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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렉사이다 May 18. 2018

막걸리를 담가봤습니다.

인도에서 진짜 뭐하니 시리즈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술은 막걸리다. 막걸리 중에서는 역시나 순정 "서울장수막걸리". 인도에서 생활하면서 가장 아쉬운 점은 막걸리를 구하기 어렵다는 점이다(내게 주어진 맥주 옵션이 킹피셔밖에 없다는 사실도 포함해서). 물론 내가 있는 지역에 있는 한식집 중에 한 곳에서 유일하게 국순당 캔막걸리를 팔았는데 한캔에 500루피(8천원)정도 했으니 한국에서 사먹는 막걸리보다 4배 정도는 비싼셈이다. 마시고 싶으면 식당에 가면되고 회식찬스도 있으나 한국에서라면 코 앞 편의점에서 2천원이면 살 수 있는 막거리를 어렵게 먹어야하니 아쉽고 또 아쉬웠다. 나의 아쉬움은 한국에 있는 직원들이 인도에 출장올때마다 한두캔에서 여러캔씩 막걸리를 부탁하기에 이르렀다. 


요건 생일선물로 받은 막걸리


직접 막걸리를 담구어 볼 요량으로 유투브도 찾아보고 한국쌀을 조달 받고 누룩을 부탁하고 통까지 인도로 가져왔지만 밥을 짓고 잘 말리고, 그뒤에 누룩과 잘 섞어서 일주일간 아침 저녁으로 살펴줘야하니 선뜻 도전을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며칠전 근처 한국 슈퍼에 들어섰는데 갑자기 에이미가 "막걸리예요!"라고 소리쳤다.


네 뭐라구요! 막걸리요!!?!?


정갈하게 정렬되어있는 박스 앞에 물에 타서 먹는 막걸리, 3리터 제조 가능이라고 적혀있는 종이를 발견했다. "헉 뭐지! 이거 무조건 사야해"하고 흥분하자 마침 뒤에 있던 사장님이 "한번 드셔보시겠어요!?" 한다. "허허 정말요? 네 당연히 먹어야죠"하면서 사장님 뒤를 쫓아가니 작은 소주잔 2개를 꺼내서 페트병에 담긴 막걸리를 따라주셨다. 에이미와 짠하고 마시는데 깔끔하진 않지만 약간 걸쭉하고 고소한 느낌의 막걸리였다. 소주잔에 담긴 막걸리를 한입에 털어넜는데 "엇! 맛있잖아!" 라는 소리가 절로 튀어나왔다. 



사실 상 이미 난 흥분상태였다. 옆에서 에이미가 입만 살짝 대고 남은 막거리를 내게 건냈다. 헿헿 거리면서 에이미의 몫까지 다시 한입에 털어넣고 나서 "당연히 사야할거 같습니다"라고 하자 사장님이 "잘섞어서 이틀 뒤에 드시면되어요" 하신다. 갑자기 흥분이 반토막이 되었다. 그냥 미숫가루처럼 섞어서 먹으면 될 줄 알았는데 발효가 필요하다니. 그래도! 나에게 이런 기회(?)가 생기다니! 싱글벙글 한박스를 집어들어 계산을 마쳤다. 가격은 900루피(14,300원 정도)정도로 아주 싼가격은 아니지만 3리터를 만들 수 있으니 아주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콩깍지가 씌였음)


숙소로 돌아와 박스 뒤에 있는 제조법을 꼼꼼히 읽었다. 20도쯤 되는 1리터의 물에 500g의 가루를 모두 넣어 잘 섞은뒤 23~28도의 온도에서 아침, 저녁으로 잘 저어주면 된다고 했다. 우선 냉장고에 있는 물을 꺼내 두었다. 만들 생각을 까마득하게 잊고 거실에서 한창 이것저것 하다가 새벽1시쯤 방에 들어왔는데 준비한 물과 박스가 보였다. 다음날 할까 하다가 500ml 패트병 3개에 물을 나눠담아서 가루를 넣어 병채 쉐킷쉐킷하면 금방 끝나겠다는 생각에 박스를 열었다. 


막걸리 제조 파우더(좌, 가운데), 패트병에 직접 담아 쉐킷쉐킷(우)


박스안에 봉투를 여니 살짝 메주냄새가 났고 전분가루처럼 서걱거리는 매우 고운 가루가 들어있었다. 종이로 깔때기를 만들어서 패트병에 가루를 담기 시작했다. 이렇게 나눠 담고 패트병 세개를 쉐킷쉐킷하려는 계획이었다. 가루를 적당량 담았다고 생각하고 뚜껑을 닫고 힘차게 흔들었는데 두세번쯤 흔들었을때 무엇이 잘못되었다는걸 알아챘다. 물과 가루가 섞여서 철렁철렁하는 느낌이 아니라 진흙이 들어있는 병을 흔드는 느낌이었다. 가루와 물이 만나 엉기면서 액체가 아닌 질척이는 밀가루 반죽이 되어버렸다. 뚜껑쪽은 이미 꽉 박혀서 물을 더 넣을 수 없는 상태였다. 


어? ....망했..


