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노 2일차, 레온-빠라모-아스또르가 총 50km
밤새 추워 몇번을 뒤척였다. 에이미가 한국에서 가져온 핫팩을 요리조리 두면서 다시 잠이 들었다. 새벽 5시쯤엔 이미 정신이 들었고 온몸에 스며든 근육통에 낑낑 거리다가 배가 고파 6시엔 완전히 일어났다. 어제 밤 10시에 자동으로 꺼진 난로는 다시 키려다 실패하고 추운 몸을 녹이기 위해 라면을 끓였다.
역시, 역시 너무 맛있다는 말을 연발하면서 문자 그대로 국물 한방울 남기지 않고 들이켰다. 추운 곳에서 쉬어서 그런지 잠으로 피로가 충분히 풀리지 않은 것 같아 오늘은 아스또르가의 호텔을 예약했다. 원래 2일차 목적지니까 어제 덜 걸은 몫까지 더 걸어야 한다. 준비를 마치고 해가 뜨길 기다렸다.
일자로 쭉 뻗는 도로 옆 길은 너무 심심하고 신체적으로도 더 힘들다고 느껴지는 것 같다. 게다가 거름 냄새가 진동을 하고 길에도 여기저기 거름이 떨어져있어 요리조리 피하며 걸어야 했다. 아주 저 멀리 기괴하게 생긴 탑이 보이는데 걸어도 걸어도 가까워지지 않는 것 같다. 어제 이길까지 걸었을 생각을 하니 아찔하다.
도착하고 보니 도장을 받으려는 공립 알베르게도 문을 닫았다. 잠깐 벤치에 앉아 전날 남은 돈까스로 만든 샌드위치를 먹었다. 남은 물을 다 마시고 마을을 떠나기전에 물을 사고 싶었지만, 물을 살 곳고 마땅치 않아 다음 마을로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작은 마을을 빠져나가자 곧 아주 곧는 일자길이 나온다. 걷다보면 길은 끝나지만 이런 길은 너무 괴롭다. 저 멀리 이상하게 생긴 나무나 띄엄띄엄있는 이정표를 목표로 세우고 걷고 또 걸었다. 한창을 걷다 마을 쪽으로 길 방향이 바뀌었다.
바람을 타고 옅은 거름냄새가 났지만 시야에 걸리는데 없이 펼쳐지는 전원 풍경에 발걸음이 힘이 실렸다. 이쁘다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입밖으로 새어나왔다. 산 마르틴 보다는 큰 마을처럼 보였는데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어제 오늘 걸으면서 우리를 뺀 순례자들을 보지 못해서 에이미가 아침부터 오늘은 꼭 순례자를 봤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저 골목 끝 배낭을 밴 남자가 두리번 거리는 것을 발견했다. 나와 에이미는 마치 지인을 만난 것처럼 방가워 소리를 쳤다.(물론 그에게 우리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다리를 건너 레스토랑을 찾았다. 슬슬 배고플 시간이었다.
우리가 멈춰선 곳에서 가장 가까운 레스토랑으로 들어가니 아까 골목끝에서 본 남자와 (알고보니) 레온 속소에서 잠깐 마주친 브라질 커플과 한국인 남자가 있었다. 한명도 못만나다가 떼로(?) 한꺼번에 만난 것이다!
나는 맥주와 샐러드를 에이미는 생오렌지주스와 버거를 먹었다. 한시간 쯤 쉬는 사이 브라질 커플과 한국인 남자는 떠났다. 그들도 오늘의 목적지는 아스또르가로 같았다. 홀로 있던 남자는 프랑스에서 온 존이였고 자연스럽게 대화가 길어졌다. 식사을 먼저 마친 우리는 식사를 존보다 먼저 나섰다.
슈퍼에서 물을 한통사서 방향을 잡고 길을 나서는데 저 앞에 존이 식수대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아주 자연스럽게 존과 같이 걷기 시작했다. 오늘 코스가 두가지인데 하나는 도로를 따라 쭉 산 후스또 데 라베가까지 가는 길과 중간에 작은 마을들을 거쳐 가는 방법이다.
존은 도로따라 걷는 것은 싫다며 마을을 통과하며 걷는다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정확하게 어떤 길러 갈지 결정한 것은 아니었는데 갈림길에서 잠깐 고민하다 존과 같은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질문이 많은 존과 이러저러한 대화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 초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에이이는 도로에 털썩 주저 앉았다.
곧 자리에서 털고 일어나 출발했다. 다음 동네까지도 약 한시간정도 걸으면 되는 곳이었다. 지금까지의 길과는 약간 다르게 넓디넓은 평야 사이를 가로지르는 길이었다.
커다란 언덕을 하나 넘고나니 저 아래 마을이 보인다. 그리고 아까 점심때 먼저 출발한 브라질 커플도 보였다. 마을로 들어가 눈에 보이는 벤치에 앉아 쉬었다. 여기서도 다음 도시까지 도로를 따라 가는 방법과 그대로 평야 사이의 길을 가는 통로가 있는데, 이왕 여기까지 온 거 그대로 가기로 했다. 도로를 따라 걷는 것은 너무 지겹기도 하고.
