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인도에서 뭐하니 시리즈
힌디어 공부를 시작한 제시가 가족호칭을 배웠다고 했다. 삼촌이 힌디어로 마마-인데 그걸 설명하면서 힌디샘이 영화를 추천했다고 했다. 제목은 카쉬미르의 소녀.
간단한 줄거리는 이렇다.
말을 하지 못하는 파키스탄 소녀인 '무니'의 병을 고치기 위해 소녀의 엄마는 그녀를 데리고 델리의 성지(하즈라트 니자무딘 울리야, 이슬람 신비주의 수피 성자)을 찾는다. 기차를 타고 파키스탄에서 델리를 방문한 소녀와 엄마는 사원에서 기도(?)를 올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를 탄다. 하지만 소녀는 엄마가 잠든사이에 잠깐 고장으로 멈춘 기차에서 내리게 되고, 그렇게 소녀는 인도로 엄마는 파키스탄으로 돌아가 된다. 엄마를 잃은 소녀는 도착한 델리에서 마음 착한 파완을 만나게 된다. 파완은 말을 못하는 소녀를 집에서 돌보며 지내다가 소녀가 파키스타니인걸 알게 된 후 소녀를 집(파키스탄)으로 데려다주는 이야기이다.
듣자하니 이런 신파가 없다. 분명히 슬플 것이고, 마지막엔 재회가 있을 것이고 그사이에 안타까운 순간들이 계속 있겠지. 하아- 내 스타일과 거리가 멀겠다 싶었다. 슬픈 영화는 싫다아.
어느 주말인가 사이버시티 스타벅스에서 나는 책을 읽고 제시는 카쉬미르의 소녀를 보기 시작했다. 영화 초반을 본 제시가 아무래도 이 영화는 같이 봐야할 것 같다며 과감하게 영상을 멈췄다. 그리고 어느날 저녁 다 같이 모여있을 때 카쉬미르의 소녀를 틀었다.
2시간 40분의 러닝타임.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영화는 절대, 내가 상상했던 슬픈 이야기가 아니었다. 정확히는 이야기 자체는 슬플 수 있지만 이야기를 풀어내는 전개는 결코 슬프지 않다. 예전에 본 인도영화 ‘내이름칸'이나 ‘세얼간이' 에서 보았던것처럼 역시나 난데 없이 노래와 춤이 나오고 그 특유의 뻔뻔스럽고 잔망스러운 유머가 감동을 느낄 새 없이 파고 든다. 그리고 예상치도 않게 클라멘타인급 액션이 중간중간 튀어나오는데 ‘읔커컥겈걱꺾’하면서 폐가 튀어나도록 웃을 수 밖에 없었다(클라멘타인은 보지 않았지만, 분명 그런 느낌의 액션임). 감동하려고 하면 그새를 못참고 부담스러운 화면으로 가득 채워주는 것도 매력이다. 예를 들면, 극적인 순간에 갑자기 등장인물의 얼굴이 슬-슬 줌인된다. (중국 사극드라마처럼?)
집을 다시 찾아가는 소녀라는 간단한 이야기 속에 다양한 에피소드가 얽히고 설킨 내용도 좋았지만 인도를 이해하기 위한 좋은 소재들이 많이 등장한 점이 또한 좋았다. 이번에는 (설명하기 복잡한) 줄거리 말고 그 소재들을 통한 인도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1. 영화 원제목인, 바르랑디 바이잔(Bajrangi Bhaijaan)
2015년에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작으로 소개되면서 카쉬미르의 소녀로 소개되었다고 한다. Bajrangi Bhaijaan에서 Bajrangi는 인도의 신 중 하누만을 뜻하고, Bhaijaan은 힌디와 우두루어로 '(존경할만한) 형님’을 뜻한다.
Bajrang-Bali라고 불리는 하누만 신은 원숭이 얼굴을 한 ‘힘’을 상징하는 인도 신화에 등장하는 신이다. Bajrang-Bali라고 불리는 이유는 Bajrang이 또는 vajrang이 산스크리트어로 다이아몬드라는 뜻으로 하누만이 강한 힘(몸)을 일컫고, 'Bali'는 인류를 보호하는 신성한 힘을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덧붙이자면 하누만이 이후 서유기 손호공의 모델이라는 추측도 있다.
하누만은 인도의 수많은 신들 중에서도 인기가 많은 신이라고 하는데 글이 아닌 생활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지점은 바로 우버를 탈때다. 차에 본인이 믿는 신의 사진이나 조각상을 두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는데 델리 지역에서는 많은 기사들이 하누만 혹은 시바를 두는 것을 볼 수 있다. 지난번 출장때 방문한 뭄바이에서는 인도의 경제 도시 답게 상업과 학문의 신이자 코끼리 머리를 가진 가네샤로 장식해둔 것을 볼 수 있었다.
