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내보자 상처 1.아무도 믿을수 없어[두 번째]

세상이 내편이 아니라 느끼던 소녀

by jin

학교를 다녀온 후 집으로 걸려온 전화를 반갑게 받았다. 평소와 다르게 더 차분하고 무거운 목소리의 숙모였다.


"수연아 혹시 네가 윤미한테 내 얘기했니?"

순간 나의 호흡과 함께 세상이 멈춘 것 같았다.

변명할 생각조차 떠오르지 않고 저항 없이

"응...."이라고 대답했다.


평소 숙모라면 했을 반응과는 너무도 다르게

"사람 믿지 말아라. 남한테 우리 집안얘기 하지 말고, 사람 없는데서 뒷얘기 하지 말아라 "라는 짧은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통화시간이 30초나 되었을까?

그 순간부터 내가 사는 세상은 달라졌다. 더 이상 세상은 내편이 아닌 것 같았으며 나도 모르는 사이 나를 공격하는 어떤 일이 만들어지고 있을까 늘 두려웠다.


어느 정도였냐면

동생과 동네 슈퍼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 오는 과정에서도 아이스크림 냉장고 문을 끝까지 닫았는지.., 혹시 다 닫지 않아서 가게 주인이 집으로 찾아와 녹은 아이스크림 값을 모두 물어내라 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들이 이어져 괴로웠다.


또는 친구와 통화할 땐 반드시 상대가 전화를 끊은 걸 확인하고 끊었어야 했는데, 수차례 확인하고 끊었어도 혹시나 친구가 내가 먼저 전화를 끊은 걸로 오해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딸깍' 소리를 듣고도 수화기를 내려놓기 전 다시 들어, 전화가 끊어진 '삐- '소리의 수화음을 몇 차례나 확인한 후 전화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어떤 날은 그렇게 하고도 내가 사실을 착각한 걸까 봐 스스로를 못 믿고 불안해하기도 했다.


더 힘들었던 건 그날의 사건을 누구에게도 터 놓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말을 전한 그 친구에게

"너 그일 너희 엄마께 얘기했니? 내가 그 일로 외숙모한테...~~"하며 따져 물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 일이 또 다르게 그 엄마로 하여금 2차로 나를 공격할 빌미가 될까 두려웠다.


그렇게 그 일에 대해서 친구는 까맣게 모른 채로

또 나는 내색하지 않으며 전과 같이 학원을 다니고 얘기하고 어울렸다.

그렇게 내 상처는 속으로 곪고 있었다.


후에 이 일에 대해 얘기하고 진심으로 공감을 받은 건 정신과를 찾아서였다.

정신과를 찾은 건 이미 마흔이 다돼서였던 걸로 기억나는데.. 알다시피 정신과는 상담보다는 약처방 위주이고 이미 문밖에 대기 환자가 많이 있는 상황에 나를 길게 상담해 주긴 힘든 상황이었다.


약의 부작용에 대해 걱정하는 나에게 pms약만 먼저 먹어보자고 권유하는 의사를 붙잡고 주책맞게 눈물을 쏟으며 내 살아온 얘기를 해댔다.


초진환자이기에 물어보는 기본적인 사항에

답에서 벗어나는 방대한 내 얘기를 끊지 못하고 듣느라 의사는 맘이 급해 보였지만,
내가 성격이 바뀐 계기를 듣고는 진심으로 놀라며 "정말 힘드셨겠어요"라고 공감을 해주었다.
그 순간
아... 내가 힘든 것이 타당한 감정이었구나..
나의 괴로움을 인정받은 거 같아 큰 위로가 되었다.



친구에게 한말이 숙모에게 까지 전해진 그 사건 이후 꼬리를 무는 부정적 생각패턴은 가지 치듯 늘어났는데, 그중 하나가 아무리 확인을 해도
내가 나를 믿을 수 없어 끊임없이 재 확인하는 '강박'이었다.

그건 내 사회생활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데 이 사고패턴에서 안전하려면 나는 '완전무결'해야 했다.


회사라는 조직과 업무의 특성상 일의 영역이 서로 연계되는 경우가 많은데 타 부서에서 준 데이터가 잘못되어 내가 만든 보고서가 잘못된 경우라도 질책을 혼자서 받아냈다.

누가 준 데이터가 잘못됐다고 속 시원히 말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스스로도 다 체크하지 못한 잘못이라 여겼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실 말이 안 되는 데 그럼 부서가 왜 나뉘어 있겠나.. 나 혼자 다 일하면 되지!!

그런데... 그래서.. 그렇게 했다. 자산 500억이 넘어가는 회사의 마감을 타 부서에서 온자료를 이중 체크해 가며 완료했다. 누군가 실수를 했더라도 질책에서 자유로울 수 있게


나의 이런 점을 악용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마 책임을 전가해도 안전한 상태인걸 확인했으니 묘한 면죄부가 됐던 건가 싶다. 인간은 상황에 따라 변하고 다양한 면이 있으니.. 그렇게 나의 어여쁜 20대는 메마른 가지처럼 말라갔다.


아주 나중에 내가 사회생활을 하지 않고 주부로 지내면서 '고졸 학력컴플렉스'가 생긴 후에는 그 이유가

내가 고졸이니 대졸자인 지들보다 일을 많이 하고 함부로 대해도 되어서였을까?라고까지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런데 글을 쓰다 보니 이건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았던 문제'가 컸던 것 같다.

아니 그게 원인의 전부였던 것 같다.


다른 한 편으로는 스펙이라 할 것도 없었던 고졸의 어린 나를 채용해 주고 돈도 벌게 해 준 회사들에 감사하다.

그리고 가끔씩 내 모든 걸 다 보여도 걱정 없는 만만한 남편에게 얘기한다.

그때, 그 친구의 사건이 없었다면. 나도 모르게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말로 상처를 주고 살았을까..
참 다행이다...라고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


세상이 나의 편인걸 다시 온전히 느낄 수 있도록 스스로를 사랑하는 일에 힘쓰려 한다.





P.S. 글에 언급된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이 글은 2편입니다. 1편이 궁금하다면 [여기]를 참고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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