새벽 한시반에 이게 무슨...현타가왔다. 어떻게야하나 하다가 한국에서 챙겨온 통있다라는 사실이 생각났다. 통을 꺼내 놓고 진뜩하게 병안에 가득 뭉쳐이던 반죽을 꺼내기위해서 생수병을 찌끄러트려서 치약처럼 짜내기 시작했다. 10여분간을 낑낑거린 다음에야 생수통의 내용물을 통으로 다 옮길 수 있었다. 남은 물과 가루를 통에 넣었다. 섞는다기 보다 반죽한다는 느낌이었는데 촉감은 마치 도배풀과 같았다.


인도의 새벽,  막걸리 제조 현장


고운 가루가 물이 멋대로 만나 마음대로 섞여버려서 뭉친 알갱이가 많이 생겼다. 가진 도구라고는 손이라 손으로 알갱이를 일일이 풀어주었다. 생각보다 악력이 많이 필요해서 손에 힘을 주면서 휘적이고 있는데 갑자기 SK-II  테라피광고가 떠올랐다. 내일 나의 오른손은 더 부드러워지겠지?


나이는 들었지만, 젊고 부드러운 피부를 가진 양조장 주조사 손에서 영감을 받은 SK-II 피테라

 

한창을 조물거려 알갱이가 어느 정도 사라진것 같아 마무리하고 방에서 가장 온도차이가 나지 않고 햇빛이 들지 않는 욕실 세면대 위에 통을 올려두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주방에서 스푼을 찾아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뚜껑을 여니 몽글몽글 거품들이 뭉쳐있는것들이보였다. 숟가락으로 잘 저어주고 다시 정성스레 제자리로 돌려놨다. 저녁에 와서도 잊지 않고 잘 저어주고,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도 눈을 뜨자마자 숟가락을 찾아 정성스레 잘 섞어줬다. 시간이 지날수록 작은 탄산들의 자글자글한 소리와 함게 그럴싸한 알콜향이 섞인 막걸리 냄새가 올라왔다.


막걸리의 이틀- 아침, 저녁, 그리고 다음날 아침


 그리고 드디어 정확히 이틀째 되는 저녁에 같은 숙소에 묵는 동료들과 함께 막걸리를 마시기로 했다. 평소보다 더 빨리 퇴근하고 싶었던 건 기분탓이겠지.


막걸리 마시러 가즈아



도착해서 마지막으로 정성스럽게 섞었다. 동료들이 식탁에 다 모이기전 기다리지 못하고 컵에 조금 옮겨담아 냉장고에서 막 꺼낸 시원한 생수를 섞었다. 막걸리와 물을 1:1로 섞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꼴깍하고 마셨다.



ㅁ...맛있..잖아!


슈퍼에서 마셨던 맛과 거의 동일한 맛이었다. 그럴싸했다. 아니 그냥 막걸리였다! 생수를 탄 막걸리를 다 마시고 이번엔 사이다를 섞었다. 생수를 섞은 버전은 단맛이 거의 없어서 단맛을 원한다면 사이다를 섞어마시는 것도 좋은 옵션이 될 것 같다.



첫 막걸리 제조, 공식 첫 잔-


혼자 감동에 취한 사이 마이크와 한이 식탁앞에 등장했다. 딱 맞춰서 매콤한 오징어초무침과 빈대떡이 식탁에 차려졌다. 어제 버디언니(숙소 호스트)에게 담군 막걸리를 마실거라고 얘기 했는데 저녁 메뉴 센스보소. 


공식 첫"짠"


먼저 마이크와 한의 컵에 맛을 볼 수 있도록 살짝씩 담아줬다. "어 맛있는데요?" 마이크와 한은 생각보다 근사한 맛에 살짝 놀라는 눈치였다. 이제는 잔에 그득그득 담아서 각자의 스타일로 물을 섞어 마셨는데 한은 물을 섞지 않은 원액 상태가 맛있다고 했다. 술을 자제하고 있던 마이크와 평소에 술을 잘 마시지 않는 한이 "한 국자만 더주세요"라고 하길래 만든 정성이 있어 예의상(?) 한잔씩 더 하나 싶었지만 이내 비우고 다시 "한 국자"를 외치는걸 보니 다들 입맛에 맞는 모양이었다.


 수염없는 빅가이 한(좌), 수염있는 빅가이 마이크(좌)...얼굴보니 진심이다.


곧 나온 에이미는 사이다를 타서 한잔 마시고, 늦게 도착한 션도 한잔- 나랑 마이크랑 한은 여러 잔- 이틀을 기다려  만든 1리터의 막걸리는 한끼 저녁상에 끝날 각이다. 아무래도 매일매일 담궈야 매일매일 끊기지 않고 마실 수 있을 것 같다라고 하니 마이크가 밤막걸리를 만들라고 한다. 


양쪽볼이 발그레해진 마이크


테스트겸 만든 막걸리가 성공했으니 다시 파우더를 사서 다음번 술판(?)을 준비해야할 것 같다. 밤막걸리 만드는 법도 알아보고- 헿헿


이제 인도에서 아쉬울 것이 없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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