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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킴 Oct 11. 2023

해가 떴습니다.

서른을 넘기고 나서야 내 인생에도 해가 뜨게 되었다.

서른을 맞이하고나서 인생은 확 달라졌다.


나의 조현병은 순탄하게 안정기에 접어들었고, 아버지와 함께 담당교수를 만나러 갈 때에도 예전의 울고불고하던 나날들을 떠올리기 어려웠다. 조현병 치료 방향도 꼬박꼬박 챙겨 먹어야 했던 약에서 '인베가'라는 주사치료제로 바뀌었다. 처음엔 한달에 한번 주사를 맞아야 했다면, 현재는 3달에 한번씩 일년에 4번만 병원에 가서 주사치료를 받게 되었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나처럼 약과 주사에 대한 예후가 좋은 케이스는 그리 많지 않다라는 점이었다. 


텔리비전에 나오는 강력범죄 뉴스의 가해자는 대부분의 치료를 제 때 받지 않은 조현병 환자였다. 그래서 나처럼 치료를 잘 받고 일상생활을 잘 해나가는 환자들도 잠재적인 범죄자 취급을 받으며, 불안정한 존재취급을 당한다는 것이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OECD 국가중 정신과 진료를 받는 환자도, 의사의 수도 최하위권이라고 한다. 아직까지는 우리 사회에 팽배하게 있는 '정신병자'라고 칭해지는 이 비하적인 시선이 문제이지 않을까 싶다. 


삼십대가 되고 나서 안정된 나의 병세만큼 그 동안 하지 못했던 하고싶은것들이 넘쳐나기만 했다. 그 중 공부에 대한 욕심도 있었다. 비록 대학때 전공과는 전혀 다른 분야지만 더 나이가 들기전에 배워보고 싶은 공부였기에 나는 대학원에 진학하여 공부를 하였다. 늦은 나이만큼 열심히 공부해서 결국 나는 예술학 석사학위도 취득하게 되었다. 그러자 정말 새삼스레 주변의 시선이 달라졌다. 미친 사람이 어떻게 어려운 공부를 할 수 있겠냐며 나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보던 시선들도 색안경을 벗고 있는 그대로의 나로 바라봐주기 시작했다. 


22년도 2월 16일 졸업식날을 나는 잊지 못한다. 추운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주름진 아버지의 얼굴이 환하게 피어나는 것은 처음 봤다. 학사모와 졸업장과 학위패를 아빠에게 건네주고 사진을 찍을 때 그 동안의 마음 고생이 눈녹듯이 사그라들었다고 얘기하셨다. 정말 기나긴 시간이었다고 주름진 얼굴은 너를 이만큼 지켜오는데 애간장이 녹아 폭삭 삭았는데 그 보답을 받은것만 같다고 하셨다. 그날 캠퍼스 구석구석을 누비며 수많은 사진을 찍었다. 힘겨웠던 대학교 졸업식과는 정반대로 나 또한 대학원 졸업식을 기쁨충만하게 온전하게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이후 나는 운좋게도 바로 취업을 하게 되었다. 나에게 입사동기라는 것도 생기게 되고, 대학시절 느껴보지 못하였던 사람들과의 어울림에 대한 즐거움 또한 느끼게 되었다. 일도 재밌었고, 나의 핸디캡을 알기에 누구보다도 먼저 출근하여 업무준비를 하고 한번 검토할 것을 두번 세번 검토하며 그렇게 착실하게 사회생활을 하게 되었다. 다만 늘 가슴 한켠에 있는 '조현병'에 대해 누가 알까 조바심나는 마음은 내가 갖고가야할 고질병인 정신병에 대한 무게였다. 


나의 삼십대는 그렇게 순탄하게 잘 흘러가고 있었다. 암흑기였던 10여년의 시간을 견딘자에게 주어지는 달콤한 포상과도 같다고 느낄 정도니까 말이다. 그렇게도 꿈꿔왔던 일반인의 삶을 살게되게 되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나와 마주하게 된다면 내가 '조현병'을 앓고 있는 사람인지 모를정도니까 말이다. 그렇게 나는 '조현병'으로부터 나를 지키고 내 일상과 주변 사람들을 지키게 되었다. 


내가 말하고 싶은것은 한 가지가 있다. 병원치료를 포기하지 말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조현병 환자들의 보호자들은 발병 1~2년간은 치료를 위해 애를 쓰지만 약을 먹을 때는 차도를 보이다가 또 환자의 무분별한 단약으로 악화되는 상태에 지쳐 포기한다고 한다. 나와 같이 약에 대한 예후가 좋은 사람도 10여년의 암흑기라고 불리우는 시간이 있었다. 환자에게 잘 맞는 약을 찾고 상담치료를 받는것은 단 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분명 제각각의 증상도 다르고 그 강도도 다를 것이다. 포기하고 싶고, 숨죽여 우는 보호자들이 많다라는 것을 나는 나의 아버지를 통해 잘 알고 있다. 


한 사람이 정신과 진료를 받게 된다면 그 가족 전체가 상담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한다. 문제가 있어서라기보다는 보호자와 환자가 함께 하다보면 각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 환자에게 받는 상처와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어야하는지 함께 논의를 하게된다. 한 환자의 치료를 돕기 위해 가족 전체와 넓게는 주변인들까지도 치료대상의 직간접 범주에 들어간다고 보면 된다. 단기간에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환자가 약이 맞을수도 있고, 주사치료가 맞을 수도 있고, 환자가 상담치료를 통해 호전될 수도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긴 싸움과도 같을 것이다.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꾸준한 치료를 하다보면 나처럼 일반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모두에게 해가 쨍하게 뜨는 밝은 날이 오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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