2. 카쉬미르
한국에서 소개된 영화의 제목이자 소녀가 살고 있는 동네이다. 영화 속 배경을 보자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나에게 파키스탄은 사막사막한 중동의 이미지였는데 영화를 통해 본 그곳은 말 그대로 '스위스'같았다. 알프스의 소녀 대신 무니가 뛰어다니는 것이 다를 뿐-
저렇게 아름다운곳이 파키스탄이라니 갈 수 없음에 세상 아쉬워하고 있던 차였다. 행동하는 제시가, 카쉬미르의 아름다움에 푹빠져 검색을 하다가 카쉬미르가 파키스탄이 아니라 인도이고, 너무나 아름답고 심지어 여행경비가 엄청 저렴하다며, 공기가 엄청 깨끗하다고 했다. 그녀의 말에다 우리 모두는 다 같이 흥분을 하며 환호성을 질렀는데 제시가 곧 ‘아…’하며 탄식을 내뱉었다.
그곳은 분쟁지역이고 얼마전 ISIS의 간부가 암살을 당했다는 것이다. 말을 전하는 제시와 듣고 있던 우리 모두 입이 떡 하고 벌어졌다. 뭐라고? ISIS? 아니 ISIS가 이렇게 내 삶(?)에 가까운 곳에 있었단 말이야?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그리고 그 뒤에 인도에 방문할때마다 외교부로 받았던 문자 속에서 방문하지 말아야할 지역에 카슈미르가 적혀있는 것을 나중에 발견하고 한번 더 털이 곤두섰다.
* 카쉬미르는 인도의 최북단에 있는 주이다. 대부분의 지역이 히말라야 산맥에 위치해 있다.
3. 인도와 파키스탄
1947년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리·독립때부터 양국간에는 갈등과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이 갈등은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갈등에서 시작되며, 카쉬미르 지역의 영유권을 두고 세차례나 전쟁을 해왔다. (카쉬미르에 여행갈 생각을 하다니...)
그 사이 전쟁말고도 인도 내 테러(인도 의사당 자살테러, 뭄바이 테러 등)이 있었고, 이틀전 카슈미르 지역에서 인도 군인 5 병사가 죽는 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봐서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의 갈등은 (완전한) 현재진행형이다.
참고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048760&cid=43819&categoryId=43820
4. 카스트 제도와 음식
브라만인 파완은 처음 무니를 보고 하얀피부에 이쁘장한 외모를 보고 분명 브라만일 것이라고 여긴다(그렇기 때문에 가족들과 같은 집에 머물 수 있었다). 카스트 제도에서 가장 최고 위치에 존재하는 브라만(사제)은 채식을 하는데, 파키스탄에서 온 무니는 말도 못하고 채식에 힘들어하다 옆집의 고기냄새에 이끌려 들어가 한자리 차지하고 고기를 뜯는다. 그 광경을 보고 뜨악한 파완은 무니가 브라만이 아닌 크리샤트리아(브라만 다음 계급, 왕족/무사)라고 생각한다.
카스트제도는 인도에서는 1947년 법적으로 금지되었지만 아직도 중장년이나 노년계층 또는 시골사람들에게는 인식속에 남아있다.
베지와 논베지
한국에서 요즘에 채식주의(이하 ‘베지’)를 점점 배려하고 있다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베지로 살기란 쉽지 않다. 만약 인도 친구들이 한국에 놀러와서 논베지 음식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잠시 멍해지는 기분을 느낀다.
인도에서는 베지와 논베지가 구분이 분명하다. 지금까지 방문했던 어떤 식당에서도 그 구분이 명확했다. 보통 사각형안 동그라미로 표기되는데 초록색은 베지이고, 빨강색은 논베지이다. 노란색은 계란! 물론 나는 논베지!
소고기와 돼지고기, 그리고 만만한 닭고기
힌두교에서는 소고기를 금하고, 이슬람에서는 돼지고기를 금한다. 그렇다면 인도에서는 소고기만 먹기 어렵다라고 생각하겠지만, 인도에는 무슬림도 많이 살고 있어서 돼지고기도 접하긴 쉽진 않다. 그래서 가장 접하기 쉬운건 닭고기, 그다음 생선, 새우.
