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 처음 왔을 때, 도와주신 분이 있었다.
이민 초기, 아무것도 모르던 우리 가족에게 이것저것 알려주시고, 정착을 도와주셨다. 고마운 분이었다.
그런데 그분의 일상은 독특했다. 겨울에도 히터를 잘 틀지 않았다. 외식은 거의 하지 않았다. 모든 소비에 예민했고, 돈 이야기가 나오면 목소리가 달라졌다. 아끼고, 모으고, 또 아꼈다.
동화 속 스크루지 같다고 생각했다.
그분은 일을 많이 하셨다. 돈을 벌고, 모으고, 불렸다. 언제 쓸지 모르겠지만 계속 모았다. 쓰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늘 다음을 위해 아꼈다.
그러다 어느 날, 췌장암 진단을 받으셨다.
불과 몇 개월 만에 돌아가셨다.
남은 건 통장이었다.
그분이 평생 아끼고 모은 돈은, 자연스럽게 자녀들에게 넘어갔다. 장례가 끝나고, 일상이 돌아오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분이 얼마나 아끼며 살았는지는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게 되었다.
가끔 그분이 떠오른다. 식당에서 메뉴판을 보며 가격부터 따지던 표정. 차가운 집에서 이불을 끌어안고 버티던 겨울. 그 사람은 사는 동안 무엇을 누렸을까. 돈을 벌고 모으고 아끼며 살았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답을 모르겠다. 다만, 그 장면들이 오래 남았다.
그 일을 잊을 만큼 시간이 지났고, 나도 자산을 쌓기 시작했다.
부동산을 사고, 모기지를 갚고, 연금을 쌓고. 숫자가 올라가는 게 좋았다. 그래프가 우상향하는 게 뿌듯했다.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면 60세의 내 자산은 내가 상상한 것보다 컸다.
기분이 좋았다. 잘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숫자를 보다가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만약 61세에 죽는다면?
그 숫자는 누구의 것이 되는 걸까. 내가 팍팍하게 버틴 시간은 어디로 가는 걸까. 외식을 아끼고, 여행을 미루고, 다음을 위해 참았던 날들은?
스크루지 아저씨가 떠올랐다.
나도 같은 길을 걷고 있는 건 아닌가.
그날 이후, 질문이 바뀌었다.
"얼마나 모을 것인가"가 아니라, "모은 돈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부자가 되는 건 중요하다. 하지만 부자로 죽는 건 의미가 없다. 숫자를 남기는 게 아니라, 숫자로 삶을 사는 것. 그게 진짜 목적이어야 했다.
나는 부자로 죽지 않기로 했다.
부자로 살기로 했다.
.
그런데, 언제부터 부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