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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렉사이다 Jan 23. 2019

뜻밖의 산티아고 순례길 (1)

여행의 시작, 21 Jan 2019

새해가 되면서 책을 많이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올해의 첫책은 ‘걷는 사람, 하정우’였다. 술술 읽혀져 내려가는 덕에 금새 마지막장을 덮으며 어디에서든 무작정 걷고 싶다는 욕구가 치밀어 올랐다.


인도 생활을 마무리하려는 계획과 충동적 욕구가 만나 찾은 장소가 바로 산티아고 순례길이였다. 계절적으로 최선은 아닌데다 여러 다른 옵션도 있었지만 왠지 마음이 끌려 결정해버렸다. 1월 21일 월요일부터 2월 5일까지 16일간  스페인 레온에서 산티아고까지 약 300km를 걷는 코스다. 주어진 시간 상 프랑스 생장에서 출발하는 풀코스 800km는 미래의 나에게 남겨두는 것으로.


여행계획을 공유하던차에 인도 생활을 마무리하고 한국에서 인싸라이프를 한창 즐기고 있는 에이미가 작은 관심을 보이길래 함께하자 꼬셨고, 얼마안가 에이민 곧 나와 산티아고 여정을 함께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결정하고나니 모든 것이 쉽게 결정되었다. 에이미와 만나기로 한 곳은 스페인 마드리드, 도착시간을 비슷하게 맞춰서 각자 발권을 하고 도착한날 마드리드에서 1박할 호텔을 예약했다. 구글링이며 네이버 카페를 뒤져가면서 꼭 필요한 물건을 리스트업했다. 주변에서 이미 산티아고를 다녀온 건너 지인들과 트레킹 좀 한다는 사람들에게서도 조언을 구했다. 한국에서 조달하기 쉬운 것은 에이미가 사오고, 인도에서 싸게 구할 수 있는 것은 내 쪽에서 준비했다. 예를 들면 베드버그 스프레이 같은 것... 그리고  프랑스 생장에서 출발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데카트론이라는 스포츠매장이 어이없게도 회사 근처 후다시티에도 있다고 빈센트가 귀뜸을 해주었다 덕분에 가벼운 침낭, 등산 스틱, 배낭, 등산화를 저렴하게 구매했다.


출발 월요일 주말에는 알렉스(원)와 함께 우다이푸르에 1박 2일로 다녀왔다. 다시 델리에 도착한건 일요일 밤, 기다리고 있던 셀비와 스카이캐슬과 더팬을 보고 열두시가 넘어 방으로 들어갔다. 진작에 적어둔 리스트를 보고 짐을 싸기 시작했다. 겨울이라 배낭이동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어서 진짜 이고지고 가야하기 때문에 꼭 필요한 것만 챙겨넣었다. 넉넉할줄 알았던 30리터짜리 가방이 꽉 찼다. 무게를 재니 7kg쯤. 적당한가 무거운가 감이 있을리 없다. 시계를 보니 한시간이 훌쩍 지났다. 떠나기전 자잘하게 처리할 일이 남았지만 우선 잠을 자기로 했다.




예전과 달리 잠을 많이 못자도 새벽에 쉽게 깨는데 아무래도 피곤했는지 연속으로 울리는 알람에도 눈이 쉽게 떠지지 않는다. 비행기는 아침 9시 40분. 아침 교통체증을 피하기 위해 6시 30분에는 출발해야하는데 눈을 뜬건 6시였다. 부랴부랴 일들을 처리하고 어제밤에 준비해둔 옷을 입었다. 오랜만에 입은 등산복이 어색함과 설레임을 동시에 가져왔다.


배웅을 위해 일찍일어나 기다려준 알렉스와 인사를 하고 우버를 탔다. 다행히 막힘없이 공항에 도착했는데 터미널이 뭔가 이상하다? 운전기사 폰에 찍힌 주소지가 터미널1이었다. (국제선은 터미널3) 정신없는 와중에 목적지를 잘못 입력한 탓이다. 운전기사에게 미안하다고 하고 목적지를 터미널3로 업데이트했다. 힌디어로 뭐라고 말했지만 알아들을리없으니 연달아 쏘리와 터미널3만 외칠뿐이었다.