5. 힌두교와 이슬람
무니가 브라만이 아닌 크리샤트리아이라고 다시 착각한 파완은 그녀를 닭고기를 파는 식당에 대리고 간다. 물론 파완은 먹지 않았는데, 그 다음 사원에 가서 닭고기를 파는 식당에 갔다고 회개하는 장면이 나온다. 두손을 모아 기도하는 파완과 달리 무니는 멀뚱거리다 파완을 따라 손을 모은다. 힌두사원 건너편에 이슬람사원을 흘긋거리다 파완이 기도하는 사이 이슬람 사원으로 들어간다.
사원이 바로 옆에 있지만, 두 세계는 완전히 다른 세계다. 무니가 사라진 것을 알아챈 파완이 무니가 이슬람사원으로 들어가는것을 본다. 무니를 따라 가다 파완은 신에게, 아이라 아무것도 모른다며 사죄한 후에 무니를 쫓아 나선다. 그럼에도 이슬람사원에 발을 내 딛을때 잠깐 주춤한다. 자연스럽게 기도하는 무니를 눈 앞에서 확인한 파완은 무슬림인 무니가 가족(정확히는 장인어른)에게 쫓겨날 것이라고 확신한다. 공존의 여지는 한줌 없이 말이다.
6. 크리켓
무슬림인 무니의 정체를 두고 파완과 라시카가 옥신각신하는 가운데 인도-파키스탄 크리켓 경기가 한창이다.
인도와 파키스탄 모두 크리켓은 국민스포츠이고 양국 경기는 한일전만큼이나 열기가 엄청 뜨거운 만큼 인도 응원에 한창인데, 무니 혼자 응원하지 않는다. 이 경기는 파키스탄의 승리로 끝나고 가족 모두 슬퍼할때 티비앞으로 뛰어나가 화면에 뽀뽀를 하는 무니를 보고 가족 모두 경악 한다. 결국 이 사건으로 무니는 파완의 장인어른에게 쫓겨나고 결국 파완은 그녀를 파키스탄으로 데려다주기로 결심한다.
인도 친구들과 크리켓이야기를 직접 나누어 본적은 없지만 사이버시티의 오락실에 갔다가 우리나라에 실내야구게임장처럼 실내 크리켓 게임장이 있는걸 보고 인기를 실감했다. 갈때마다 사람들이 가득 차있고 친구들 단위뿐만 아니라 가족들단위로 와서 음식과 함께 게임을 즐긴다.
7. 인도의 결혼 문화
영화 상에서 아주 짧게 지나가는 장면이지만 파완과 라시카가 이어지는 중요한 신에서 인도의 결혼 문화를 엿볼 수 있다. 바로 부모님이 정해준 상대와 결혼을 하는 것. 결혼할 상대를 만나는 자리에 라시카가 용기내어 아버지에게 파완에 대한 감정을 고백하는데 상대 남자 집안에서는 모욕이라고 화를 내며 떠나고, 아버지는 어렵게 딸의 마음을 받아들인다.
8. 트럭 아트
파완이 무니의 집을 찾아가기 위해 파키스탄에 가면서 화려한 트럭들을 볼 수 있다. 트럭 아트는 남아시아에서 인기가 있고 트럭에 정교한 꽃패턴과 캘러그라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파키스탄에서 더 유명하다고 한다. (본격 인도에서 뭐하니 시리즈의 Blow horn의 속편(?)으로 쓸 생각이었으므로 여기서는 간단히 소개!)
기회가 된다면 이영화를 보는 것을 추천한다. 파키스탄에 넘어가서 스파이로 오해 받아 쳐 맞으면서 도망치는 씬이나 이 글 맨처음에 있는 무니의 삼촌을 외치는 씬도 결국에는 눈물이 쏙들어가는 웃음므로 마무리 된다.
덧1. 이 영화와 꼭같은 실화가 있다. 영화와는 반대로 파키스탄에 머물렀던 말 못하는 인도 소녀의 진짜 이야기다. 영화 개봉 후 영화의 인기가 인도와 파키스탄 정부의 협력을 이끌어냈고 소녀의 인도로 돌려보내기 위한 노력 끝에 2015년 10월 소녀는 13년만에 인도에 올 수 있게 되었다.
덧2. 한 기자가 기차역에서 뉴스를 취재하는 장면이 나온다. 자꾸만 본인과 카메라 사이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짜증을 내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화면은 실제 유명한 리포터의 실제 방송사고(?)를 패러디 한것이라고 한다.
덧3. 2015년 당시 두번째로 높은 수익을 올리고 세얼간이의 기록을 갈아치웠다고 함
참고
https://www.quora.com/Why-Hanuman-ji-is-called-Bajrang-Bali
https://en.wikipedia.org/wiki/Bajrangi_Bhaijaan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ggaknip&logNo=2205492648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