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진짜 1일차 트레킹 23 Jan 2019
레온까지 기차를 탈 수 있는 Madrid Chamartin 역에 도착했다. 사전에 앱에서 티켓팅을 할 수도 있었지만 앱에서 왠 모르는 값을 자꾸 입력하라기에 빠르게 포기하고 역에서 예매를 했다. 겨울 비수기라 굳이 먼저 해놓을 필요도 없었다.
레온행 기차 오후 6시 20분, 40여분 시간이 남아 에이민 피자 한조각과 음료로 허기를 채웠다. 음료는 오렌지 분말가루로 맛을 낸 탄산음료였다. 딱 기차역에서 먹을 수 있는 맛.
14번 플랫폼으로 시간을 맞춰 내려갔다. 기차가 이미 대기중이어서 지정된 좌석에 앉았다. 레온 도착 시간은 8시 40분. 그 시간동안 에이미는 그림을 그렸고 난 책을 읽어나갔다. 기차가 제 속도를 못내고 꾸물거리는가 싶더니 도착지 레온에는 9시가 넘어 도착했다.
오늘 묵을 숙소까지는 대략 걸어서 13분, 폰이 안내하는데로 따라갔다. 피곤하기도 한기가 느껴져 발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도착한 우리의 첫번째 알바르게(순례자 숙소를 이르는 말)는 크고 깔끔했다. 입구에서 체크인을 하고 순례자 여권도 만들고 까미노의 상징인 커다란 가리비도 샀다. 키를 받아 올라간 숙소는 생각보다 넓었고(마드리드에서 묵었던 호텔) 방안에 화장실과 욕실이 별도로 있었다.
짐을 풀고 인도와 한국에서 서로 부탁한 짐을 나눠 가졌다. 충분하게 뜨끈한 물에 샤워를 하고 나니 노곤해져 곧 잠에 들었다.
새벽 4시. 눈이 떠졌다. 인도 시간 아침 8시 30분. 보통 시차때문에 피곤하진 않는데 몸이 시간을 기억하고 있다. 아침은 7시 30분이 되어야 먹을 수 있는데 벌써부터 배가 고프다. 설잠을 자다 유투브를 보다 책을 읽다보니 밥을 먹을 시간이 되었다. 30분이 채되기도 전에 식당으로 내려갔다. 기다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이 1등으로 밥을 먹었다. 호텔식 조식에 비하면 간소하지만 있을 것은 다 있다. 밥을 먹는 동안 식당에서 본 사람은 2명뿐이었다. 겨울이라 진짜 사람이 없나보다 하고 짐을 챙기러 다시 방으로 올라갔다. 짐을 싸고 옷을 갖춰 입는 사이 창문밖으로 환호성에 가까운 기합소리가 들렸다. 창문 밖으로 흘끗 내어다본 에이미가 20명 쯤 그룹이 출발하는 것 같다고 했다. 우리도 곧 준비를 마춰 8시 30분쯤 출발했다. 7키로의 배낭을 메고 있지만 발걸음이 가벼워 설레였고 파이팅이 넘쳤다.
길을 따라 가기전 레온대성당과 가우디가 지었다는 은행건물을 보기로 했다. 바르셀로나에서 실컷 본 가우디 건물같지 않고 저평범해보였다. 건물 안쪽은 달랐으려나 하고는 곧 레온대성당으로 발길을 옮겼다. 갈길이 바빴으니 성당을 행해 인사를 하고 곧 노란색 화살표와 조개모양을 따라 방향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골목 사이를 지나 큰길로 접어들었을때 할아버지 한명이 인사를 해온다. 스페니쉬라고는 올라! 그라시아스밖에 모르는 나와달리 몇개의 문장과 단어를 구사할 수 있는 에이미와 대화를 시작한다. 그래도 일어날 수 있는 대화는 몇개 없다. 어디서왔니, 남쪽? 북쪽? 이름이 뭐니? 정도. 할어버지의 이름은 호세이고 나와 에이미 이름을 듣더니 ‘아 애미~ 아레싸~’ 라고 했다.
걸어가던 길 성당앞에 순례자 동상이었었는데 그 동상은 미니크로스백를 들고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할어버지가 신발과 가방을 자꾸 치면서 뭐라고 하는데 결국 눈치껏 순례자의 가방은 이렇게 작고 슬리퍼를 신었는데 너희는 큰 배낭과 단단한 등산화를 신고 있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제 그만 이야기하고 싶어질때쯤 (사실 대화가 거의 되지 않음) 다행히 한 마트 앞에서 호세와 헤어졌다. 호세는 우리의 이름을 불러주며 손등에 뽀뽀(왜....)를 했다.
걷다보니 이제 레온을 빠져나온듯 길가 주변에는 띄엄띄엄 상가가 있었다. 얼마 걷지 않았다고 느꼈을 때쯤 도착한 도시, 우리는 다음 도시에서 쉬기로 하고 순례자 여권에 도장만 받기로 했다. 어디서 받아야할지 몰라서 이 도시에 있는 알베르게에 찾아갔다. 코스에서 벗어나 10분쯤 걸어갔는데 도장이 못생겨서(?) 실망했다. 다시 돌아나와 코스로 다시 진입했다.