2주가 넘게 책임져야할 무게


결국 20분을 넘게 걸려 제대로된 도착지에 도착했다. 비행기는 에밀레이트항공, 두바이에서 경유하는 일정이었다. 겨울시즌이라 그런지 서양관광객들이 많이 보인다. 체크인을 하고 배낭을 체크인하니 7.4kg하고 저울에 정확히 찍혔다. 앞으로 2주간 내가 짊어져야할 무게라고 생각하니 숫자가 크게 다가왔다. 티켓을 확인하니 1번 게이트였다. 개이득. 델리공항은 좌우로 길게 뻗어있는 형태여서 게이트가 잘못걸리면 10분이상 부지런히 걸어가야한다. 1번은 이미그레이션을 통과해 면세점만 지나 가장 가까운 게이트였다. 잠시 면세점을 둘러보고 전광판을 보는데 왠일인지 제시간에 게이트가 오픈했다. 딱히 더 볼 것도 없어 게이트로 이동했다.


비행기 탑승전 인도에 있는 지인들에게 인사를 하고 은행업무를 마무리하다가 가장 마지막에 탑승했다.


탑승하니 역시 돈을 조금 더 주고 에밀레이트 항공을 선택한 것이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타본 비행기중에 가장 넓은 스크린으로 서비스를 제공한다. 식사도 꽤 맛있는 편이고!


마블카테고리가 따로 있는 클라스!


3시간을 날아 두바이에 도착했다. 3시간 경유였는데 도착해서 내리고 보니 다음 비행까지 2시간이 채 남지 않았다. 게이트 근처에서 맥주를 한잔하며 책을 읽었다. 이번 여행의 또다른 목표중에 하나다. 바로 책을 많이 읽는 것.


시간는 후딱 지나 보딩시간이 다가왔다. 놀랍게도 1분도 늦지 않고 보딩이 시작되었다. (인도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 탑승하고 보니 비행기 안은 텅텅 비었다. 내가 지정해놓은 창가쪽 3개 좌석도 나를 빼곤 아무도 타지 않았다.  마드리드로 향하는 8시간 30분동안 밥먹을때를 빼놓고는 내내 길게 누워 편하게 갔다.


시간은 꾸역꾸역 흘러 비행기는 마드리드에 도착했다. 비행기 문이 열리길 기다리는데 에이미로부터 도착했다는 카톡이 온다. (작년 스페인에 온적이 있어서 와이파이가 자동 연결되었던 것!) 터미널이 달라 내가 짐찾는 동안 에이미가 내가 있는 터미널로 오기로 했다.


빠르게 나와 짐을 기다리는데 벨트위에 짐이 몇개 없다. 20분이 넘는 시간 동안 찔끔찔끔 나왔고 마지막 짐이 나오는 시간까지도 내 배낭은 보이지 않았다. 둘러보니 짐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나 혼자 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바로 뒤에 있는 항공사 수화물 창구로 가니 대번에 종이를 한장 꺼낸다. 거기에는 내이름이 적혀있었다.


이땐 몰랐지...


그렇다. 나의 짐이 두바이에서 나와 함께 오지 못한것이다. 지금까지 한번도 겪여보지 않았던 블로그에서나 봤던 일이 나에게 일어난 것이다. 순간 머리를 감싸안고 입에서는 욕이 튀어나왔다. ‘아 xx 망했다.’ 굳이 한국어로 망했다라고 말을 했어도 이미 표정으로 나의 대혼동이 담당자에게 전해졌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미안한 표정으로 짐은 내일 오후 2시에 두바이에서 올거고, 오후에 전달이 된다고 했다. 몇시쯤이냐고 물으니 이른 저녁쯤 될껀데 정확한 시간은 알려줄 수 없덴다. 장난합니까. 짐을 전부 부쳤으니 내가 든건 지갑이랑 여권정도인데다가 순례자길을 걸으러 왔으니 내일 아침에 떠나야한다고 했지만 짐이 그렇다고 빨리 올 수 있는 방법도 없다. 내민 서류에 마드리드에서 묵을 주소를 적었다. 가방의 생김새를 물어보는데 이런일이 있을려고 한건지 마침 델리 공항에서 인스타에 올리겠다고 찍은 배낭 사진을 보여줬다. 다행이라고 해야하는건가. 서류작성을 다 마치고 나니 옆에 있던 다른 담당자가 나에게 비즈니스인지 퍼스트인지 잠옷이 든 커다란 어메니티 파우치를 건넸다. 힘없이 땡큐라고 답하고는 한창 기다리고 에이미를 만나러 밖으로 나갔다.


다음 이야기

https://brunch.co.kr/@everythingisgag/213


에이미의 까미노 이야기

https://m.blog.naver.com/owovv/22144875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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