이러해서 이게 맞는거 같긴 한데 맞겠죠?'라며 내게 되묻는다. 나는 그 규정을 몰라서 당신에게 확인하라고 한게 아니다. 당신이 책임지고 끌고갈 업무이기 때문에, 내 입에서 모든걸 배우려하지말고 스스로 학습하는 법을 배우길 기대한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단 하루밖에 당신에게 시간을 주지 않은 나의 조급함일까?


  나는 그만 목소리를 높이고 말았다. 당신을 질책하거나 따져묻지는 않았지만, 규정의 단어 하나하나를 설명하길 요구하며 상대를 압박했다. 더듬더듬 대답하는 당신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고 숨이 가빠졌다. 아차 싶었다. 상대를 압박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은 소통에 세련되지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촌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남은 업무시간 동안 나는 우울했다. 늘 좋은 사람이고 싶었는데 10년차의 권위를 내세워 신입 직원을 궁지에 빠뜨린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원인은 그를 기다려주지 못하는 나의 조급함이라고 생각했다. 일주일만 더 지켜봐줄걸 그랬나 싶었다.


  이런 우울함은 생각보다 자주 느낄 수 있다. 당근마켓에 물건을 팔겠다고 올려놓고 십분에 한번씩 누가 하트를 눌렀나 확인할 때, 직구로 주문한 애플워치가 언제쯤이나 오나 매일 배송상태를 확인할 때, 내 주식은 언제쯤 오르나 종토방을 수시로 들락거릴때, 공용화장실에 급하게 갔는데 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때 우리는 자연스레 조급함을 느낀다. 여유를 가지고 기다려도 되는 그 시간을 지나며 우리는 쉽게 조급함을 느끼고, 그 이슈가 해결되었을 때 문득 머쓱해지는 경험을 해보았으리라. 


  나는 '이것 좀 빨리 처리해줘'라는 식의 말투를 가진 사람을 너무도 싫어한다. 어떻게 다른사람에게 시간을 '빨리' 내어달라고 강요할 수 있는 것인가. 심지어 부탁하는 내용마저 별로 급한 상황이 아니면 그 말을 한 상대에게 화가 나기도 한다. 그 사람은 그 일이 빨리 처리되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저 습관적으로 '빨리'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다.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업무 처리를 할때 마감기한을 초과하는 것을 참지 못하는 조급증을 가진 나에게는 활활 불을 지피는 그 표현!


  그리고 나는 오늘 그 신입 직원에게 불을 지폈다. 미안. 아, 우울해.



-------------------------------------------------------------------


  정신의학에서 이야기하는 우울한 상태란 일시적으로 기분만 저하된 상태를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분 저하와 함께 생각의 내용이 우울해지며 생각의 속도도 느려져 아이디어가 떠오르지도 않고 식욕, 성욕, 수면이 감소하지만 일반적인 경우와 달리 수면 과다나 식욕증가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출처]우울감-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국민건강지식센터


--------------------------------------------------------------------------------------------------------------------------

매거진의 이전글 우울감, 강박적인 하루의 루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