춥다고 했는데 온도는 영상 9도, 등에 서서히 땀이 차기 시작했다. 7km를 넘게 걸었으니 도장을 받고 잠시 카페에서 딱 30분만 쉬기로 했다. 길을 걸으며 식당을 스쳐지나가는데 이른 시간인데도 배가 슬슬 고픈것 같았다. 우선 대성당에 들렀는데! 문이며 교회장식이 무척 그로테스크 한것이 매우 근사했다. 문을 조심스럽게 들어가니 하얀색 옷을 입은 신부님이 계셨다. 손으로 도장찍는 흉내를 내니 들어오라고 한다. 신부님이 뭐라고 하는데 나는 알아들을 수 없어서 헿헿과 그라시아스만 반복했고 에이미는 스몰토크의 강자답게 그 와중에 대화를 이어갔다. 나중에 물어보니 날씨 이야기였다고 했다. 도장을 받고 나와 조금 전 검색해둔 레스토랑으로 기쁜 발걸음으로 이동했다.
자리를 잡고 가방을 내려놓으니 차가운 공기에 닿은 등이 빠르게 서늘해져서 소름이 돋았다. 어이구 소리를 내며 자리에 앉아서 맥주 한잔과 오렌지 주스를 시켰다. 식사는 메뉴판에 있는 그림을 가르쳤더니 스페니쉬로 한창 이야기 하는데 뭔소린지 모르겠어서 계속 그림을 가르치니 주방으로 사라졌다. 제대로 시킨거겠지?
맥주를 다 마실때쯤 사장님이 양손에 엄청난 사이즈의 접시를 들고 나타났다. 우리는 순간 움찔했고 웃음을 터트렸다. 족히 4인분은 되보였기 때문. 아마 아까 말한 스페니쉬가 양이 엄청나다란 의미였던건가!?
하나는 얇은 스테이크 였고 하나는 얇은 소고기와 치즈를 같이 튀긴 돈까스였다. 고기를 먹는데 와인이 빠지면 안되니 와인 한잔을 시켰는데 한병이 나왔다. 뭐, 마셔버리지 하는 마음으로 기쁜 마음(?)으로 받아드렸다. 30분에 가벼운 커피한잔이 예정이었던 우리는 결국 2시간동안 고기와 와인을 먹고 마셨다. 순례자 아니고 술례자...
오후 2시가 되어서야 우리는 다시 길 위에 올라섰다. 오늘 목표 도시인 산 마르틴 데 까미노까지 20km쯤 남아있었다. 배가 부르니 더 피곤한 것 같다. 걸으면서 내일부터는 절대 점심을 배부르게 먹지 말자고 다짐했다. 딱히 랜드마크가 있는것도 아니여서 야무지게 도장을 챙갸야하는 마음 없이 그대로 스쳐지나갔다.
스쳐지나갔는지도 몰랐다. 지나가면서 와 산미구엘이다했는데 난 맥주 이름인줄 알았지.
고속도로 옆길을 따라 걷고 또 걸었다. 커다란 트럭이
나갈때마다 몸이 휘청거린다. 끝없이 길이 뻗어있으니 내가 가고 있는건지 지나가는 가고 있는 건지 혼동스럽다. 저기까지만 가야지하고 삼을 만한 것도 없어서 반복적으로 나는 스틱소리에 맞춰서 걷기만 했다. 빠라모에 도착해서도 4킬로는 더 가야 오늘 목적지로 삼은 산 마르틴에 도착하는데 엄두가 나지 않는다.
결국 우리는 빠라모에 머물기로 결정했다. 해가 지기 시작하는 걸 보니 결정을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빠라모에서 묵을 수 있는 숙소가 몇개 안되었다. 걸어가면서 상태를 보기로 했는데 결국 공립 알베르게 앞까지 걸어오게 되었다. 밖에서 봤을땐 겨울이라 문이 열리지 않은건지 걱정이 좀 되었는데 다행히 사람이 있었다. 숨을 몰아 쉬는 나를 보고 씨익 웃더니 장부를 펼친다. 에이미와 나의 이름을 적는데 그렇다. 이 알베르게에 오늘 도착한 사람이 우리뿐이었다.
배정받은 방은 4인실이였고 문 위쪽으로 열려져있어 참 바람이 방으로 지속적으로 들어왔다. 방안에는 작은 라지에이터 뿐이라 도움이 될 것 같진 않았다. 아무래도 오늘 밤은 아주 춥게 보낼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한 시간쯤 뒤에 알베르게를 지키고 계셨던 분은 몇가지 안내 사항을 알려주고 퇴근했다. 방안에서 모포를 두루고 있어도 너무 추워 식당 쪽에 난로 앞에 방 에이미와 붙어 있다가 오후 8시가 되기도 전에 눈이 감겨 다시 추운 방으로 돌아가 몸을 뉘였다.
오늘의 숙소
1. 알베르게 샌프란시스코
기대보다 좋았던 2인실, 단촐했지만 든든한 조식
2. 공립 알베르게, 비야당고스 델 빠라모
예약없이 방문해서 현장 결제 인당 7유로
너무 추웠다. 샤워도 포기
오늘의 식당
산투라리오 레스토랑
맛도 양도 엄청나고, 거기에 저렴한 가격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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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미의 까미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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