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팥죽을 먹으며, 다가올 새해에 액운이 물러가길 바래본다.
12월이 되면 우리는 으레 성탄절만 생각하고, 크리스마스 연휴만을 생각하기 바쁘다.
하지만 우리의 고유 기념일인 동짓날도 12월에 있다는거 아시는가?
그렇게 밤이 길고 길어 '긴긴밤 동지 섣달'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밤이 길고 온갖 귀신들이 활발한 활동(?)을 벌인다는 날이다. 이 날 우리 조상들은 붉은 동지팥죽과 시루떡을 먹어가며 액운이 붙지 않고 한해를 잘 마무리하고, 다가오는 새해도 무탈하기를 빌었다.
서론이 왜 이렇게 기냐면, 나는 오늘 이 팥죽을 사기위해 아침부터 죽집에 오픈런을 해야했기 때문이었다. 우리집은 매년 동짓날을 챙기는데 ( +동지가 아니더라도 한국의 중요 기념일은 다 챙기는 것 같다) 보통은 동지 전날 시장에 들러서 당일 먹을 죽을 미리사다놓는데, 그 임무를 바로 내가 한다는 것이다. 근데 어제 같은 경우는 개인적인 일로 시간이 바빠서 죽을 사러 시장에 갈 틈이 없었다. 시장에서 파는 동지팥죽은 진짜 전통적인 쌀알이 보이는 소금으로 간한 짭짤하고 뭔가 맹한 팥+쌀+소금만 들어간 맛이다. 나는 그 전통적인 팥죽을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어제 일을 마치고 시장으로 갔을 때는 이미 가게에서 '솔드아웃'이라고 '매진'이라고 말을해서 되돌아가야했다. (+집에서 시장이 가깝지만 추운데 걸어갔다 빈손으로 와서 속상했다.)
집에 돌아와 배달의 민족을 켜서 <본죽>에 주문을 하려고 하니 배달 마감이었다. 동네라 가깝지만 굳이 다시 집밖으로 나가고 싶지는 않았다. 생각해보니 죽집의 오픈시간은 아침 8시 30분이었다. 그래서 내일 아침 일찍 죽을 사러 다녀오자 맘을 먹었다.
그리고 오늘 나는 죽을 사기위해 8시 30분 죽집에서 긴 줄을 섰다. 언론에는 크리스마스 소식만 나와서 동짓날에 대해 잊혀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동지팥죽을 챙겨먹는 사람이 많았다. 죽집은 넓은 홀을 치우고 낱개로 포장된 밑반찬 박스로 가득했고, 오늘은 포장만 가능하며 죽을 나누어서 소포장은 안된다고 공지를 했다. 죽을 기다리는 와중에도 죽집의 전화통은 불이났다. 나는 장작 30분의 기다림 뒤에야 죽을 살 수 있었다.오늘은 동지팥죽이 압도적으로 인기가 많았으나 그에 못지 않게 단팥죽도 인기가 있었다. 죽집 옆에 있는 떡집에서는 죽과 같이 먹을 수 있는 갓지은 시루떡을 연신 만들어 포장하고 있었다. 동짓날 죽집과 떡집의 윈윈 파트너십이었다.
오늘 아침도 날씨가 추웠는데, 집으로 오는 그 짧은 거리에도 죽은 먹기 좋은온도로 식어있었다. 아빠와 단 둘이 죽을 먹으며 올해도 무사히 마무리하고, 새로 시작되는 한해도 액운없이 무탈하기 빌면서 팥죽을 맛있게 먹었다. 아빠에게 들은 정보라 정확하지 않지만, 동짓날에는 동지팥죽과 팥떡(시루떡)을 같이 먹어야 제대로 된 동지를 나는거라고 했다. 남자는 홀수, 여자는 짝수로 팥떡을 먹어야 한다고 했는데 평소 팥을 별로 안 좋아하는 내게 팥죽도 버거운데 팥떡이라니 여간 곤욕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도 어거지로 2개의 팥떡을 먹으며, 내년에는 술술 잘 풀리길 바랄뿐이다.
오늘밤은 길고 길지만 다가올 나날들은 환할 일만 남아있다고 생각하며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