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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리킴 Oct 11. 2023

낙인과 갑작스러운 실직

나의 '조현병'에 대한 정신과 진료가 내 발목을 잡았다.

"결국엔 똑같은 정신병자잖아요, 불안해서 어디 고용하겠어요?"


불과 몇달전만해도 앞선 글에서 말하듯 나의 30대는 무난하게 흘러가는줄만 알았다.


대학원 졸업 후 나는 바로 취업을 하게 되었고, 마케팅 부서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부서 인원이 다소 적은편이었기 때문에 기획부터 사업 계약과 진행, 마무리까지 포괄적으로 해야하는 환경이었다. 처음에는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과 염려도 있었지만 일을 배우면 배울수록 재미있었다. 내가 보낸 제안서로 계약이 진행되고 담당자들과 미팅하는것 또한 힘들지만 한 계단 한 계단 성장하는 기분이었다. 또한 회사 동료들과도 사이가 좋아서 매일매일 회사에 출근하는것이 즐거웠다. 노력하는만큼 인정받는다는것이 이리도 기쁘다는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7월의 어느 월요일, 나는 주간회의를 마치고 몸이 너무나도 안 좋았다. 개도 안걸린다는 여름감기에 걸려서 몸살이 나고야 말았던 것이다. 열도 나고 몸의 오한이 들었다. 나는 일정에도 없던 오후반차를 쓰게 되었다. 빨리 병원에 가서 주사맞고 한 숨 푹자고 싶을정도로 너무 힘들었다. 빨리 컨디션을 회복해야하는 이유는 다음날 지방출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편히 쉬질 못하였다.그 당시 공기업과 계약 체결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라 담당자의 쉴틈없는 연락을 받아내야만 하였기 때문이었다. 반차를 썼지만 병원을 다녀왔다는것 외에는 재택근무와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날 오후 7시 대표에게서 연락이 왔다. 내일 지방출장은 다른 직원과 갈테니 신경쓰지 말라는 것이었다. 덧붙여 내일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일방적인 해고통보를 받았다. 나는 순간 벙쪘다. 어떠한 말도 생각이 나질 않았다. 최근 대표와의 면담에서 나의 정신과 치료와 병명에 대해 얘기를 나눴던 것이 문제가 된 것이었을까? 이유를 물었다. 대표는 정신과진료를 받는다는것을 숨긴것과 함께 나의 병명이 '조현병'이라는 것이 해고의 사유라고 했다. 지금 맡고 있는 업무가 회사에 중요업무중 하나인데, 담당자가  '조현병' 치료를 받는다는 점은 언제든지 회사에 막대한 손해를 입힐 수 있는 잠재적인 사람이라는 불안요소이기 때문에 고심끝에 해고를 한다는 것이었다. 진료를 잘 받고 있어도 일반인과는 다른 사고방식을 가질 수 밖에 없다라는게 대표의 생각이었다. 배울만큼 배운 대표의 입에서 한마디가 나왔다. 


"어차피 똑같은 정신병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잖아요, 굳이 내가 그 위험부담을 할 필요가 있습니까?"


나의 '조현병'은 사회적 낙인과도 같은 것이었다. 억울했다. 꼬박꼬박 주사치료도 잘 받고 있고, 나는 업무적으로나 대인관계적으로나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내가 입밖으로 나의 병명과 정신과 치료사실을 얘기하기 전까지는 우수사원이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던 대표였다. 하지만 나의 병명을 알고 난뒤에 사람의 마음은 간사하게도 내가 그 동안 해왔던 모든 것들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그 면담때 내가 나의 정신과 치료와 병명에 대해 말하지 않았더라면 상황은 바뀌었을까? 내가 너무 경솔했던 걸까? 수많은 생각이 뒤엉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 전화를 끝으로 다음날 나는 오전에 사무실 책상을 정리하고 퇴사를 했다. 


갑작스러운 퇴사이자 실직이었다. 


과거 우스갯소리로 정신과 진료가 인사고과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얘기를 나누며 심리상담을 받고 싶어도 받지 못한다는 주변 동료들의 얘기가 번뜩 생각이 났다. 정신질환자들의 진료현황이 근로상에 얼마나 불이익을 주고 있는지 왜 환자들은 숨기기 바쁘고, 회사는 어떤 경위로 본인입으로 말하지 않는 예민한 의료정보에 대해 알고 확인사살을 하며 불이익을 주는 것인지 궁금증과 함께 억울함이 밀려왔다. 나와는 다르게 회사생활을 잘하고 있는 환우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중 자신의 질환을 오픈한 사람들은 극소수라고 본다. 아직까지 주홍글씨와 같은 사회적 낙인을 묵인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나는 퇴시와 함께 통장의 잔고를 확인하였다. 대략적으로 6개월정도 버틸수 있는 생활자금은 된다. 올 12월까지는 빠듯하지만 버틸 수 있다. 급하게 이직을 하려고 애를 쓰기보다는 이 참에 한 숨 돌리고 못해봤던 것들을 해보는 시간을 갖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 비자발적인 퇴사로 인한 실직, 나에게 또 다른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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