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과호흡과 끝없는 환청 속에서 나는 살려고 발버둥 치고 있었다.
새벽 4시에 기상은 고요하다는 말이 무색할만큼 적막하다.
남들은 아직 잠을 청하고 있을 시간에 일어나 부지런히 회사 출근 준비를 했다.
화장하는걸 갑갑해하는 내가 쿠션이라도 찍어바르고 있었으니 사회생활이라는게 얼마나 고단한것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시가 아닌가.
집에서 새벽 4시 45분에 나와 전철역까지 뚜벅뚜벅 걸어간다. 버스조차 다니지 않는 시간이라 집에서 15분에서 늦은 걸음으로는 20분까지 걸리는 거리를 음악을 들으며 걸어갔다. 그리고 그 곳에는 이전의 나와는 다른 부지런히 새벽을 여는,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첫 전철은 새벽 5시 34분이지만 사람들은 전철역에 불이 켜지고, 문이 열리지마자 이른 시간부터 역사안에 삼삼오오 앉아서 자신이 탈 첫 전철을 기다렸다. 그들의 눈에는 피곤함과 고단함도 묻어나지만 총기 또한 어느 누구보다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다. 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 하루를 더 알차게 보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리고 첫 전철에 몸을 싣고 서울 시청역까지 향하는 그 순간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전철을 오르내리고 있었다. 그 중에는 아침에 그 새벽전철 안에서 피곤할법한데도 책을 읽으며 자기계발을 하는 사람들도 더럿 있었다. 다들 치열하고 열심히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과거에 지금 삶이 무료하고 번아웃이 올 때 새벽전철을 타고 퇴근시간 전철을 타라는 말을 들은적이 있다. 그 속에서 사람들의 치열함과 열심히 사는 부지런한 하루를 보라는 것이겠지. 내 스스로 첫차를 타는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저절로 내 삶을 반성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짧지만 길었던 나의 광화문 출근 기간은 일주일이었다. 일주일만에 나는 퇴사를 했다. 내 심신건재를 이유로.
출근하기전 내가 조현병 관련하여 3달에 한번씩 맞던 주사제 용량을 최저용량으로 바꿨다. 그 전단계까지만 해도 무난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괜찮을 줄 알았다. 주사맞은지 거의 한달이 될무렵 약효가 떨어져서였을까? 새로운 환경에 대한 스트레스였을까? 나 자신의 대한 환청이 들리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들리는 모든 말들은 환청임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견디기 힘들었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무너졌으며,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 견디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과호흡을 동료들에게 숨기기 위해 아로마향이 나는 야돔의 페퍼민트향을 코로 깊게 맡으며 숨을 내쉬어 보고, 히노끼향이 나는 핸드크림을 바르고 다시 한번 숨을 골랐다. 환청이 절정으로 향했을 때는 일이 힘들어서도 동료가 힘들어서도 아닌 내 자신이 버거워서 화장실에서 숨죽여 울었다. 그렇게 울고나서도 내 자리에 돌아왔을 때 눈물이 멈추지 않아서 미쳐버리는줄 알았다.
자신이 환청임을 인정하고 있음에도 그것을 겪는일은 언제나 힘이들다.
집에서는 우리집 경제상황도 아픈 아빠도 너무 힘들고 버거웠다. 내 존재가 한 줌의 재로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나약해져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 모든것이 환청과 망각에 의해 이뤄진 것이란걸 자각한다는 거 자체가 더 힘들었는지도 모른다.
폐쇄병동에서 한달만 쉬고 나오고 싶었다. 나를 제외한 모든 요소들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이것은 회피였다. 하지만 나는 나약하지 않다. 회피보다는 부딪쳐서 깨지는 쪽을 택한다. 약을 먹었고, 어느정도 안정을 되찾았다. 아빠는 염려때문에 월요일 대학병원 예약을 하였다.
월요일 나는 병원을 갔고, 내 담당의는 나와 몇 번 진료하진 않았지만 친절하고,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그 분께 내 지금의 상태를 말씀드렸다. 그 때 나의 말의 60%밖에 말은 못했지만 말을 귀기울여 들어줬고, 그에 맞게 처방도 진행해 주었다.
아빠는 나중에 아빠를 제외하고 담당의와 단둘이 얘기를 한 것에 대해 젊은의사에게 실수한 것이라고 얘기했지만 난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실수하면 어떠한가. 지금보다 더 최악은 없다.
다행히 지금은 나의 상태는 많이 호전되었다.
아니 사회활동을 안하고 단절된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나아진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난 언제나 사회의 구성원으로 하나의 몫을 해내고 싶고, 이 병과 균형을 이루며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짧은 일주일 동안 나는 수면의 질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깨달았고, 먹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깨달았다. 또한 약물 치료의 중요성 또한 다시 한번 깨달았다. 평생 주사를 맞아야 한다는 의사선생님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는 계기였다.
나는 정상인이지만, 환자라는 사실을 잊고 싶었도 잊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다.
조현병, 그 병이 나를 옥죄어올 때면 늘 괜찮다고 나를 다독였다.
이번에도 괜찮아질거라고 다독였고, 괜찮아졌다. 이 또한 지나간다. 지나가면 웃고 떠들 수 있는 추억이 된다. 나중에 오늘의 감정이 내 망상이, 내 환청에 하하호호 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