2시간 정도 걸아야 도오스삐딸 데 오르비고에서 도로를 따라 쭉 직진했다면 바로 도착했을 도시 산 후스또 라베가를 방향을 잡고 걷는데 시작부터 완만한 언덕길이 나온다. 쉬엄쉬엄 쉬지 않고 걸어올라가는데 거름냄새가 느껴져 고개를 들아보니 젖소 농장이 있었다.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은 아기젖소랑 인사도 나누었다.
빨간 흙길을 따라 오르락 내리락 걷다보니 어느새 발뒤축이 시큰하다. 시계를 보니 약시나 한시간쯤 걸었다. 눈 앞에 보이는 언덕을 다 오르면 쉬자고 할참인데 그 언덕을 다 오르니 왼쪽으로 또 언덕이 이어져있다. 이왕이면 다 오르고 쉬지하고 숨을 크게 들이 마시고 다리 힘을 쥐어짜내 언덕위로 올라갔다.
바닥에 주저 앉아 5분쯤 쉬었을까. 존은 먼저 출발하겠다고 나섰다. 아스토르가에 숙소를 아직 잡지 않아 빠르게 가고 싶다고 했다. (어디선가) 다시 보자, 인사를 나누고 그는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우리는 조금 더 쉬다가 내리막길로 내려갔다. 다시 길게 이어진 평야와 포도밭 길의 언덕을 오르락 걷다가 중간중간 누군가 오와열을 맞춰 심어놓은 자작나무들을 보며 감탄했다. 에이미가 틀어놓은 음악에 맞추어 속도를 맞추어 걸어나갔다. 길게 뻗은 길이 끝나자 그 끝에 십자가가 있었다. 사진 속에서 본 십자가. 그 뒤 언덕 아래로 산 후스토 데 라 베가와 그 뒤 최종 목적지 아스또르가가 보였다.
잠시 돌로 만든 의자에서 숨을 돌렸다. 아직 한시간 반 정도 걸어야 하지만 저 멀리 도착지가 보이니 마치 거의 다 온 것같은 기분이 든다. 풍경이 또 아름다워 구경하다 화이팅을 크게 외치고 마을을 향해 걸어내려갔다.
물을 사고 오늘의 마지막 목표 도시를 향해 걷는다. 막힘없이 뚫려진 동네라 노랑, 주황, 파랑, 분홍, 보라로 뒤섞인 노을이 파노라마 처럼 펄쳐진다. 시시각각 매순간 너무 나름다워서 가다가 자꾸만 길을 멈추게 된다. 이런 풍경을 보는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지 부러워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을 계속 보고 자라면 행복의 기준이 왠지 다를것도 같다.
하늘은 더욱더 아름답게 바뀌고 있는데 바로 눈앞일 것 같은 아스또르가는 가까워지지 않는 것 같다. 길을 바꿔 밭 옆으로 한창 걸어가는데 거름을 뿌린지 알마되지 않은건지 냄새가 심각하게 고약했다. 빠른 걸음으로 빠져나가려 해도 발의 속도는 나의 마음의 속도와 달랐다.
육교를 넘고 도시 앞에 바로 도착했다. 마음을 놓고 있는데 호텔로 향하는 길에 아찔한 언덕길이 있다. 꽤 높은 경사을 따라 한걸음씩 움직이는데 이번엔 특히 종아리 근육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뒤편에서는 에이미의 큰 한숨소리도 들렸다.
이미 완전한 밤이 되어서야 우리는 도착했다. 환호할 힘도 없이 호텔로 들어서자마자 깔끔하고 정돈된 인테리어가 눈에 들어온다. 키를 받고 순례자 여권에 도장을 받고 방으로 올라가서 우리는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오늘 이곳에서 호텔을 잡은 것은 최고의 선택이라고 했다. 뜨거운 물줄기로 샤워를 하고나니 온몸이 비명을 지른다. 바닥에 발을 내딛을때마다 아픔이 몰려온다. 누가 발바닥을 마구 때린 것 같았다. 에이미는 특히 발바닥에 물집파티까지 열려 더 아팠다. 우리는 오늘 밤은 밖에 나갈 수 없겠다고 판단하고는 룸서비스로 음식 몇개와 와인 1병을 시켰다.
음식을 먹으며, 오늘 하루에 대해서 이야기 나눴다. 오늘 하루 호텔을 예약하지 않았다면 절대 아스또르가까지 29km를 걷지 못했을 것, 일주일간은 다시 이렇게 무리해서 걷지 말 것, 내일 아침 일어나서 상태를 보고 다음 목적 도시를 정하자고 했다.
오늘의 숙소
호텔 스파 비아 데 라 플라타
가격대비 너무나 시설도 친절함도 조식까지 완벽!!!
오늘의 식당
1. 자벨레스토랑
생오렌지주스가 참 맛있었고, 맛은 평균평균!
2. 호텔 스파 비아 데 라 플라타 룸서비스
힘들었으니까 먹었다. 스프는 뜨끈해서 먹었고. 홈메이드
케이크는 괜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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